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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Aug 23. 2021

-1, 못다 한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역시나 쓰임새가 당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나 묘하게 조화가 잘 맞는 조합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 쓰임새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세. 더는 무리야.”


당치도 않은 소리라며 화라도 내려 입을 여는 순간, 나는 그의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진하게 느껴지는 피의 맛과 냄새. 참 오랜만에 흘려보는 코피네.




정신을 잠깐 잃은 듯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맞이하는 아침 햇살… 따위를 편하게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는 오늘도 나보다 한참 일찍 일어나 내 의자를 고고한 자태로 점유하고 있었다.


“어제 미처 하지 못한 질문이 있어요. 이건 꼭 대답을 듣고 싶어요.”


“일어나자마자 부지런도 하구만.”


“대답이나 해줘요. 그래서, 내 쓰임새를 찾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는 잠시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분명 답을 모른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해도 되는 것인지를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잠깐의 침묵을 끝내고, 그가 입을 열었다.


“… 쓰임새를 데리고 가야지. 내 세상으로.”




“그럼 나도 하나만 묻겠네. 왜 쓰임새를 찾으려고 하는 게야?”


“그거야…”


그러게요. 왜 나는 쓰임새를 찾으려 하는 걸까요. 그렇게 우연히 마주치기 전까지는, ‘그’가 갑자기 나타나서 그게 쓰임새였다는 것을 알려주기 전까지는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였는데 말이죠.


“아, 맞다. 분명 쓰임새는 모든 존재에 깃들어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내 쓰임새는 없냐구요!”


“어딘가 있겠지.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을 뿐. 그럼 그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찾으려는 게야?”


“그런 걸로 해요 그냥. 나도 쓰임새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요.


억지로 그의 추궁을 뿌리치고 나는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며칠 동안 겪은 일들이 너무나도 많고 황당해서, 그냥 이대로 다음 날, 다음 주까지 잠들어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그날은 그냥 하루를 흘려보냈다.






     『앞뒤로 30날』은


내일, 그리고 어쩌면 모레까지도 쉬어갑니다. 


전환점을 맞이하여 잠시 숨을 돌리고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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