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3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여수EXPO 기차역.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20분을 굽이진 길을 헤쳐나가 겨우 도착한 숙소는 왜 이곳의 지명이 돌산읍인지를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 다행히도 택시를 타기 전에 2박 3일 치 먹고 마실 것들을 미리 사는 것을 까먹지는 않았다.
돌산읍. 말 그대로 돌산. 이곳저곳을 돌아봐도 어디에나 산이 보이는 곳.
게다가 내가 홀로 머무를 숙소는 그 돌산의 끝자락, 가파르게 깎인 절벽 바로 위에 위태롭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정말 마음만 먹으면 바로 바다로 다이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낑낑대며 옮긴 짐을 겨우 풀었을 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느새 쓰임새를 사냥하러 나간 뒤였다. 화를 내고 싶어도 그럴 힘이 없을 정도로, 한여름 더위에 고된 노동으로 인해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다.
저물어가는 노을을 등에 지고, 넋을 놓고 잠들어버렸다. 늦은 저녁을 먹으며 이틀 동안 마실 값싼 와인을 땄다.
꿀꺽꿀꺽.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해적들이 럼주를 마실 때처럼, 마음 놓고 병나발을 불어 본다. 왠지 모를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파도와 함께 밀려온다.
그렇게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가,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손에 집히는 감자칩을 하나 물고, 다시 바다를 바라보고. 몇 시간이 흐르는지 모를 정도로 그 지루하지만 중독적인 루틴은 반복되었다. 내심 사냥을 나간 그가 돌아오기를 기대했지만, 그럴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았고, 와인을 반 이상 비워내니 술에 슬슬 취하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술김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숙소 안 침대에 몸을 구겨 넣는다. 노래 사이사이로 바깥의 소리들이 들려온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풀벌레들의 아름다운 하모니, 그리고 바닷물이 돌산에 부딪히며 찰싹이는 소리. 어쩌면 너무나 낯선 곳에서의 첫날밤이기에, 두려움을 떨치려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밤공기에 얹혀 떠다니던 노랫소리는 점차 잦아들었고, 이틀 날의 해가 짙게 깔린 어둠을 걷어내며 떠오르고 있었다.
『앞뒤로 30날』은
삶의 크고 작은 분기점의 앞뒤로 3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면서, 자신을 마주하고 마음을 다 잡는 솔직한 고백이자 성찰의 기록입니다. 매일 남은 혹은 지난 날짜를 체크하며, 주제에 따른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