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잠언집이었던 것 같다. 스님이 말하기를 사람들은 각기 자신만의 짐을 타고 태어나며, 그 짐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해 힘들었던 새내기 시절, 법정스님의 잠언집을 정독하며 위로를 받았다. 책에 쓰여있는 거의 모든 말을 잊었지만, 이 문장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
새내기 시절의 성장통을 겪어내고 앞으로만 나아가느라 이 어구를 잊어갔었는데, 잠시 멈춰있는 요즘 다시 이 어구가 생각난다. 내가 또 힘들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이 어구를 읊조리면 일차적으로 남들도 자기만의 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그다음에는 내가 타고 태어난 짐이 남들보다 큰가 보다, 라는 생각에 이상한 위안을 얻게 된다. 이 어려움이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짐이라면 감내해야지 라는 일종의 체념인 것도 같다.
‘빨간 머리 앤’처럼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캔디 캐릭터를 즐기는 것은 아니나,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샘솟는 희망과 무한 긍정으로 다져진 ‘앤’ 같은 캐릭터가 필요해지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비록 허구이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앤’의 일면을 내가 닮았으면 하는 마음일 거다.
어느 날 ‘앤’을 닮은 캐릭터를 그리고 싶어 졌다. 쓱싹쓱싹 얼굴부터 그려나갔다. 그리고 그림 속 캐릭터에게는 미안하지만 왕수박만큼 큰 짐을 어깨에 지워줬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표정만은 밝게!! 내가 만든 캐릭터를 힘들게 하는 심술 맞은 사람으로 비춰질 지 모르나, 사실 나는 수많은 고민과 수없는 걱정에도 웃을 수 있는 진정한 일류의 면모를 그녀에게 부여한 것일 뿐이다.
나를 위로하기 위한 그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글을 읽을 수도 있는, 지금도 그들만의 짐을 지고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그림이다.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