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사녀ㅣ이혜진OT Mar 17. 2019

아프다고 말도 못 했는데...

의료사고 앞에 힘 빠지는 환자와 보호자.

  급성 담낭염으로 인해 장기 입원 중 딸의 결혼식까지 스펙터클 하게 지낸 아빠. 이제 퇴원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의 짜증과 화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수액을 맞다 아빠의 왼쪽 팔이 퉁퉁 부었니 말았니. 아~ 수액을 맞다가 혈관이 터졌거나 새었나 보구나. 조금 있다 병원에 가겠다며, 통화로 엄마를 타일렀다.


  병원에 도착해서 아빠의 왼쪽 아래팔을 보니, 수액으로 인해 붓기도 부었지만 군데군데 물집이 잡혀 있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어보니 전 날 저녁 9시경 간호사가 새로운 혈관으로 수액을 바꿔야 하는 날이기에, 한참을 혈관을 찾다가 왼쪽 아래팔에 주사를 놓았다고 한다. 엄마는 마비가 된 왼쪽 팔이기에 걱정이 되어, 왼쪽에 해도 되겠냐 물으니 어쩔 수 없다며 시간대별 주사가 잘 들어가고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간호사의 말에 안심을 하셨단다. 그렇게 10시쯤 주무셨다. 간밤에 아빠는 곤히 주무셨는지, 깨지 않으셨고 다소 일찍 시작하는 병원의 아침 시간, 엄마는 아빠의 팔을 확인하셨다.


  간호사에게 급히 말한 후 수액을 바로 빼고 처치를 했고, 그 뒤 붓기는 가라앉았지만 수액의 누출로 인해 군데군데 큰 물집이 잡혀있었다. 심지어 아래팔 부분을 누르면 남은 수액이 피부 사이로 새어 나왔다. 나는 담당 간호사에게 어떻게 마비된 팔에 수액을 놓고 나서, 이렇게 수액이 셀 동안 아무도 모를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나, 담당 간호사에게서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들을 수 없었고 확인을 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언제 확인했냐 물으니, 2시경 확인을 했을 때 이상 없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본인들은 확인을 했고, 이상 없었기에 잘못이 없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너무 화가 났지만, 이미 일이 이렇게 된 상황에 달리 방법이 있으랴.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다음날이다. 아빠의 아래팔에 군데군데 물집이 있던 곳은 물집이 터지면서 피부의 색이 검게 변하고 있다. 피부과에 협진을 의뢰했다고 한다. 검게 변한 피부는 예상대로 수액 누출로 인해 섞어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수액 누출로 부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누출된 조직 부위에 감염이 되어 피부가 섞고 있단다. 달리 방법이 없이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퇴원을 앞두고 아빠는 그 피부 감염 때문에 입원기간이 길어졌다. 욕창매트 등 욕창을 방지하기 위한 모든 용품과 엄마의 욕창을 막는 노하우가 있었지만, 등부터 시작하여 엉덩이 부분까지 욕창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정말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의료진의 대처 방법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엄마는 병원에서 큰 소리를 쳤고, 그제야 무언가 액션을 취하는 듯했다.


  피부과 협진을 통해 의뢰하였을 때 아빠의 아래팔 부분의 피부는 더 이상 지켜보기에는 의미가 없으며, 허벅지 살을 떼어 피부이식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자, 문제는 그래 이식이야 하면 된다지만, 피부 이식도 전신마취를 해서 수술을 진행해야 한단다.


  아빠 같은 중환자는 전신마취 한 번이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전신마취 후 회복과정이 매우 더디고, 여러 가지 합병증이 올 수 있기에, 이러한 상황이 온 것 자체가 가족인 우리는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보호자는 그저 따라야 할 수밖에 없다.


  억울한 마음과 화가 난 나는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심정에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바로 이런 게 의료사고이구나.  

  인터넷과 SNS가 활성화되어있는 현시점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면 나도 사고의 경위를 인터넷 사연과 여러 사람들의 공유를 통해 호소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수액 누출이 된 시점부터 의무기록 사본을 모두 요청했다. 그 이후 힘없는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살펴보았다.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알아보니,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란 곳이 있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까지 생각하게 된 것은, 의료진들에 사고에 대한 그 어떠한 사과의 말도 없었던 것이 제일 우리는 서러웠고, 분했던 것이다. 그렇게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천천히 준비해왔다. 의무기록 사본도 정리해두고  중재원에 신청을 하기 위해 의료사고에 관한 기록을 문서에 정리해두었다.


  아빠는 피부이식 수술을 하고, 욕창과 수술한 피부의 회복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있는 과정에서 병원에서는 이러한 수술 등 입원기간이 길어짐에 발생하는 병원비용 일체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경위서를 작성해 중재원에 의료사고 접수를 하였고, 병원에 답변서를 받을 수 있었다. 답변서에는 상황은 이해되나, 본인들의 잘못이 크지 않다는 식의 결론이었다.


  그제야, 조정이 마무리되기 전 병원에서는 수액 누출과 관련해서 나오는 병원비는 부담을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식한 피부가 이식이 잘 되어야 하는데, 통 아래팔의 회복에는 진전이 없었다. 그리고 이식을 하기 위해 때어낸 허벅지의 피부는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벌겋게 회복이 되지 않는다.


  정상인이라면 금방 회복할 것이, 아빠라서 여러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지긋지긋한 의료사고는 결국 조정원의 조정을 통해서 우리는 100만 원의 합의금으로 종료를 했다. 아빠의 팔은 다행히도 회복이 더디지만 이식한 부분이 회복이 되었고, 허벅지의 떼어낸 피부는 1년 정도 치료 끝에 새살이 돋아났다.


  우리는 이 사고의 합의를 하기 위해 서울까지 다녀왔다. 실제로 중재원에 가니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한 사건, 의식불명 사건 등 우리의 사건은 의료사고라고 할 수 없었다. 그분들의 합의금 역시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사실 돈보다 의료진들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어 그렇게 발버둥을 친 것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고 꿈틀이라도 해야 쳐다봐주지 않겠나 하는 마음에서다.


  글로 적었을 때 금방 지나간 거 같은 조정기간이지만, 이렇게 100만 원의 합의금을 받기까지 4달의 시간이 걸렸다. 행정과에서 연락이 왔을 때, 그제야 우리의 말을 귀담아 주는 것 같아 기뻤다. 작은 사고라도 처음 사고가 났을 때 좀 더 보호자들의 힘든 마음을 알아주고, 잘못을 인정했다면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을 텐데..


  허무하기도 했지만, 무언가 해결이 되고 고생 많으셨지요라는 행정과 책임자의 말에 그동안 쌓였던 불신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나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조정신청을 한다고 조정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각하(병원 측 거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의료소송으로 가야 하는데 비용도 들게 되고 승소 확률은 1%라고 한다. 누군가가 조정을 신청한다면 경험자로서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라고 조언을 드리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