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 쓰. 쓰임, 쓰-. 쓰임.
“다녀왔습니다…”
“…”
내일에 대한 걱정을 안고 오늘을 마무리하며 집에 돌아왔을 땐, 이미 그는 곤히 잠든 후였다. 그래도 나를 배려하기 위해 침대 맡 조명은 켜 둔 채로. 감사하다는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급하게 잘 준비를 마치고 황급히 조명을 꺼버렸다.
아니, 정말 눈만 잠깐 감았을 뿐인데, 어느새 시간은 또다시 새벽 6시. 단 이틀뿐이라 참 다행이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되뇌며 굳은 얼굴에 찬물을 연거푸 끼얹었다.
그렇게 억지로 나를 깨우고,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다시 시작했다.
이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내 일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촬영장에서는 하루 종일 신제품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신제품들은 대부분 가구들로, 실제 집에 설치된 듯한 컨셉샷과 제품의 상세 정보를 보여주기 위한 누끼샷으로 나뉘어 촬영을 당한다. 그 수많은 제품들 중 어느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되기에, 촬영장의 분위기는 매우 냉혹하고 날카롭다. 유이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때는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뿐. 그때를 제외하면 그 현장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단 하나, 그 놈을 제외하고.
둘째 날에도 쓰임새는 있었다.
그 놈은 나를 유혹하듯 곳곳에서 절묘하게 내 시야에 걸치며 등장했지만, 나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또 그 놈에 정신이 팔렸다가는 실수라도 저질러 정해진 보수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과 함께, 그 놈을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자존심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둘 만의 교묘한 신경전은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되었다. 심지어 촬영이 모두 끝나고 스튜디오를 정리하며 가구들을 다시 트럭에 싣는 순간까지도. 그 놈은 이제 대놓고 내가 팔을 쭉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와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럴수록 더욱더 괘씸한 것이,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 짐을 트럭에 싣는 순간, 모두가 서로를 격려하며 외쳤다. 나 또한 온몸이 노곤해지는 와중에 마지막 힘을 짜내 외쳤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고생이 많았던 이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은 것은, 어느 순간 쓰임새는 없어지고 고요한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틀 내 나를 괴롭히던 그 ‘쓰임-‘소리가 사라지니 어색할 정도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쓰임새를 봤다는 증거를 찾으려 노력해봤지만 전혀 남은 것이 없었다. 사진은 고사하고, 영상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가구들 소리뿐이었다.
유일한 증거는 내 기억이었지만, 그마저도 생생하지 못했다. 애써 그 놈을 무시한 탓에, 여전히 새하얗다는 것 외에는 기억에 남을 것이 없었다. 이래서는 ‘그’에게 자랑할 거리가 없는데.
“다녀왔습니다.”
“오, 오늘은 조금 일찍 왔구만. 마침 자려던 참이었는데.”
“네, 다행히도. 저도 피곤하니 얼른 자려구요.”
“촬영장에서는 별일 없었나? 재미있는 일이나, 신기했던 일이나 그런 것들.”
“아… 있긴 있었는데… 음.”
“있었는데?”
있었는데, 없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