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참 멋진 쓰임새를 가지고 있군요!
그림 솜씨가 미천하야 이런 정도로만 표현이 가능한 것이 아쉽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본 내 쓰임새는 대략 이런 모습이었다. 꼬리 부분에 아주 조금 남은 쓸모를 제외하면, 온몸이 하얀 것이 완전 민둥산이었다. 그래선지 괜히 눈빛이 더 시퍼렇고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어디에 숨었길래 이리도 안 보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저 놈은 분명 나를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다 못난 주인을 만난 탓이니.
그럼 도대체 원래 쓰임새는 어떻게 생겼기에 이리도 자기 탓을 하는지 궁금할 것 같기도 하다. 직접 그려서 표현하기에는 어려우니, 대신 참고가 될 만한 사진을 보여주도록 하겠다.
저 윤기가 자르르한, 탐스러운 털과 또랑또랑한 눈매를 보라. 아, 물론 모든 쓰임새가 저렇지는 않다.
어떤 쓰임새는 아주 뚱뚱해서 날지도 못해 뒤뚱거리기도 하고, 목이 앞으로 꺾여 땅만 보고 다니기도 한다. 우는 소리가 아주 날카롭고 시끄러워 주변의 타박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는 성질이 아주 사나워 주인과 서로 물어뜯기까지 한다니, 그럴 정도면 어지간한 원수지간보다 더 끔찍한 사이일 게다.
아주 가끔씩은 공작새마냥 화려한 날개를 한껏 펼치고 다니는 쓰임새를 볼 때도 있는데, 정작 그 자세를 유지하느라 온 몸을 바들거리는 것을 보면 절로 코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여튼, 보기 좋은 것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어서, 멋지고 매력적인 쓰임새는 주인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 나도 그런 부산물들을 누리고 싶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1년 1개월 전을 끝으로 내 쓰임새를 마주한 적이 없다.
오늘은 그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남기고 잠을 청해야겠다.
'오늘은 쓰임새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화이팅!'
Interviewer: 스튜디오 빌롱잉스
Interviewee: 나
Q1. 첫 번째 임보중 프로젝트의 이름은 작가의 예술 생태계와 닮은 야생동물 <고라니>였다. 당신의 임보중 프로젝트의 이름을 짓는다면 무엇으로 하겠는가?
쓰임새!
임시 보호를 부탁드린 그때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봤다. 그런 제안을 건넨 이유는 적어도 내 물건들이라도 적절한 쓰임새를 찾길 바라는, 미안하고 간절한 마음이었다. 내 방에서 죄 없이 먼지만 덮어쓴 채 잊혀지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 가장 생각을 많이 하던 주제가 쓰임새였다. 예전부터 자취 생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많이 했었기도 하고,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있었고. 임시 보호라는 개념과 임시 공간이라는 내 거처도 서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식의 스토리가 어쩌면 너무 내가 선호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조금씩 과한 느낌.
(생략)
두 번째 임보중 프로젝트 전시 <쓰임새를 찾아서> 소개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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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끼는 소중한 아이들이니 잘 부탁드려요."
그로부터 며칠 후 실제로 그가 데려온 가구들은 모두 새 것이나 다름이 없으며 하나같이 세련되고 멋진 디자인 제품들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그의 물건들이 우리의 물건들과 어울리도록 재배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더불어 그들에 대한 애정과 소중함이 남달리 느껴졌던 그의 한 마디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문득 그가 궁금해졌고 그의 가구들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그와 그가 소유한 물건들 사이에는 우리가 모르는 관계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 관계 속의 필연적인 에피소드는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조명은 다시 켜졌고, 의자들은 누군가 앉기를 기다리며 곳곳에 놓여지고, 상자 안의 초들은 맘껏 향기를 퍼트렸다.
그는 우리에게 가구들을 잠시 빌려준 것일까? 아니면 잘 부탁한다며 영원히 맡긴 것일까?
빌려준 것도 맞고, 맡긴 것도 맞는 모호한 가운데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임보중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