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부처님[E.6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인도 불교 유적지 순례기 : 포카라(휴식)

by 노루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게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소풍



포카라

2018.10.23~2018.11.01


포카라에서는 조금은 짐을 덜어놔야지

빈둥 빈둥 놀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지




1. 제티 바나나향


포카라까지는 7~8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9시간이 걸려 4시가 되어야 도착했다. 옆에 탄 친구 얼굴 색이 백인이여서, 같은 여행객인 줄 알았지만, 네팔 사람이었다.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굳이 이렇게 일기장에 쓰는 이유는 그 친구에게서 바나나맛 제티 향이 났기 때문이다. 이게 바나나는 아니고 바나나맛 제티향이라고 해야 딱 맞았다. 달달한 향이, 항상 우유상자가 놓여져 있던 칠판 오른쪽 구석을 생각나게 하였다.





2. 윈드풀 게스트 하우스


포카라에 도착해서 같이 택시를 타고 페와 호수 근처까지 이동을 했다. 이름만 알고 있는 숙소를 찾을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 제티향 친구가 핫스팟을 켜줘서 숙소의 위치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그 친구를 보내고 나서, 한 600미터 정도를 더 가서내렸는데, 내가 약속했던 금액보다 200을 더 내야 한다고 기사가 우겼다. 더 줄 것도 없이 약속한 금액만 주고 가방을 들고 떠났다. 실제로는 내가 총 낸 돈이 350이었는데, 그 금액이면 두 번 왔다 갔다 할 돈이었다.


윈드풀 게스트 하우스는 구글 검색에서 가장 위에 뜨는 한인 숙소이기도 했고, 평이 굉장히 좋은 곳이었다. 정말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라나시에서 한 번 휴식 이후 가지는 두 번째 휴식이었다. 이 휴식 후 4군데 정도만 방문하면 이 여행도 끝이 난다.




3. 방이 없어요?


원드풀에 도착은 했지만, 방은 없었다. 아직 시즌이 시작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예약이 꽉 차 있다고 한다. 사모님이 근처의 방을 알아봐 주신다고 하셨다. 그 사이 사장님과 대화를 나눴다.


“뭐 하러 왔어요?”


“인도에서 여행하다가 쉬려고 들어왔어요”


“에이 여기 까지 왔는데 트래킹은 해야지!”


“트래킹이요?”


“장비는 있어?”


“얇은 옷 몇 벌하고 신발, 침낭 밖에 없어요.”


“얇은 옷은 안 돼, 저기서 옷좀 챙겨놔.”


“네?..감사합니다?


사실은 맨 처음 이것저것 너무 친절히 알려주시고, 공짜로 옷과 장비도 빌려주셨다. 인도에 와서 쉽게 누구를 믿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엄청난 호의에 나는 계속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사모님이 옆집에 방도 구해주시고, 필요한 장비 모두를 구비할 수 있었다. 돈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내일 모래 출발하는 한국인 3분과 지프를 같이 타고 트래킹을 출발하기로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내가 머문 숙소는 하루에 600루피의 싱글 룸으로 윈드풀 바로 옆이었다. 여행에 와서 처음으로 침낭을 쓰지 않고, 이불을 덮고 잘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도 가을이 오기 시작했는지 쌀쌀해지는 밤의 날씨에, 두꺼운 이불이 포근하게 다가왔다.


4. 안나푸르나 푼힐 트래킹


꼭 가야한다고해서, 가기로 결정한 트래킹이었다. 포카라에 와서는 그냥 편히 쉬고 싶었는데, 사장님이 말씀을 들으니 그 말에 홀렸다. 코스도 쉽고, 하루에 6시간 정도만 움직이면 된다고 하셨다. 머릿속에서는, 트레킹 빡하고, 삼림욕을 하면서 쉴 계획이 세워졌다. 특별한 휴식이 될 것 만 같았다.


빌려주신 책을 보니 그렇게 만만히 볼 코스는 아니었다. 정식 명칭은 안나 푸르나 생츄어리 코스라고 하는데, 지리산 종주랑 비슷한 정도라고 나와 있었다.


산행에는 명백히 필요한 물품들이 있었다. 특히 고도는 최대 4,300 정도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밤에는 상당히 춥다고 책은 전했다. 또 하루에 2,500 네팔 루피 정도를 써야 한다고 해서 지출도 계산을 해봐야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모자와 자켓은 한국에 돌아서도 쓸 수 있는 것으로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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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 빌려주신 책과, 대연씨가 보내준 사진이다.

5. 돈까스


원드풀 사장님이 운영하신다고 들었던 식당에 가서 돈까스를 먹었다. 뭐라도 팔아드리고 싶었다. 돈까스를 강추해주셨는데, 한국에서 먹는 것과 비교하여도 엄청나게 맛있었다.


현재 내 최애 돈까스 2위다. 머문 동안 총 4번 갔는데 4번 모두 돈까스만 먹었다. 정말 행복했다. 바라나시 버니까페 돈까스보다 3배 더 맛있다. 가격은 네팔 루피로 500정도 였던 것 같다.




6. 팀스와 퍼밋


대충 짐을 꾸려서 NTB로 팀스와 퍼밋을 발급받으러 갔다. 아침의 포카라는 햇빛이 따스하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도로는 깨끗했고, 줄지어 있는 매장에는 상품들이 넉넉했다. 베스킨라베스, KFC, 노스페이스 등등 없는 매장이 없었다. 멀리에서도 설산이 보이는데, 이상하게 CG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도중 와이파이 이용을 위해서 까페에 들렸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아침을 시켰다. 토스트 위에 반숙의 계란 후라이가 올라간 것이였는데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정말 맛있었다. 내 앞에 앉는 외국인 두 분을 보니, 나도 드디어 여행자가 된 느낌이었다. 인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여행이란게 이렇게 평화롭고 좋은 것이라니!


천천히 걸어서 약 40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NTB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여행객들이 있었는데, 모두 팀스와 퍼밋을 발급받기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발급에는 사진이 필요했는데, 남은 사진 4장을 여기에서 다 썼다. 비용은 총 5000루피가 들었다. 코스에 따라서 퍼밋 비용이 달랐다. 팀스는 2000루피, 안나푸르나 푼힐 코스 퍼밋은 3000루피였다.


발급을 기다리면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나는 별 다른 생각 없이 가는 이곳을,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산을 타려고 모이는 이곳에 정말 꼭 봐야할 무엇이 있을까?



7. 초코바


돌아오는 길에 큰 슈퍼에 들려 1500루피치 초코바를 샀다. 사장님이 하루에 2500루피를 쓸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는 돈을 아끼고 초코바로 버텨볼 생각이었다. 묵직한 초코랫과 사탕들이 과했나 싶었지만 결국에는 내려오기 전에 다 먹었다.






8. 메이커? 페이커?


포카라의 거리에는 등산용품을 파는 곳이 도로 양 옆에 줄지어 있었다. 모두 메이커 제품이었는데, 이상하게 가격은 쌌다. 가격이 너무 싸서 마감이나 재질을 확인해봤다. 하지만 이 역시 상당히 좋았다. 그래서 넌지시 사장님께 “이거 진짜에요?” 라고 물어보니 다 복제품이라고 하셨다. 복제품이긴 하지만, 태그도 똑같은 걸 붙여놔서, 일반인들은 구분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그리고 가짜에도 급이 있다고 하시면서 두 개의 제품을 보여주셨다. 확실히 가짜 중에서도 비싼 것이 훨씬 좋았다. 값은 3000~5000루피 사이로 다양했다. 사장님은 한국 사람들은 노스페이스와 콜롬비아를 좋아하신다고 덧붙이셨다.


나도 자켓 하나를 구매하기 위해서 여러 군데를 돌아 다녀봤지만, 가짜라는 인식이 박히고 나서는 괜히 사기가 꺼림칙했다. 어차피 따뜻하게 입을 옷 하나 장만하는 것이였지만, 괜히 가짜를 샀다가 누군가 알아보면 창피를 당할 것만 같았다.


사실 창피를 당할 것 같다는 생각 자체가, 내가 남들을 입고 있는 옷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옷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브랜드에 의해서 판단되고 있었던 것이다.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음으로써, 부끄러워진다거나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 자체는 부끄러운 모습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옷이 날개가 될 순 있지만, 날개는 그져 날개일 뿐이다. 도움을 주는.





9. 대연씨


매장을 구경하던 중에, 태극기가 박힌 모자를 쓰진 분이 사장님과 실랑이를 하고 계셨다. 아침에 주기로 했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부르신 것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결국에는 아저씨가 아침에 가격을 잘못 알고 부르신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 분이 대연씨였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뒤, 같이 포카라 시내를 구경했다. 대연 씨는 언어치료사라고 하는 직업을 가지고 계셨는데, 언어 발달과 언어를 이용한 치료를 돕는다고 하셨다.


트래킹과 여행이 처음이라고 하셔서, 내가 이태까지 배운 주의할 점과 협상방법을 알려드리며 같이 옷가게를 둘러보았다. 저녁에는 어제 먹었던 윈드풀 사장님의 식당에서 같이 돈까스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 보니, 어차피 내일 만날 사이였다. 내일 지프를 같이 타는 일행 중 하나가 대연씨였다.



10. 소풍 전 날


내일은 드디어 트레킹을 시작한다. 소풍을 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안전히 내려올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같은 지프를 타고 가시는 분들은 포터겸 가이드를 고용해서 올라가시지만 나는 혼자 올라가기 때문에 괜히 더 신경이 쓰였다.


포터와 가이드는 하루에 10~15달러 정도로 고용을 할 수 있었고, 짐도 10kg 정도 맡길 수 있었다. 돈이 더 있었으면, 나도 고용을 했었겠지만 그렇지는 못했다. 사장님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는 시기여서 다른 사람들 꽁무니만 쫓아 다니면 괜찮을 것이라고 다독여 주셨다.


실제로 등산을 하는 동안 큰 위험에 빠진 일은 없었다. 내가 만난 분들 중에는 오히려 포터와 가이드로 인해서 불만을 느끼셨던 분들도 있었다. 길 마지막엔 가이드가 없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하였다. 포터와 가이드가 없었기 때문에, 만나시는 여행자들 모두가 나의 가이드로 맞이 할 수 있었다.


짐은 물을 제외하고 약 8kg 정도였다. 침낭과 잘 때 입을 옷, 우비, 초콜릿, 윤동주 시집, 일기장이 전부였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즐거운 소풍이 될 수 있기를 기원했다.



11. 고라파니로

[울레리-고라파니]



짐을 다시 꾸리고, 원드풀에 남은 짐을 맡겼다. 아침은 150루피에 빵과 차로 해결하고 지프차에 몸을 실었다. 8시에 출발해서 2시간 반을 달려 울레리에 도착했다. 고도가 약 1600m정도 인 곳이니 이미 산 하나를 다 오른 것이었다. 같이 타고 온 일행들은 울레리에서 하룻밤을 보낸다고 했다.


나는 아직 움직일 체력이 있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약 5시간 이상이 남았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고라파니로 바로 출발했다. 고라파니로 가기 위해서는 반단티를 지나야했다. 다행히 가는 도중에, 고라파니에 사는 현지인 친구를 만났다. 얼마나 걸리냐고 하니 3시간 정도면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짐이 없기도 하고 이곳이 고향인 친구라 상당히 잽쌌다. 최대한 그 속도에 맞춰서 이동을 했다. 힘들었지만, 처음부터 길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까무잡잡한 피부 때문에 30은 되어 보이는 얼굴을 가진 친구는 19살이었다. 나중에는 마케팅 쪽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고라피니까지는 3시간 정도가 걸렸다. 도착하니 해가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상당히 추웠는데 숙소를 잡고 옷을 바로 갈아입었다. 음식을 숙소에서 해결하면 숙소비는 200루피 정도로 상당히 쌌다. 하지만 음식은 기본 300~500 사이로 웬만한 음식은 돈까스 가격하고 비슷했다. 일기를 쓰고 난 후, 고산병이 염려되어 아스피린 두 알을 먹었다.


지프차를 타고 올라가다가 맞이한 첫 번째 다리다.

이곳에서 팀스와 퍼밋을 확인받아야 했다.




IMG_6438.JPG 지프차를 타고 올라가다가 맞이한 첫 번째 다리다.이곳에서 팀스와 퍼밋을 확인받아야 했다.

12. BTS는 어디까지?


고라파니에 사는 그 친구는 노래를 크게 틀고서 이동을 했다. 나를 위해 BTS 노래까지 들려주었다. 나도 잘 모르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아이가 정말 신기했다. 네팔의 고산지대에 까지 BTS 노래를 들을 수 있으니 신선했다.


BTS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14년도 군대에 있었을 때, 노래 프로그램에 나온 BTS를 다 같이 보며 나는 이렇게 얘기 했었다. “어떻게 이름이 빵탄이냐, 빵탄도 안 써본 애들이, 채널 돌려라. 100% 망한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 말을 생각하니 정말 부끄러웠다. 어떻게 보면 정작 망한 것은 나이니까 말이다.


문화는 상당히 자연스럽고 수월하게 퍼져나간다. 그 중, 음악은 강력한 전염성과 전달성을 가진다. 노래는 물리적인 국경을 뛰어 넘는다. 일단 전파를 탄 소리는, 오직 마음을 경계로 하는 개인의 국경과 직접 맞닿아 있다. 이 보이지 않는 국경을 통과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 선을 넘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가지 여건에는 가사, 멜로디, 그리고 진심이 있다.


그리고 BTS는 진심을 바탕으로 한 가사와 멜로디로 전 세계의 사람들의 마음 속 국경을 넘었다. 한글로 불려지는 노래가 그 벽을 넘었다.


이 넘기 힘든 벽은 한번 통과하기만 하면 벽은 무너져 섬을 잇는 다리가 된다. 아무리 그것이 한 젊은 세대의 노래라고 할지라도, 가사와 멜로디 속의 진심은 한 세대의 다리를 통해 다른 세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들의 노래에는 한국인의 얼과 기억이 배어있다. 그 노래 자체가 한국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BTS의 노래가 벽을 무너뜨려 만든 다리를 통해 세계의 사람들의 기억에 스며든다.


우리나라의 문화가 우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연결 될 수밖에 없는 세계 속에서 그들의 노래가 보이지 않는 다리를, 그들의 팬들인 “아미”와 함께 보이고 느낄 수 있는 다리로 만들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다.


어떻게 그들의 노래가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냐며, 동감하지 않는 어른들이 많으시리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콘서트 7080에 나올 아이유의 노래를 기다리고 있다. 이 문화를 가지고 우리들은 나이 들어 갈 것이기에 말이다.


그렇기에 BTS가 더욱 존경스럽고, 경이롭고, 기다려진다. 나의 아이유처럼, 그들의 BTS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들의 노래를 듣지 않지만, 지금은 그들이 자랑스럽다. 국뽕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렴. 고라파니의 숙소에서 반성문을 써본다.


IMG_6442.JPG BTS의 노래를 들려준 고라파니에 사는 친구다.나에겐 1일차 가이드였다.




13. 괜찮아요?


저녁을 먹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일본 친구가 곡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밥을 시켜 놓고도 손도 대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나는 배가 너무 고파서 내가 생각해도 엄청 맛있게 볶음밥과 국수를 먹고 있었다. 괜히 미안해서, 괜찮냐고 물으니 안 괜찮단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니,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겠다며 머리를 책상에 비벼댔다.


걸려보지는 않았지만, 고산병 증상이 나타난 것 같았다. 원드풀에서 다른 여행객에게 받은 약을 2알 건네 주었다. 약을 맥이고 밥을 먹이려고 하는데 밥은 먹지 못했다. 결국은 사장님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돌아갔다. 나도 난로 옆에서 시간을 보내다, 잠을 자러 들어갔다. 추위 수준은 혹한기 까지는 아니고 침낭만 있으면 버틸만한 수준이었다.



IMG_6443.JPG 윈드풀에서 빌린 옷을 겹겹이 입었다.입었던 옷 중 내 옷은 신발 밖에 없었다.뒤쪽에 앉아 있는 롯지 사장님의 아들은 투숙객들 사이에서 인기만점이였다.


14. 달빛


새벽 4시 30분, 푼힐전망대를 가기 위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랜턴을 들고 전망대를 올랐다. 나도 그 랜런 빛과 달빛이 비춰주는 길 사이로 계단을 올랐다.


달빛이 이렇게 밝았던가? 똑같이 달이 뜨는 곳에 살았었는데도, 달이 충분히 밝은지 이제서야 알았다. 전깃불에 의지하지 않고서야, 달빛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오히려 충분한 달빛 속에서 비춰지는 랜턴 빛은 어둠 속에서 적응한 눈을 괴롭혔다. 모두가 랜턴을 키지 않았다면, 모두 충분한 달빛으로 산행을 했을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길을 올라가면서, 달빛을 계속 생각했다. 달빛은 햇빛보다는 분명 덜 밝지만, 그렇다고 어두운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달빛 자체가 햇빛과는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고, 쓰임도 달랐다.


달빛과 같은 처지에 있는 것들이 더 있을 것 같았다. 분명 달빛뿐만이 아닐 것만 같았다. 달빛처럼 더 강한 빛에 묻혀 볼 수 없는, 부족해 보이지만 사실 그것만으로 충분하고 아름다운 무엇인가가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도와 세기와 양의 측면은 직관적이지만, 너무 많은 것들이 과소 평가 된다. 무조건 강하고, 많은 것들이 좋다는 것은 착각이었다. 뭔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 찾아봐야겠다. 달빛과 같은 것들을.


15. 푼힐전망대

[고라파니-타다파니-추일레]


푼힐전망대에 입장료가 있는 줄 몰랐다. 그냥 올라가면 될 줄 알고, 지갑을 들고 오지 않았다. 입장료는 100루피였다. 지갑이 없다고 말씀드리니, *롯지에 입장료를 내고 가라고 하셨다.


매표소부터 15분 정도를 올라가니 정상에 도착했다. 해 뜨는 쪽은 지대가 낮고 해지는 쪽은 설산이 늘어져 있었다. 지나고 보니 이곳에서 본 전망이 가장 좋았다.


산은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말이 맹맹하게 느껴질 정도로. 설산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설산을 넘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러 왔다는 스님들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 잘 닦여진 산을 넘기도 힘든데,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넘어 오셨을까.


그리고 나서, 감흥은 없었다. 저기에 오르면 무슨 기분일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바라보기만 하는 곳을 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오르려고 했을까? 명예, 욕망, 성취감? 오직 그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많이 내려오기 전에 먼저 전망대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매표소까지 내려가는 길에서 보이는 설경도 언제나, 최고로 아름다웠다. 아름답지 않은 곳을 찾는 것이 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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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힐 전망대에서의 서광이다. 오른쪽에서 빛이 피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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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같기도 하고, 눈으로 보는데도 뭔가 CG 같았다.


16. 이걸 알아본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매표소 직원 분들이 모닷불을 쬐고 있었다. 나도 따라가서 불에 몸을 녹였다. 한 친구가 내 신발을 알아봤다. 이 신발은 등산화가 아니라 농구화였다. 졸업을 하고 농구를 거의 하지 않은 지 1년이 넘어, 안 쓰는 농구화를 가져왔는데, 그 친구가 처음으로 이 신발이 농구화인 것을 알아본 것이다.


여기 고산지대에서도 농구를 한다고 했다. 7~8명이 3대 3으로 게임을 한다는데, 조금 키만 큰 친구가 나온다면 엄청난 폐활량을 가진 선수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17. 이게 아닌데


빨리 이동을 해서 다음 목적지에서 많이 쉬고 싶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밥을 일등으로 먹고 8시 30분 쯤 고라파니를 떠났다. 다음 목적지인 타다파니는 고라파니 마을 안에서 더 위로 움직였어야 했지만 나는 표지판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를 반대방향으로 하산을 했다.


편하고 신나게 내려오면서 등산이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들 때 쯤, 느낌이 싸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나가는 포터에게 물어보니 다시 고라파니까지 가야한다고 하셨다. 한 시간을 내려왔으니 다시 2시간은 올라가야 했다.

같은 롯지에 머물렀던 친구들 두세 명이 나와 마주쳤는데, 내 얘기를 듣더니 “쏘 쏘리”라고 하며 안쓰럽게 쳐다봐 주었다. 나도 나한테 유감이었다. 다시 고라파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열두시가 넘어 있었다. 고라파니부터 다시 시작한 여정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이미 한바탕 트래킹을 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멋진 풍경을 보면 생각이 하예졌다. 그러다 다시 걸으면, 후회를 반복했다. 체력소모가 너무 심해지니,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포기하고 온천이나 하고 내려갈까 생각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휴식이 아니었다.


새벽 네 시 반부터 시작 된 트레킹이 여섯시가 넘어서 끝날 줄은 이 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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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약 올리, 힘이 들 때 쯤, 한 장면씩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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