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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링기 Feb 27. 2022

[노] 조상 복 있는 사람은 제사를 차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제사 마스터가 되었지.

  어느 순간부터 명절은 즐겁지 않다. 대학생 이후로 명절날 집에 가는 일은 의무처럼 변질되었다. 연휴에 여행을 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집에 가만히 누워있고 싶었다. 부모님이 계신 본가로 가기 위해서는 미리 티켓팅을 하고 기차나 비행기를 타서 이동을 해야 한다. 가만히 좁은 좌석에 앉아있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피로를 자아낸다. 먼 길을 넘어 집에 가면 누워있기보다는 음식을 거들고 할머니 댁에 가서 상을 차리고 치우는 행위를 반복해야 한다. 콩쥐팥쥐의 콩쥐처럼 하루 온종일 집안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서울에 혼자 지내며 누워있거나 빈둥거릴 수 있다는 기회비용을 떠올리며 참 아쉬웠다.


  머리가 좀 커지고 발언권이 생기자 몇 번 서울에서 명절을 혼자 보냈다. 부모님은 혼자서 밥이나 챙겨 먹겠냐고 안쓰러워했지만 집 앞 편의점이 존재하는 한 굶을 일은 없다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했다. 비비고 만두와 오뚜기 사골국물로 떡만둣국도 해 먹으며 1인 명절을 즐기는 것도 꽤 좋았다. 코로나가 창궐하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명절을 건너뛰기도 했다. 아쉬운 척했지만 몇 안 되는 코로나의 순기능이라고 은밀히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오미크론이 사회 화두로 떠오르며 22년의 설날도 조용히 모르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집에 갔어야 했다. 결혼 전 마지막 명절이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인 만큼 혼자 푸지게 쉬어볼까, 고민했지만 이러다가 죽어서 불효자의 종착지인 한랭 지옥으로 직행할까 봐 서둘러 기차표를 끊었다.

진짜로 많이 축소화된 차례상

  왜 나는 집에 가기 싫어할까. 이동하는 시간도 방법도 귀찮고 평일의 피로가 쌓여있는 것도 그 이유이지만, 무엇보다도 20세기의 불편한 명절 풍습이 우리 집에는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환갑이 넘은 우리 엄마는 차남에게 시집을 왔지만 어쩌다 보니 큰며느리 노릇을 하고 있다. 엄마 친구들은 자식도 다 키우고 시댁도 자연적으로 소멸되며 자유 부인이 되었으나 우리 엄마는 아직까지 전통적인 며느리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 다행히 어릴 때처럼 만두를 빚거나 각종 전을 부치지는 않는다. 만두와 송편은 사 오고 전은 가족들 몰래 반찬가게에서 수급한다. 나물 몇 종과 갈비찜, 소고기 뭇국이나 토란국을 준비하는 것으로 비교적 간소화되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입은 열 개가 넘는데 음식을 준비하는 건 우리 엄마 하나이다. 아빠와 큰아빠가 도와준다지만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 고양이 손이나 빌리는 격이다. 상을 차리는 거나 치우는 건 나와 동생이 곧잘 하지만 엄마는 웬만하면 우리에게도 쉬라고 말하고 작은 몸으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 "어차피 시집가면 다 할 텐데 뭐하러 벌써부터 해."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그 말이 참 싫었다. 시집가면 나도 엄마처럼 앉을 새 없이 일만 하게 되는 걸까? 나를 걱정하고 위하는 엄마의 한 문장에는 생각할 거리가 너무나 많았다. 할머니 집에서 엄마 혼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도 싫었지만 나 또한 엄마처럼 명절마다 쉬기는커녕 눈에 핏줄이 터질 정도로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한테 미안하지만 최소한 명절만큼은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밥상을 치우자마자 과일을 깎아내고 본인은 과일 심지를 챙겨 먹는 우리 엄마. 통통한 과일을 권해도, 앉아서 같이 먹자고 권해도 엄마는 부엌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게 편하다며. 삼십 년이 지나도 시댁은 시댁이고 마음의 거리는 여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본격적으로 결혼을 준비하면서 나에게 다가올 미래의 명절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명절은 번갈아가며 서로의 집에 먼저 가고 제사는 참석하기 어려우며 효도는 각자 알아서 하자고 매섭게 선을 그었다. 남자 친구는 흔쾌히 알았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도 믿음직스럽지 않아서 한 두 달에 한 번씩 우리의 약속을 상기시키며 재차 확답을 받아내고 있다. 하도 보기 싫은걸 많이 봐서 그런 걸까, 남자 친구는 평온한 골든 리트리버처럼 고개를 끄덕이지만 나 혼자 성질난 치와와처럼 으르렁거린다. 이것이 성장 과정의 중요성인 걸까. 나도 모르게 겪어보지 않은 시댁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명절에 관련하여 이처럼 날을 세우는 것은 나뿐인 게 슬그머니 화가 난다. 주변을 보면 대다수 여자 사람 친구들만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다. 명절에 며칠을 가야 하는지, 가면 얼마나 자고 와야 하는지, 음식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차례상을 차릴 때 ‘홍동백서’ 라는데 홍은 무엇이고 백은 무엇인지. 결혼하기 전에는 오, 쉽지 않네,라고 넘어갔던 그녀들의 질문이 나에게로 돌아와 나 자신을 고민하게 만든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남자 친구도, 그리고 많은 남성들도 결은 다르지만 각자의 고민이 있어 보인다. 명절이 뭐라고. 그냥 먹고 놀면 되지 쓰잘데기 없는 관습과 의미가 퇴색된 행위가 우리 모두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말 부자인 친구들은 명절이 즐거워 보인다. 늦게 일어나 외식을 하고 명절 전후로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거나 그 시기에 맞춰서 해외로 여행을 가는 경우가 많다. 부를 물려주신 조상님들의 차례상은 전문가들에게 아웃소싱을 돌려놓는다고 한다. 역시 조상복 있는 사람은 명절에 비행기를 타는 법이다.


  내가 비행기를 타기는 글렀으니 후손이라도 태워주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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