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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치욱 Nov 11. 2021

RSVP

영화마케팅 하면서 '마상' 당하기 가장 쉬운 업무

누구나 한 번쯤 업무로 바쁜 와중에 걸려오는 스팸 전화로 성가시거나 곤혹스러웠던 때가 있을 것이다. 영화마케팅을 하다보면 나는 기자들에게 그런 성가신 존재가 된다.




rsvp는 '회답 주시기 바랍니다(프랑스어 répondez s’il vous plaît(please reply)를 줄인 것)'라는 뜻이다. 주로 행사나 의전에서 참석 대상자들의 참석여부를 관리할 때 쓰는 용어라고 한다. 영화마케터는 언론/배급시사회를 준비하면서 기자 및 평론가(이하 기자)들을 대상으로 바로 이 rsvp를 진행하게 된다. 사전에 메일을 통해 시사회 참석을 신청한 기자들을 대상으로는 당일 시사 참석 가능한 것 맞으실지, 아직 신청을 하지 않은 주요 매체의 기자들에게는 시사회 일정을 안내하고 참석 가능하실지를 각각 전화드려 여부를 묻는다. 조금이라도 기자들을 많이 초청해서 영화를 관람하게 하고 매체에 리뷰 등의 노출을 늘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제 일을 시작한 지 그래도 얼마 됐다고 대부분의 영화마케팅 업무에는 적응이 어느 정도 되었지만 이놈의 rsvp는 도무지 어색하다. 그리고 솔직히 하기 싫다. 전화를 걸면 돌아오는 기자들의 냉담하고 건조한 반응은 나처럼 여리고 소심한 INFJ에게 매번 마음의 상처를 부른다(대담한 INFJ가 있다면 사과를 드립니다). 난 아직 "안녕하세요 영화홍보사 000의 송치욱입니다"라고만 말했는데 수화기 너머로 대놓고 귀찮은 티를 내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들으면 다음에 이을 말의 목소리는 작아지고 자신감도 위축된다.




사실 기자들도 일과 중에 워낙 바쁜 일이 많고(일과 시간 이후에 전화하면 안 받을거면서) 여러 홍보사에서 전화가 걸려올테니 사무적으로 대하는 것일 터이다. 그러면 나 역시 사무적으로 대하면 서로 마음 상할 일이 없는데 시사회 참석을 부탁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잘 되지가 않는다. 이상적인 관료제는 증오나 열정 없이 형식주의적인 비개인화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던 막스 베버의 지침이 내게는 먹히지 않나보다.


그리고 주요 매체에 rsvp를 한다고는 하지만 매체가 좀 많은 게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0대 언론사 이외에도 영화 리뷰를 다뤄줄 온라인 매체는 우리나라에 정말정말 많다. 그 중에서 주요 매체와 영화 방향성에 적합한 매체들을 추려낸다고 해도 수십 명의 기자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돌려야 한다. 전화를 돌리다보면 나중에는 하도 말을 많이 해서 입에서 단내가 난다. 그러는 와중에 rsvp 명단에서 평소 전화를 퉁명스럽게 받는 기자의 이름을 보면 벌써 전화 걸기 싫고 힘이 쭉 빠져버린다.


어찌저찌 rsvp를 끝내고 나면 과연 참석하겠다고 하는 기자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작품마다 편차는 있지만 보통 10% 미만, 타율로 이야기하자면 1할이다. 당연히 그럴 만도 한게 기자들에게는 이미 주기적으로 영화의 뉴스레터가 메일로 발송되고 있고, 시사회가 가까워지면 신청 링크와 함께 시사회 초대 메일링도 약 열흘에서 2주 전부터 매일 발송된다. 그러니 우리가 전화를 돌리기 전에 기자들이 먼저 자신들의 일정을 체크하고 시사회를 갈지 말지 알아서 결정한다. 시사회 신청을 사전에 하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불참 의사를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면 rsvp를 하는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하지만 우리가 수십 통의 전화를 돌리는 이유는 작은 틈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기자들의 일정은 미리 정해지지 않는 경우도 많고 수많은 영화의 뉴스레터를 메일로 받다보니 우리 영화를 주목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전화로 우리 영화와 시사회 일정을 다시 인지시키면 조금이나마 시사회에 참석하겠다고 하는 기자들이 생기는 것이다.


또 전화를 받은 기자들이 다 퉁명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전화를 걸면 친절하게 응대해주는 기자들도 있고, 일정이 맞지 않아 불참하게 되면 "000(우리 회사)에서 늘 전화로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다음에는 꼭 참석할게요"라며 끈질긴 전화 릴레이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분들도 종종 있었다. 최근에 진행했던 시사회에서는 한 기자님께서 티켓을 받으러 오시면서 "여기는 꼬박꼬박 전화를 해주시니까 오지 않을 수가 없네~"라고 하셔서 내가 헛고생 하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더랬다.


안그래도 다른 업무로 바쁜데 한참을 전화기 붙들고 기자들에게 간청 아닌 간청을 해야 하는 rsvp를 앞두면 매번 의욕이 가신다. 하지만 그렇게 시사회에 한 명의 기자라도 더 초대해서 그들이 매체에 우리 영화의 리뷰를 남기는 모습을 보면 꼭 해야 하는 업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기자들은 그저 말하는 깡통이다!'하는 식으로 좀 더 무던한 마음을 가질 일만 남은 것 같다. 잘 될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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