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찌개 속에 담긴 정, 싸나이 소동
눈부신 햇살 싣고, 발걸음 가볍게 교실문을 연다.
햇살보다 밝은 어르신이 먼저 웃음으로 맞아주신다. 명랑희님이시다.
높고 경쾌한 목소리가 긍정적이며 늘 밝은 표정이시다.
명랑희님은 얼굴을 찌푸리신 적이 거의 없다.
가끔 웃으시면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주위 분들을 나무라듯이 말할 때는 있다.
한 번은 수업 시간에는 좀 알겠는데, 교실 문을 나서자마자 잊어버린다고 걱정하는 어르신들에게 한 마디 하셨다.
"이 나이 먹도록 글 몰라도 이렇게 살아왔음 됐고, 글씨 틀리는 건 자꾸자꾸 쓰면 늘겠지 뭔 걱정이야. 우리가 지금 박사가 될 건 아니잖아. 쉬엄쉬엄 즐겁게 공부하면 됐지 뭘 그래. 웃어, 웃으며 살아."
명랑희님은 옆자리 어르신의 글씨를 보며 '잘했네, 잘했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직 받침 글씨는 서툴러도 마음은 누구보다 넉넉한 분이다.
명랑희님은 평소보다 더 환하고 맵시 있게 차리셨다. 블라우스 장미 무늬가 생화처럼 활짝 피어나 화사하다.
"어디 가요?"
"좋은 일 있는갑네."
주위 어르신들이 물어도 명랑희님은 배시시 웃기만 하신다.
명랑희님은 수업이 끝나기 전에 약속이 있어서 가야겠다며 서둘러 일어났다.
어르신들이 수업을 채 못 마치고 가실 때는 대부분 병원 예약이나 급한 일이 있는 경우다. 그런데 명랑희님은 여유 있는 밝은 웃음으로 손을 흔드시며 나선다.
"누구여? 만날 사람이."
궁금증을 못 참고 고운정님이 가시는 발목을 잡는다. 아니, 명랑희님이 일부러 발목을 내미신 듯하다.
"싸나이!"
명랑희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대답한다.
"싸나이? 뭔 사나이?"
어르신들의 시선이 명랑희님에게 확 쏠린다.
"싸나이가 싸나이지 뭔 사나이긴. 밥 사준다는 싸나이지."
앞에 앉아 계신 분이 얼른 뒤돌아본다.
"뭐여, 그거, 그거. 데이또하는겨?"
"증말?"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어르신들이 와하하 웃으며 박수를 치신다.
명랑희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기며 교실 문을 열고 나가자 교실 안은 순식간에 왁자지껄 장터로 변한다.
83세 어르신의 꽃단장과 싸나이가 불러온 화끈한 반응이다.
어이 그랬다며, 그랬어? 어쩐지...
은밀히 속닥속닥, 여자들의 수다는 나이와 상관없다.
여기저기 수군거림에 나머지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다.
"궁금하시면 다음 시간에 자세히 물어보시고, 추측은 금물입니다."
수업을 마치며 당부하지만 군데군데 어르신들이 일어설 줄을 모른다.
명랑희님은 젊은 시절, 생계를 책임지며 작은 부대찌개 음식점을 열었다.
서글서글한 성격만큼 손님을 대하는 것이 담백했고 솜씨도 좋아서,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많았다.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손님을 맞고, 저녁이면 남은 국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내 자식만은 끝까지 공부시켜야지'라는 마음 하나로 버텼다.
돈을 모아 아들의 학비에 쏟아부었고, 마침내 박사 학위를 딴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었다.
하지만 삶은 늘 정직하게만 흘러주지 않았다.
남편이 병환 중에 이상한 증세까지 보여 많이 힘드셨단다.
몸과 마음이 고달프던 시절, 마음 기댈 곳 없던 시간이 구메구메 흘러갔다.
그러나 명랑희님은 한숨 대신 웃음을 택했다.
'내가 무너지면 안 되지.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면서 아이들을 키워야지'
이런 생각으로 꿋꿋이 웃음을 지켜내며 세월을 건너왔다.
자녀들은 엄마의 웃음 힘으로 성실히 자기 몫을 찾아갔다.
혼자되신 명랑희님은 이제 자식들을 보람으로 여기며 당당하게 사신다.
이튿날, 누구랄 것도 없이 문만 열리면 동시에 고개를 돌린다.
부지런한 것은 따라오실 분이 없는데, 오늘따라 명랑희님의 걸음이 늦다.
"오늘 안 오는 거 아녀?"
"수업 빠질 사람이 아니잖아."
"그새 시집이라도 갔는지 누가 알어."
까르르르,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교실을 채운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교실문이 활짝 열린다.
들어오시는 명랑희님의 얼굴도 벙실 웃음꽃이 핀다.
"어여어여 와."
"어디서 만났어?"
"뭐 먹었어?"
"누구여, 솔직하게 말혀."
교실 안이 다시 한바탕 장날이다.
수업 전이라서 나도 귀를 쫑긋 세운다.
"에고, 이 사람들아. 그게 그렇게 궁금했어? 하긴 나도 참 궁금하더라."
명랑희님은 웃음 띤 얼굴로 차근차근 이야기를 펼친다.
싸나이는 몇 십 년 전 음식점할 때의 단골손님이란다.
그때 외상으로 밀린 돈을 갚지 않고 잠적했는데, 얼마 전 수소문해서 명랑희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더란다. 그리고 수십 년 만에 처음 얼굴을 마주 한 거란다.
"옛 모습은 좀 남아 있는데, 고생고생했나 봐. 폭싹 늙어서 잘 알아보지 못하겠더라고.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를 하면서 지금도 그 돈을 갚을 능력은 못 되니 밥이나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하데. 그래서 한 번이면 어쩌냐 다섯 번은 더 사라고 했지. 하하하"
명랑희님의 호탕한 웃음에 교실 안은 훈훈한 온기로 데워진다.
"잘했어, 자알~ 했어."
박수소리로 싸나이 사건은 아름답게 잘 마무리된다.
명랑희님은 문해교실에서 글을 배우며 새로운 세상을 열고 있다.
"식당 할 땐 글씨를 모른다고 하면 무시당할까 봐, 바쁜 핑계 대며 외상 장부에 본인이 직접 쓰고 가라고 했어요. 진상 손님 땜에 고생은 많이 했어도 다행히 돈 계산은 타고나서 돈 실수는 별로 없었어요."
웃음소리처럼 시원시원하게 말씀을 하시고, 솔직하게 마음 표현도 잘하신다.
"예전엔 간판 글씨도 제대로 못 읽어 서러웠는데, 이제는 내 손으로 아들에게 편지도 써요. 박사란 놈이 나보다도 어느 땐 맞춤법을 잘 모른다니까.'
기분 좋게 어깨를 으쓱하신다.
명랑희님은 지난 세월이 남긴 크고 작은 상처를, 밝은 웃음과 배우는 글자로 하나씩 덮는 중이다.
명랑희님이 칠판 앞에서 '가족'이라는 글자를 또박또박 적을 때, 교실 안 모두의 가슴은 뭉클해진다.
그 글씨는 삶의 무게를 이겨낸 증거이자 희망의 불빛이기 때문이다.
명랑희님의 웃음은 수십 년의 눈물 위에 피어난 꽃이다.
그런 환한 웃음들이 모여 문해교실은 더 훈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