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하늘 아래, 기억이 피어나다

해낙낙, 여낙낙 고운 기억

by 제노도아

회색빛 하늘이다.

하늘이 언제나 맑고 푸를 수 없듯,

삶도 줄곧 즐거울 순 없다.

옴살이었던 벗이 낯설고 아예 멀어지기도 한다.


나이듦은 좋은 것도 많다.

뻗대는 이, 해까운 이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곁거니틀거니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개부심하지 않는 이상, 내폴로 되는 일은 아니다.


예전에 마주했던 좋은 사람과 다시 함께 한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공감하고,

침묵 속에서도 서로의 버팀목이 된다.


흐린 하늘 아래,

문득 좋아하는 것들을 헤아려 본다.


-툇마루에 드리운 햇살

-은 빛 저녁노을

-문풍지가 내는 바람의 속삭임

-시골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부뚜막 위의 구수한 누룽지

-따뜻한 숭늉 한 모금

-할머니의 다듬이질 소리

-흥이 넘치는 탈춤의 추임새

-아궁이 속 타오르는 장작불

-주전자에서 끓어오르는 물소리

-가에 떨어지는 낙숫물

-산책길을 어루만지는 바람결

-향긋하게 스치는 꽃내음

-숲속을 울리는 산새의 지저귐

-나비의 가녀린 날갯짓

-아기의 배냇웃음

-엄마의 다정한 미소

-옴포동이처럼 포동한 볼살

-젊은 날, 화장기 없는 맑은 얼굴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

-첫눈을 밟을 때의 사각거림

-나긋나긋한 목소리

-살갑고 곰살가운 태도...


생각할수록 많은 기억이 떠오른다.

좋은 기억은 많을수록 삶을 더 따뜻하게 만든다.

사라지지 않는 그 순간들에, 감사한다.


해낙낙,

흐뭇하고 기쁘며

여낙낙,

부드럽고 고운 기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