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에구, 너무 애쓰지 마요

느리게 가도 좋은 우리 꽃님들

by 제노도아

찬바람을 안고 들어오시는 어르신들의 손이 차다.

찬손을 마주 잡으면 마음의 온기가 전해진다. 웅신한 날씨 같다.

"선생님, 지난번 배운 게 밖에 눈 온 거처럼 하얘. 자꾸 까먹어.

그러니 너무 이 가르치려 애쓰지 마요. 그냥 천천히!"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온기를 더하신다.

참 따뜻하다.


수업을 하다 보면, 가끔 나도 모르게 말과 칠판 글씨가 바지고 서두르게 된다.

굽은 허리 펴고 열심히 하시는 모습을 보면, 더 많은 걸 알려드리고 싶어진다.

교재에 나온 자음접변, 구개음화 등의 문법 글을 쉽게 반복해서 설명하고 또 한다.

그러느라 어느 땐 목이 쉰다.

이번엔 겨우 겹받침을 마치고 '휴우'하시는데, '글자와 다르게 소리 나는 낱말을 바르게 읽고 쓰기'를 보며 어르신들은 다시 한숨을 쉬신다.

"국물[궁물], 국민[궁민], 막내[망내], 국자[국짜]"

글자와 발음을 쓰고 왜 그런지 여러 번 설명하지만 고개만 갸웃거리신다.

"밥물[밤물], 습니다[슴니다], 합니다[함니다]"

"신랑[실랑], 난로[날로], 연락[열락"

꽃잎화님이 투덜거리신다.

"왜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쓰지 그런대."

"몰라, 몰러. 난 도대체 이해가 안 돼."

"말만 잘하면 됐지 왜 헷갈리게 그래."

명랑희님이 손사래를 친다.

"굳이[구지], 맏이[마지], 해돋이[해도지], 턱받이[턱바지]"

"같이[가치], 밭이[바치], 금붙이[금부치], 붙이다[부치다]"

여기까지 오면 아예 토라지신다.

"뭐여? 그냥 하나로 해."

"난 머리 아파, 안 해!"

이 시간 끝의 받아쓰기는, 쓰기보다 질문이 논꼬를 터놓은 것처럼 넘친다.

그런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발음과 쓰기가 다름을 이해하신다.

러곤 어르신들은 허허 하하 웃으신다.

"선생, 너무 애쓰지 마."

"우린 아무리 해도 다는 못 알아들어요."

"그동안 말 잘하고 살았으니 설명은 그렇게 힘들게 안 해도 돼요."

"자꾸 들으면 뭔 말인지 알겠지 뭐. 천천히 하면 돼."

그 말에 마음이 시큰거린다.

못 배우는 게 아니라, 글자도 천천히 배우는 거라는 것을 어르신들은 아신다.


칠십, 팔십의 나이에도 배낭을 메고 아픈 다리로 찾아온 배움의 교실.

한 글자 한 글자를 적는 일이 어떤 이에게는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우리 어르신들에게는 하루의 빛이 된다.

어르신들의 연필 잡는 손은 논밭을 가꾼 손이고, 새벽에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자식들 도시락을 싸던 손이며, 어려운 살림을 지키던 손이다.

그 손으로 글자를 배우고 싶다는 것은 공부를 잘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자락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요즘은 여기 오는 재미로 살아. 집에 있으면 무릎도 아프고, 말할 사람도 없고, 공부도 공부지만 친구들 보러 오는 거지 뭐.”

나는 그 말이 얼마나 깊고 훈훈한 위로인지 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만큼 힘이 되어주는 것은 없을 듯하다. 그것도 공통 관심사 안에서는 더욱더.

"맞아. 선생님 목소리 들으면 알 것도 같은데, 돌아서면 잊어버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마요."

"그래도 우리 많이 배웠어요. 좀 틀리긴 해도 이만큼 안 게 어디야, 안 그래요?"

고운정님이 어르신들을 돌아보신다.

"그럼, 그럼."

모두 머리를 주억거리신다.

"우린 공부도 중요하지만 친구들 만나는 것도 중요해요. 그러니 가르치는 거 다 알게 하려고 너무 애쓰지 마요."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어르신들은 그렇게 말씀하신다.

공부도 좋지만 교실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고 웃으며 이야기하고, 그것만으로도 덜 외롭고 행복하다고 하신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하루를 더 환하게 밝혀주는 일이라는 것을 어르신들은 내게 알려 주신다.

오늘도 나는 말의 강약을 조절하며 수업을 이어간다.

호흡을 고르며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천천히 쉽게 설명하고자 한다.

좀 더 다정한 눈길로 한 분 한 분을 바라보며 즐겁게 수업한다.

이해하고 이해받으며 마음을 잇는 수업은 늘 행복하다.


우리 문해 교실을 참 아름답다.

늦 배움에는 늦게 피는 꽃의 향기가 있다.

애쓰고 기다려 마침내 활짝 열리는 마음 같은 꽃이다.

나는 그 꽃님들을 바라보며 또 하루를 배운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것.

가르침과 배움은 살아 있음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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