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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유 Aug 30. 2020

구해주지 못해 미안해

아침저녁으로 줄넘기를 하고 있다. 몇 개월 만에 믿을 수 없게 불어나버린 몸무게 탓도 있지만 줄곧 숨쉬기 운동으로 일관해온 내 몸뚱이에 활력을 주기 위함도 있다.

아무튼 오늘 아침에도 줄넘기를 하러 나갔다. 줄넘기 줄이 땅을 스치는 단정한 소리에 맞춰 생각 없이 발을 구르던 중 먼발치에 가엾게 꿈틀대는 지렁이가 눈에 띄었다. 지난밤 요란하던 비를 피해 숨구멍을 찾아 땅 밖으로 피신한 모양이었다. 해가 뜨고 바람이 부니 그 지렁이는 살기 위해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안간힘을 다해서 몸을 비틀어대는 모양이 안쓰러워 줄넘기 줄을 돌려대면서도 자꾸만 지렁이에게 눈이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렁이를 맨 손으로 옮기지는 못할 것 같아 낙엽에 얹어 날라 볼까 별 궁리를 다 했다. 그리고는 고작 지렁이를 옮기는 일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뭇 결연한 태세로 지렁이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징그러웠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 이내 매정하게 돌아섰다. 아주 느린 속도이기는 해도 계속 꿈틀거리다 보면 스스로 땅 속으로 돌아갈 수 있겠거니, 위안을 삼으면서. 지렁이를 구해주지 않고 돌아서는 ‘내 모습’에 스스로 구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내가 사는 세상’이 겹쳐 보였다면 너무 멀리 나간 걸까. 나는 지렁이를 구하지 못했다. 지렁이 한 마리조차 구하지 못하면서 내 꿈은 ‘구하는 사람’이다. 아무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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