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부처님[E.5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1)]

인도 불교 유적지 순례기 : 룸비니 편

by 노루


마태복음 5장 312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윤동주, 팔복




룸비니

2018. 10. 20 ~ 2018. 10. 22


여행은 이제 후반부에 접어들었다. 이곳만 보면 이제 몇군데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천애희견왕(아쇼카왕)은 관정 제 20년이 지나서 이곳에 스스로 와서 친히 참배했다. 여기서 불타샤카무니가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 말의 상을 만들고 석주를 건립하도록 했다. 이곳에서 세존이 탄생하신 것을 기념한기 위한 것이다. 룸비니 마을은 조세를 면제해 주고, 또 생산의 1/8만을 지불하게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이 땅이 바로 석존의 탄생지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불타의 세계, 나카무라 하지메




1. 소나울리로


쿠시나가라로 가기위해 지났던 버스터미널에서 소나울리행 버스를 탔다. 버스에 사람이 다 차서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우르르 내렸다. 버스가 고장 나서 다른 버스로 옮겨 타야 된다는 것이었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달렸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밀리고 밀려서 들어간 뒷자리에서 신기하게 자리 하나가 생겨났다.


갑자기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카라가 쉬기 좋다는데 거기에서는 남은 기간 영영 쉬고도 싶었다. 거기에서 쉬다가 시간 핑계로 계획된 나머지 유적지를 가지 않으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것이라 생각하며 눈을 부쳤다. 마날리에서 만났던 부부가 갑자기 떠올랐다. 지금 어디에 계실까?


버스를 타면 엉덩이가 가렵다. 벌레 때문은 아니었다. 헬스장의 덜덜이처럼, 덜덜덜 떨리는 엔진소리에 맞춰 내 몸도 떨려서 그런 것 같다. 버스의 바운스데로 나도 몸을 이리저리 흔들렸다. 버스의 떨림이 포근했다. 어디에 기댈 수만 있다면 금방 잠이 들 수 있을 거 같았다. 룸비니에 가면, 포카라에 가면 푹 쉬어야지 생각을 했다.


2. 할아버지 셋


앞자리의 할아버지 셋이 티격태격 하셨다. 서로 장난을 치시다가 말다가를 계속 반복하셨다. 버스의 풍경을 기록하려고 액션캠을 키고 있으니, 또 장난을 치기 시작하셨다. 옆에 있는 할아버지가 머리가 없다고 머리를 탁탁 치신다. 찍었던 것 중 가장 재미있었다.



소나울리로 가는 버스안, 앞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옆에 있으신 할아버지 한 분의 머리를 톡톡치셨다.

3. 국경을 넘으면서

4시 정도에 출발한 버스는 7시가 넘어서 소나울리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저버렸다. 당초 계획보다 1시간 이상은 늦어 버렸다. 처음 하는 것에는 항상 완충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해가 저버리면서 조급한 마음이 생겨났다.


버스정류장을 정면으로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인도 출입국 사무소가 있었다. 먼저 인도에서 도장을 찍은 다음에 네팔로 국경을 넘었다. 출입국 사무소 밖으로 나가자마자 환전상이 붙었다. 네팔에서는 인도 돈을 못쓴다, 제대로 환율을 쳐주지 않는다면서 환전을 하도록 나를 꼬셨다.


이미 환전에 관해서는 들은 것이 있었다. 인도와 네팔은 고정 환율을 가지고 있는데 1:1.6의 비율을 가진다고 한다. 실제로 인도 50루피 지폐는 80루피로 통용되고 있었다. 환전상을 무시하고, 국경을 넘어 네팔 출입국사무소에서 비자를 발급 받았다. 15일에 25불짜리 비자를 신청하고, 나머지 돈은 사무소 아저씨에게 환전을 했다. 75달러를 1달러에 115루피로 계산하여 8650루피를 받았으니, 오늘 내일 급하게 쓰기에는 딱 알맞은 돈이었다.


아저씨들은 느긋하게 수속을 밟아주셨지만, 15분 만에 입국 수속은 정상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4. 니하오! 니하오!


입국 수속을 밟던 중 중국인 부부가 들어왔다. 나보다 늦게 왔지만 나랑 거의 비슷하게 수속이 밟혀가고 있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어디를 가냐고 아저씨에게 물으니, 아저씨도 룸비니를 향하신다고 하셨다. 반가운 마음에 같이 가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사무소 아저씨를 통해 택시를 불렀고 룸비니 근처의 도로까지 총 2000루피에 가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이미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혼자 가기에는 위험요소가 많았다.


중국인 부부는 나의 부모님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였다. 아저씨는 영어를 잘하셨지만, 아주머니는 전혀 하지 못하셨다. 대화 중에도, 아저씨는 아주머니를 위해 중간요약 및 통역을 계속 해주셨는데 쏘스윗하셨다. 아저씨는 기상학자라고 하셨는데, 농지의 기상에 관한 연구를 하셨다는 것 같았다.


메인로드에 도착한 후, 중국인 부부는 다른 중국인 관광객들이 머무는 곳으로 갔다. 나는 처음 계획대로 대성석가사로 향했다. 하지만 운전사는 대성석가사까지는 500루피를 더 내라고 요구했다. 실갱이를 했지만, 전적으로 나에게 불리했다. 다른 릭샤도 없었고, 저 택시마저 없으면, 사람들에게 물으면서 대성석가서로 가야하는데 개들이 너무 무서웠다. 울며 겨자 먹기로 500루피에 출발을 했다.



5, 싸울 준비


아까는 중국인 부부와 같이 있어 외국인 3명 현지인 2명 이었지만 이제는 나 혼자였다. 되도록 나 혼자 되는 경우는 피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상황과 마주 해야 할 땐 싸울 준비가 필요했다.


더군다나 이 때는 2대 1이었다, 룸비니까지 가는 길은 거의 시골 길이나 다름이 없어 도움을 청할 사람도 드물었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을 했다. “수상한 동작을 하면 물어뜯고서라도 도망치리라” 그리고 보팔에서 산 만 암페어 짜리 샤오미 보조베터리를 손에 쥐었다.


이게 들고다니다 보니 꽤 단단해서 짱돌같이 사용기 가능할 것 같았다. 다행히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대성석가사 바로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려서 500루피를 건네주었다.


6. 한국 절 대성석가사


일단 한국 절이 확실하다고 생각이 드니, 긴장이 팍 풀렸다. 다행히 흡연을 하러 나오신 한국 여행객 한 분이 계셔서 더욱 안심이 되었다. 곧 관리자분이 나오셔서 도미토리 방 하나를 배정해 주셨다. 아무도 없는 방이었지만, 한국 절, 한국 사람이 있는 곳이어서 마음이 너무 편했다. 와이파이가 약하게나마 잡혀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생존신고를 하였다. 먼지에 쩔은 몸을 씻고 모기장을 설치했다. 오랜 간만에 몸도, 마음도 편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대성석가사의 규모는 인도 네팔의 어느 한국 절보다도 크다. 주위 절과 비교해도 규모와 시설이 상당히 준수해서, 한국 관광객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관광객들도 이곳에 머무른다고 한다.


절에서는 숙식 모두를 해결할 수 있고, 자전거도 빌릴 수 있다. 요금은 기부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네팔로 넘어가기 위해서 지나쳐야 하는 출입국사무소이다.
조마조마하게 대성석가사에 도착했다.
대성석가사에 대한 안내가 쓰여있다.



7. 새벽예불


새벽예불은 4시 30분이라기에 4시에 알람을 맞춰 일어났다. 새벽의 대성석가사는 웅장하게 솟아 있었다. 한 그루의 소나무처럼. 새벽의 별들은 더욱 많았다. 시력이 좋았다면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이곳의 불당은 하나이고 무지하게 컸다. 법당 좌측에는 *미타삼존불이 있었고, 정면에는 **석가모니 삼존불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역대 조사들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불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회색 그대로의 콘크리벽에 불화가 걸려 있었다.


예불은 스님은 불당을 도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들어오셔서 종을 치시고 예불이 진행됐다. ***반야심경을 독송한 후, 108를 하였다. 오랜만에 하는 108배에 땀이 났다. 108배는 오디오 소리에 맞춰 진행되었다. 참회하고 감사해야할 108가지에 대하 하나씩 나올 때마다 절을 했다.


나를 제외하고도 5분 정도의 한국분과 2분 정도의 외국분이 예불에 참여하셨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했던 3번의 108배를 했다. 재밌었던 것은 할 때마다 찔리는 포인트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새벽, 아침, 저녁 예불 모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새벽과 저녁예불은 모두 위와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어 약 4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미타삼존불 : 아미타부처님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관세음보살, 오른쪽으로는 대세지보살을 모신 것을 말함.

**석가모니 삼존불 ;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왼쪽은 문수보살, 오른쪽으로는 보현보살을 모신 것을 말함.

***반야심경 :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준말. 260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설법하시며 공사상을 가르치심.



8. 아침공양


새벽예불이 끝나 5시 50분에 아침 공양이 시작되었다. 이곳의 식사는 매끼마다 국과 숭늉, 김치가 나왔고 그 중 깍두기는 일품이었다. 오랜만에 먹는 한국식 국을 먹으면서, 내가 이렇게 국물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어른들이 국물이 없으면 식사를 하지 않으시는 걸 보고 뭘 그렇게 챙겨 드시나 했었는데, 한국인의 밥상에서 국은 국만의 역할이 있었다. 국이 있으니 밥이 술술 잘 넘어 갔다.


처음에는 현지음식만을 먹으리라 다짐했는데, 한 번, 한국음식과 다른 나라 음식을 먹고 나서는 굳이 인도음식을 먹게 되지는 않게 되었다.


무튼 아침 공양에서는 바나나와 빵같은 부식이 있는데, 일찍 가야 챙겨 먹을 수 있었다.



일대기를 담은 책에서는 부처님이 룸비니에 태어나시기 전에 어느 곳에, 누구를 부모로 태어날지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꽤나 재밌었다. 지금도 전세계와는 꽤나 다른 인도의 다양성, 종교적 포용성을 그 이야기가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이러한 가르침이 다른 곳에서 시작되었다면 종교라는 이름으로 억압 받으며 성장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부분을 발췌했다.


다섯 가지 조건을 관찰하시다


그러나 보살은 하늘 사람들의 간청을 잠시 보류하고서, 태어날 시기와 태어날 나라와 지방과 가계와 어머니와 수명의 다섯 가지를 관찰하였다.


우선 인간의 수명이 너무 길 때는 부처님이 나타날 적당한 시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때의 중생들은 나는 것과 늙는 것과 죽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따라서 부처님의 설법이 지니는 세 가지 특정의 장엄을 가질 수 없다.

즉 그들에게는 덧없고, 괴롭고 나가 없다고 설명해 주어도 무슨 말인가 의심하지도 않고, 알려 하지도 않고, 믿으려고도 않는다. 때문에 부처님이 설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교화는 효력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수명이 너무 긴 대는 적당한 시기가 아니다.

또, 인간의 수명이 너무 짧을 대도 적당한 시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때의 중생들은 번뇌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번뇌에 가득 차 있으면 가르침을 들어도 거기에 따르지 않고 가르침을 곧 잊어 버린다.

그러므로, 이 때도 적당한 시기가 아니다. 인간의 수명이 너무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때가 부처가 나타나기에 알맞은 때이다. 보살은 이같이 시기를 관찰한 다음, 지금이 적당한 시기라고 생각하였다. 다음으로 태어날 고장을 관찰하고 인도의 가비라 성이 적당하다고 결정하였다.

다음에는 가계를 관찰하였다. 그는 우선 많은 옛날의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가계를 살핀 다음, 이렇게 생각하였다.

"모든 부처님은 미천한 집안에는 태어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집안에 태어난다.

지금 인도의 *가비라 성에서는 **찰제 족이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고 그 중에서도 ***석가족이 으뜸이다. 나는 석가족 중의 ****정반왕을 아버지로 해서 태어날 것이다...."



신팔상록, 동국대학교


*가비라성 : 카필라성으로, 지금의 피프라흐와에 위치했다.

**찰제리 : 인도의 카스트 계급에서, 크샤트리아 계급을 의미.

***석가족 : 샤캬족을 음사한 말로, 부족의 이름임

****정반왕 : 석가모니 부처님의 아버지로, 숫도다나왕이라고 불림.



이러한 관찰이 있은 후, 베샤카 달의 보름날(4월 그믐) 석가모니 부처님은 하얀 코끼리가 되어 어머니인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 속으로 들어가신다. 그리고 열 달이지나, 해산달이 되자 마야부인은 아이를 낳기 위해 친정 가까이의 룸비니 동산에 가게되고 그곳에서 아이를 낳게 된다.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발췌했다.


탄생


저 룸비니의 훌륭한 동산

흐르는 샘물 있고 꽃과 열매 우거지고

한가하고 고요하여 선사하기 알맞기에

거기 나가 놀기를 왕에게 청하였네

왕은 그 마음 알아차리고

그 마음 기특하다 생각하시어

안팎의 권속들에 분부를 내려

동산숲으로 함께 나가게 하다

그때에 왕후 마야 부인은

아기 낳을 때가 온 줄 스스로 알고

편안하고 훌륭한 자리에 눕자

백천 채녀들은 왕후를 모시었네

때는 사월도 팔일

맑고 화한 기운 고르고 알맞은데

그는 재계하고 깨끗한 덕 닦았기에

보살은 오른쪽 옆구리로 나섰도다

큰 자비는 온 세상을 건지려 하였기에

그 어머니를 괴롭히지 않았나니

...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나셨네


붓다 차리타, 마명

보살은 태자로 탄생하자마자 먼저 그 천안으로 사방을 돌아보고 모든 국토와 온갖 생물을 천천히 살펴본다.

그리고 **지계와 선정과 지혜와 선근에서 자기만한 경지에 도달한 이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은 이러한 뜻을 가리킨다. 그리고 동, 서, 남, 북, 상, 하의 여섯 방위를 향해 각각 일곱 걸음씩 내딛자 그 걸음마다 연꽃이 나타난다.


불타 석가모니, 와타나베 쇼코, 법정 옮김

*오른쪽 옆구리 : 크샤트리아 계급을 의미, 머리는 브라만, 발은 수드라를 의미.

**지계 : 계율을 잘 지킴.




9. 마야데비사원


아침을 먹은 뒤, 200루피에 자전거를 빌렸다. 그리고 7시 쯤, 마야데비사원으로 출발했다. 마야데비사원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낳았던 자리 위에 세워진 사원이다. 마야데비 사원은 힌두교 사원으로 남아 있던 사원이 불교 유적지로 밝혀지면서, 기존의 사원을 허물고 재건축 되었다고 한다.


불교가 인도에서 잊혀진 이후로, 힌두교 신자들의 오해로 인하여 힌두교의 신으로서 마야왕비가 모셔진 것으로 보였다. 마야대비라는 여성성을 가진 석상이 힌두의 여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 다른 유적지 역시 이런 오해로 만들어진 곳이 많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마야데비사원의 입장료는 500루피와 카메라 입장료 2달러였다. 규모는 부처님이 태어나셨다던 그 자리에 지어진 사원과 목욕을 시켰다는 연못이 전부였다. 연못 뒤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나무 주위에는 스님들이 탁발을 하고 있었다.


사원으로 들어가면, 유리관 아래에 모셔져있는 터를 볼 수 있는데 그곳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신 자리라고 한다.


사진을 금지 된 곳이었고, 긴 줄로 인해서 유적의 터를 훍어 본 후, 바로 이동해야 하는 곳이었다. 몰래 라도 사진을 찍어 놓지 못한 것이 아쉽다.


국제사원보호 구역 중앙에 연못이 하나 있었다. 아침이라 안개가 많았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야 했다.
마야데비 사원의 전경이다.
마야데비 사원 옆에 직사각형의 연못이 있었다.
나무 주위에 앉아 계신 스님들께, 가지고온 돈과 음식들을 나눠 주셨다.
룸비니의 아쇼카 석주이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과 유년시기를 보낸 장소는 다르다. 아이가 태어나 29살 청년이 됐었던 곳은 카필라바스투라는 곳이지만, 교통편이 아주 열악하여 가기를 포기했다. 유년시기에 관한 이야기에도 인상 깊은 장면들이 많다.


어떻게 보면 태어날 때부터 깨달음을 얻을 운명을 가진 사람처럼 나오지만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 자체는 한 인간, 한 아이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한 부족과, 가족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진 한 사람이 출가를 결정하기 까지는 여러 사건들이 있다. 그중 첫 째로, 삶의 실상을 마주치고 충격을 먹는 장면을 발췌했다. 태자는 성 밖으로 소풍을 나가고 늙은 사람, 병든사람, 죽음사람을 마주친다. 그리고 저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나도 저와 같이 늙겠는가?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어찌하여 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느냐?"

마부는 *정거천의 신통력에 눌려 정직하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늙은이입니다. 전에는 젊었으나 점점 쇠약해지고 원기를 잃어 몸은 가누기가 어렵고, 모습은 추해져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노인의 여생은 얼마 남지 않았고, 모든 사람은 이 사람과 같이 늙는 것을 피할 수 없읍니다."

"그렇다면 나도 저와 같이 늙겠는가?"

"무릇 태어난 모든 사람은 귀하고 천한 것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늙는 괴로움을 면할 수가 없읍니다."

*정거천 : 일종의 하늘 신


부처님의 아버지인 숫도다나왕(정반왕)과 실갱이 하는 장면을 적어왔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왕위를 이어주기를 바라지만, 이 아들은 돈과 명예에는 관심이 1도 없다. 아버지는 떠나지 말라 애원하지만, 아들은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


세 가지 소원

"싯다르타, 네가 출가하려는데는 그럴만한 충분한 까닭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와 이 나라와 석가족의 장래도 생각해야 한다.

더욱 야수다라 태자비와 라후라의 장래는 어찌 되겠느냐. 나는 하루라도 빨리 왕위를 물려주고 편안한 여생을 지내고 싶다. 생각을 돌이켜 다오. 출가 이외의 네 모든 소원을 들어주겠다."

"어바마마, 소자가 원하는 것은 제왕의 권력도 아니며, 풀잎에 맺힌 이슬 같은 인생의 부귀영화나 관능의 쾌락이 아닙니다.

꿈결같이 한 세상을 지내면, 적막한 묘지의 한낱 무덤만을 남길 인생은 결코 사랑하여 집착한 것이 못되옵니다. 진실로 소자가 바라는 것은 생과 늙음과 병과 죽음을 해탈 하는 것이며, 나고 죽는 일이 없는 열반과 생사의 고통을 여의고 무위의 안락함과, 거짓된 나를 버리고 진실한 나를 찾아 번뇌가 없는 깨끗한 진리의 세계에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끝내는 열반을 얻게 할 뿐만 아니라, 부모와 친척이 모두 부처님 회상에 모이기를 소자는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 싯다르타 그런 무리한 이야기가 어디 있느냐..."

신팔상록, 동국대학교

스물아홉 출가하기 전의 부처님은 세 사람의 태자비가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아쇼다라부인 사이에서 아들이 출생한다. 아들이 출생소식을 들은 태자는 출가의 결심을 굳힌다고 한다.


라훌라의 탄생


처음 세 차례의 외출에서 노인과 병자와 죽은 사람을 만나 도중에 되돌아섰던 태자는, 네 번째 외출 때 사문을 만나 뒤 자기 생애의 목표를 분명히 깨달았으므로 마음 가볍게 그대로 동산에 가서 해질녘까지 즐겁게 놀았다.

동산의 못에서 미역을 감고 향을 뿌린 다음 새 옷을 입고 산뜻한 기분으로 돌아갈 채비를 차린다. 바로 이때 성 안에서는 태자비가 사내아이를 낳았으므로 숏도다나왕은 기뻐하면서 급히 시종을 보내 태자에게 알린다. 이 소식을 들은 태자는 이렇게 외친다.
"라훌라가 태어났구나!"
라훌라란 ‘장애’라는 뜻이다. 사랑과 애착의 굴레가 늘면 출가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말로 인해서 그 아이는 라훌라라고 불리게 되었다.


불타 석가모니, 와타나베 쇼코, 법정 옮김



10. 연못에 앉아


연못에는 잉어와 거북인지 자라인지가 목을 내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오고 가고 있었고, 신자들은 나무 주위에 앉아 있는 스님들의 발우에 넉넉하게 챙겨온 돈과 음식을 넣어주셨다.


30분 정도를 이 곳에 앉아 한 아이를 생각했다.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한 아이가 이곳에서 태어나, 인도의 땅을 누비며 깨달음을 얻고, 그 얻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그 가르침은 입에서 입으로, 걸음에서 걸음으로 퍼져나가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과정을 상상하는 일은 약간 소름이 돋는 일이었다.


그럼 그의 일생은 정해져 있는 것이었을까?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한 사람의 일생이 끝났을 때, 그 사람의 이야기들은 운명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만큼 매끄럽게 이어져나간다. 그렇다면 전쟁에 의해서 죽는 어린 아이도,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죽는 것일까? 그리고 이 곳에 있는 나 조차도 필연적으로 있는 것일까? 답도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이어졌다.


운명이 있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운명이 없다고 해도 사실 바뀌는 것은 없다. 아무리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나를 누군가 본다고 하여도, 나는 애초에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벗어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시선 속에서 나는 내 눈 앞에 일에 기쁘고, 슬플 수밖에는 없다. 단지 그것만 알 수 있다.


그 아이도 그렇지 않았을까? 자신을 둘러싼 여러 예언은 둘째 치고, 그의 눈앞의 슬픔과 기쁨들이 그를 길을 떠나게 만들지 않았을까?



11. 팔복


시 속의 한 인물이 떠올랐다. 그 인물은 윤동주 시인의 팔복이라는 시 속의 화자였다.


팔복이라는 시는 한번 보고 외울 수 있을 만큼 간단하다. “슬픈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는 어구가 여덟 번 반복 되고,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는 문장으로 시가 끝난다.


여행 중, 나는 이 시는 읽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가 반복하여 써 놓은 어구처럼, 도대체 어떻게 슬픈 사람이 복이 있는 것이라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슬퍼야만 복을 얻을 수 있나, 그렇다면 내 눈 앞에 있는 슬픈 현실들에 마냥 슬퍼해야만 하는 것일까? 복이 있는 것이라면 기뻐야 하는 것인데 어떻게 슬프기만 해야 한다는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말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눈 앞의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슬픈 미래에 대해, 절대적인 존재에게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시 속의 이를 악물고 소리치는 사람과 길을 떠나는 청년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졌다. 오래전 길을 떠난 그 역시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괴로운 현실에 대해 그저 침묵하는 것이 아니였다. 슬퍼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개소리에, 그도 자리를 벅차고 나온 것은 아닐까? 혼자 상상을 해보았다.



소나울리로 가는 버스 위에서. 아저씨 셋이 장난을 치신다. 형제일까? 친구일까? 대머리 할아버지를 톡톡 치신다.
대성석가사로 가는 택시 안에서. 샤오미 배터리를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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