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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Sep 03. 2021

+7, 다스리는 법.

있다가도,없는듯이.

“그게… 쓰임새를 찾았어요.”


이 말 한마디 외에는 더할 말도 없었지만,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가 처음 쓰임새 얘기를 들었을 때처럼 흥분하는 것은 아닐지, 잔뜩 흥분해서 사정없이 질문을 퍼부어대는 그를 어찌 말려야 할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음… 그렇구만. 어떻던가, 잘 지내는 것 같던가?”


그는 상상 이상으로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오히려 그런 모습에 내가 더 당황했을 정도였다.


“아, 네. 뭐… 새하얗고, 뽀얗고… 그렇던데요.”


“그래? 아직 여전하구만. 또 다른 건 없었고?”


“음… 네. 저를 피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따라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자네 말이야. 다른 일은 없었냐는 말일세.”


“아, 네. 그냥, 이틀 내내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몸이 좀 피곤하긴 하네요.”


“그래, 피곤할 텐데 얼른 자야지.”


그게 끝이었다. 왠지 모를 서운함. 피곤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조금 더 물어봐주기를 은근히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 그가 더 피곤한 것 같기도. 

대충 씻는 둥 마는 둥 잘 준비를 서둘러 마치고 침대 바깥 자리에 누웠다. 그가 내 앞에 나타난 이후로 침대 바깥 자리를 내어준 것이 오늘로 세 번째 되는 날이었다. 이제 내일부터는 다시 제 자리를 찾겠지.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저녁에도. 그 다음 날에도, 그는 나에게 쓰임새에 대해 더는 묻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 놈을 두 번째로 만난 것이 꽤나 신기하고 반가운 일이었는데, 그는 전혀 동요하는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런 언행이 나를 더 안달 나게 만들었다.


사실은 다른 색을 하고 있었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세 번째로 쓰임새를 또 만났다고 떠볼까? 이런저런 방법을 떠올려 보면서도, 결국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까지 있나 싶은 마음에 다시 물러나기를 며칠째. 


그렇게 쓰임새는 잊혀지는 듯했다.






     『앞뒤로 30날』은


주말 동안 잠시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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