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여름>의 홍보마케팅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맡게 된 나의 세 번째 작품 <그대 너머에>는 앞선 작품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다. 밝고 유쾌하며 이야기를 쉽게 따라갈 수 있었던 <생각의 여름>과는 달리 <그대 너머에>는 진지하고 기이한 작품이었으며,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 어느 것이 좋고 나쁜 것은 물론 아니며, 그저 한여름의 유쾌한 소동 같았던 <생각의 여름>의 홍보마케팅이 지나자 마자 맡게 된 <그대 너머에>는 마치 갑자기 찾아온 가을처럼 나의 업무 무드마저 급격히 변화시켰다.
영화의 배급은 감독님께서 설립하신 제작사에서 맡게 되었다. 배급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던 곳이 아니라서 아무래도 물흐르듯 업무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덕분에 통상적으로 배급사에서 담당하는 업무의 일부를 홍보사 소속인 내가 도와야 할 상황이 종종 생겨서, 어떻게 보면 영화마케터로서 레벨이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감독님께서 홍보마케팅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서 함께 으쌰으쌰 업무를 진행했었다. 감독님은 sns홍보영상의 일부를 직접 편집해서 만들어주시기도 하셨고, 동료 감독님께 영화의 리뷰 영상을 받아오는 등 활용도 높은 소스를 제공해주시기도 했다. 어느 날 업무 상 소통을 나누다가 감독님께서 <그대 너머에>를 만들면서 영감을 얻었던 루이스 뷔니엘의 <황금시대>와 즈비뉴 립진스키의 <탱고>를 보여주시면서 비하인드를 이야기해주셨는데, 업무 중임을 잊고 재미있게 감독님의 이야기에 몰입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오민애 배우의 팬이 되었다. 기억의 미로를 해메는 인물들을 따라 보는 관객들도 혼란스러워지는 파격적인 이 영화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오민애 배우의 연기도 물론 뛰어나지만 홍보마케팅 과정에서 진행된 그의 여러 인터뷰를 읽어보면서 그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 사람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크게 감화되었다. 오민애 배우는 이후 <초록밤>에서도 느꼈지만 작품 하나하나, 맡은 캐릭터 하나하나를 마치 실존하는 사람을 대하듯 소중히 여겼다. 그리고 후배 감독/배우와의 작업에서도 선배로서의 체면치레를 하기 보다는 먼저 다가가고 그들에게서 배울 점을 찾는 멋진 선배였다. 젊은 시절 숱한 방황을 거치며 절에 들어가 생활을 하기도 했다는 그가 중년에 맞이한 안정은 방황하는 20대를 보내는 지금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2022년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수상하시며 조금은 늦은 전성기를 맞이하신 오민애 배우의 일이 마치 내 일인 양 기뻤다.
<그대 너머에>는 곱씹어볼 수록 영화의 독창성이 빛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번 봐서 쉬이 이해되지도 않고, 파격적인 영화적 언어 때문에 이따금씩 보는 이를 당황스럽게도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상업영화에서 만날 수 없기에 독립영화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더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순수한 창작심으로 빛나는 눈빛을 띠고 계시는 박홍민 감독님을 무척 닮았다고 느끼는 <그대 너머에>를 회상하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엷게 배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