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근에 마케팅을 담당한 영화가 개봉 약 한 달 만에 드디어 관객수 1,000명을 돌파했다. 누군가 들으면 웃을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1,000명을 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동안 매일같이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접속했다. 그래서 관객수가 1,000명을 넘은 것을 확인했을 때 속으로 무척 기뻤다. 하지만 그 영화의 감독님께 선뜻 축하의 인사를 전해드리기 어려웠다. 개봉한지 한 달이 지나 겨우겨우 1,000명을 넘은 것을 축하드려도 되는 일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회사 대표님께서 감독님과 PD님 그리고 내가 있는 단체 메시지방에 메시지를 보내시는 것으로 물꼬를 터주셨다. 1,000명 돌파 축하드리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GV 통해 관객들 만나고 소통하느라 수고가 많으시다는 내용이었다. 감독님과 PD님께서 감사 인사와 함께 답장을 주셨고 나도 눈치를 조금 살피다가 하고 싶었던 축하의 인사를 드렸다.
다양성영화의 관객수는 상업영화 관객수의 100분의 1에 맞먹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상업영화의 스크린수가 1,000~2,000개 수준이라면 다양성영화의 스크린수는 20~50개 정도이기 때문이다. 멀티플렉스의 좌석수가 예술영화관의 좌석수에 비해 많은 것을 고려하면 더욱이 들어맞는 비교다. 그래서 다양성영화는 1만명이 흥행 기준이다. 상업영화로 치면 100만 관객을 기록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놓고 봐도 관객수 1,000명이라는 숫자를 마주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1,000만 관객이라는 숫자가 주는 거대함과는 정확히 반대편에 있는 아득함이다.
예전에 내가 가진 취미는 매주 북미 박스오피스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쟁쟁한 헐리우드 영화들이 숫자경쟁을 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국내보다 먼저 헐리우드 영화의 관객과 평단 반응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보기 시작해서 몇 년을 한 주도 빠짐없이 봐왔는데 코로나19로 극장마저 셧다운되면서 사상 유래없는 박스오피스 집계 중단 사태가 발생한 이후로 안 보기 시작해서 지금은 꼬박꼬박 챙겨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영화마케터 취업을 준비하면서 국내 박스오피스 순위를 매일 확인했다. 나름 시장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제 독립영화 마케터로 일을 하면서 그간 크게 관심갖지 않았던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챙겨보는 박스오피스의 규모가 점점 작아졌다.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를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시장이 정말 작다는 것이다. 어떤 영화가 시사회를 한번 진행하면 다양성영화 일별 박스오피스에서의 순위가 크게 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 시사회는 한 상영관에서 진행하고 기껏해야 관객수가 100여 명인데도 그정도 관객수면 일일 박스오피스 순위권에 드는 수준인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독립영화는 특히 순위권 진입이 어렵다. 왜냐하면 해외의 예술영화들이 대부분 순위권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독립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외 예술영화들이 시네필의 선택을 받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해외 예술영화들은 국제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서 국내로 수입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작품성에 신뢰를 얻는다. 반면 독립영화는 창작자를 양성하기 위해 제작부터 개봉까지 공적자금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즉, 국내로 들어온 해외의 예술영화는 경쟁의 논리에서 살아남은 영화들이라면 독립영화는 경쟁의 논리로부터 보호를 받은 영화들이다. 그러다보니 시장에서의 경쟁력도 차이가 드러난다.
그래서 내가 아는 독립영화의 최종스코어를 찾아보면 다소 놀랄 때가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초입에 개봉해서 극장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서 관람했던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약 2만 9천 명의 관객이 들었다. 작년 내가 극장에서 본 영화 중에 단연 으뜸으로 꼽는 <남매의 여름밤>도 2만 명을 간신히 넘겼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사정이 낫다. 작년에 개봉한 독립영화 중 개인적으로 관람 후 정말 좋았던 작품들을 관객수와 함께 주욱 나열하면 <69세> 9,824명, <이장> 5,231명, <내언니전지현과 나> 2,800명, <작은 빛> 2,265명 등이다. 모두 1만 명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웃기는 건 나도 저 관객수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나열한 영화들을 다양한 플랫폼에서 제공했던 온라인 상영회를 통해 관람했다.
나도 정작 독립영화를 극장에서 자주 만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으면서 독립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너무 적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독립영화 마케터가 되고 나서는 새로 나오는 독립영화를 극장에서 챙겨보려고 하는 편이다. 특히 다양성영화를 주로 취급하는 예술극장에서 독립영화를 만나다보면 상업영화를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만날 때와는 다른 극장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마다의 아기자기한 선재나 굿즈는 없을지 기대하게 되고, 예술극장 저마다 가진 특색에 매료되기도 한다. 엔딩크레딧이 다 끝나면 상영관 불이 켜져서 영화의 여운을 끝까지 즐기게끔 배려하는 것도 멀티플렉스와는 다른 예술극장의 매력이다.
마케터가 소비자에게 다가가려면 마케터의 니즈를 소비자에게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니즈를 마케터가 캐치하고 충족시키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소비자의 입장이 되어보고 어떤 니즈가 있을 지를 헤아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는 것 같다. 극장으로 오지 않는 관객들을 탓하기 보다는 관객들에게 먼저 다가가려는 마케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