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치욱 Dec 29. 2021

메일함에서 송해를 검색했더니...

안 죄송해도 일단 죄송하고 보는 영화마케터

진행하던 영화의 PR아이템으로 동시기 개봉 다큐멘터리 영화 번들 메일링 뉴스레터 글자료를 작성하는 상황이었다. 영화마케터들은 보통 다른 회사에서 진행하는 영화의 메일링도 받아보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영화인 <송해 1927>의 영화 정보를 얻기 위해 메일함에서 '송해'를 검색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송해 1927>의 메일링을 받지 않고 있었고, 메일함 검색에서 딸려나온 것은 한 움큼의 '죄송해요ㅠㅠ'라는 단어였다.


영화마케터는 이래저래 죄송할 일이 많은 포지션인 것 같다. 영화마케팅 과정에서 최종 컨펌을 해줄 제작/배급사에게는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절로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리고 온라인 마케팅을 담당하는 회사와 포스터 등 선재 디자인을 하는 담당하는 디자이너, 예고편 제작 업체 등 우리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어 각 분야의 기술자에게 손을 벌려야 할 곳이 많다보니 이래저래 죄송할 일도 많다.


그래서 문득 영화마케터가 느끼는 죄송함의 산식을 아래처럼 만들어봤다.


[산식]

(영화마케터의 죄송함) = A(0보다 큰 상수)/연차(a.k.a. 짬) + (사안의 긴급도)*(오고 간 메일 건수)


[산식의 설명]

영화마케터는 일단 죄송함을 깔고 들어가기 때문에 산식에 0보다 큰 상수 A를 두었다. 하지만 짬이 차면 죄송함을 조금 덜 느끼고 여유로움이 대신하기에 상수 A는 연차가 쌓일 수록 줄어드는 것 같다. 그리고 사안의 긴급도와 관계사와 오고 간 메일의 건수에 비례해서 죄송함이 증가한다.




그나마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죄송합니다', '정말 송구합니다' 등등 궁서체의 사과를 많이 했던 것에 비해서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그래서 실수도 줄었고 그에 따르는 사과 역시 덜 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내가 숙였던 고개만큼 자존감도 많이 내려갔다. 이런 사소한 것도 챙기지 못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나 싶어서 자책도 많이 했더랬다. 물론 지금도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떤 동료로 평가할지 모르고 평가는 그들의 몫이지만 이제는 업무의 흐름을 알고 일을 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전에는 자존감을 바쳐서 '죄송합니다'를 말했다면 이제는 사과할 일이 있으면 자존감이 아니라 진심을 바친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분명하게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일이 아니고 서로가 조금 더 배려하고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면 굳이 사과를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정성에 대해 '감사합니다'를 말하는 편을 택했다. 그편이 듣는 상대도 나의 '죄송합니다'와 '감사합니다' 모두를 진심으로 여기고 소통할 수 있는 방향성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사회에 갓 발을 들여서 업무도 낯설고 업무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소통 방식에도 어려움을 겪었던 나의 지난 모습들에 연민을 느낀다. 직장 경험도 없고 모르는 것도 너무 많은 나로서는 상대방이 하는 말이 다 맞는 것 같고 내가 하는 건 다 잘못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무조건 납작 엎드리는 태도로 커뮤니케이션을 했었는데 이런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먼저 직장 경험이 있었던 동료의 도움 덕분에 지금의 안정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체득할 수 있었다.  


올해 모두가 고생이 참 많았겠지만 첫 직장생활에 발을 뗀 나에게는 유독 힘든 해였다. 내년에는 올해의 경험과 성장을 바탕으로 꽤 잘 기능하는 직장인이 되고 싶다. 나에게도, 내가 맡은 일에게도 모두 훌륭한.

이전 14화 (축)여성영화인모임 홍보마케팅상 수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