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바쁜 와중에
그렇게 꿈의 클라이막스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트리거는 역시나 알람 소리였다.
긴박했던 꿈속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상큼하고 발랄하게 울려 퍼지는 멜로디.
눈을 번쩍 뜬 나는 혹여나 그의 수면에 방해가 될까, 황급히 알람을 끄고 그의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평소 그가 일어날 시간보다 한참 이른 탓인지, 그는 작고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알람이 울린 시간은 5시 43분. 최근 몇 달간 정신을 차려본 적이 없는 생소한 시간이 내 스마트폰 정중앙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허나, 이렇게 멍하니 사색에 잠길 시간은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내가 무슨 일을 하러 가는 것인지를 알려준 적이 없었군.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나는 촬영팀원(이라 쓰고 민폐덩어리라 읽으면 되겠다)으로 일하게 된다. 조금 독특한 것은, 제품 촬영 현장의 촬영을 하는 일이라는 것. 보통 이런 일을 촬영 스케치라고 하던가.
어찌 됐든,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제시간에 맞게 출근하는 것이다. 촬영 스튜디오가 서울을 한참 벗어난 곳에 있기 때문에, 그것조차도 쉬이 달성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서둘러, 하지만 그가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나갈 채비를 마치고선 그에게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잘 자요. 오늘은 내가 더 늦게 돌아올 테니까!”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부터 어깨가 빠질 것 같다. 삼각대며 카메라며 보조 배터리며, 챙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캐리어를 끌고 갈 것을. 몇 백 년 전 보부상이 된 것 마냥, 짐을 억지로 이고 지고 끌고 당기고.
시작부터 쉽지 않은 하루임은 틀림없었다.
그렇게 겨우 제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촬영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거대한 트럭이 제품을 잔뜩 싣고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짐을 내리는 첫 순간부터, 다시 짐을 싣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촬영은 끊이지 않아야 했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온몸으로 바쁘다는 신호를 보내며 삼각대를 펴고 카메라를 얹어 촬영을 시작했다. 숨이 꽤나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카메라만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다 보니 금세 평온한 상태로 돌아왔다.
모두가 바쁘게 일하고 있는 순간을 담는 일.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혹여나 방해가 될까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카메라로 이곳저곳을 담아내기를 두어 시간. 잠시 굽어진 허리도 펴고 한 숨을 돌릴 겸 스튜디오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본 적이 있는, 익숙하면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