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간 속 童話

남실남실, 시간의 노래

by 제노도아

어린 시절은 햇살이 빛나는 작은 세계야.

그 시절, 너의 파릇파릇한 봄꿈과 여름 바다처럼 푸른 모습을 몇 조각 엿보려 해. 보려

그래야 나도 그 속에서 잠시나마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아. 미소 지을 수 있을


*눈물방울 짜장면

너희는 짜장면을 좋아했어.

"뭐 먹을래?"

라고 하면 동시에 제비 새끼처럼 입을 벌렸지.

"짜장면, 짜장면!"

7살 터울인 남동생을 가운데 두고 앉아 너는 부산스레 움직였어.

곰돌이 받이를 동생매 주고, 포크와 나무젓가락을 쥔 채 짜장면의 비닐 덮개가 벗겨지길 기다렸어.

세 명이 두 그릇이면 족던 그 시절, 입가에 마구 묻힌 짜장면 흔적이 그리워.

어느 날, 잠시 외출에서 돌아온 나는 울고 있는 널 보았어.

꽃무늬 작은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묶었던 리본 머리끈을 든 채였어. 실 바닥엔 사슬사슬한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지.

"엄마, 그게 아니고..."

큰딸이 손사래 치며 냉큼 가위를 등뒤로 숨겼어.

긴 머리를 좋아하던 너였고, 곧 있을 유치원 행사에 입을 공주 드레스도 사놓은 터였어.

"엄마, 내가 더 예쁘게 해 주려고 머릴 잘랐는데 삐뚤어서 자꾸자꾸 잘랐어. 으앙!"

큰딸이 울음을 터뜨렸어.

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놀란 눈으로 우는 큰딸의 어깨를 토닥였지.

"언니야, 괜찮아. 훌쩍훌쩍!"

어이없는 상황에 화가 났지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달래는 모습이 기특했어.

그날은 짜장면을 먹는 날이 되었지.

너희들은 눈물을 닦으며 잘조잘 맛있게 짜장면을 먹었어. 네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그 공주 역, 그 원피스는 왕자의 옷이 되어버렸고 너는 미장원에 가서 쇼트커트를 해야 했어.

소꿉놀이 때 넌 엄마였고, 큰딸은 아빠였지. 그 때문인지 넌 동생의 엄마 노릇을 잘했어. 기저귀도 곧잘 갈아주고 이유식도 먹였어. 네가 원하던 여동생이 아니었는데도 괜찮다며 동생을 아끼고 귀여워했어.


*놀이터 짱순이

따스한 날의 놀이터는 아이들 천국이지.

모래 위 작은 발자국들이 흩어졌다가 모이곤 했어. 너는 동생 손을 꼭 잡고 의기양양하게 물었지.

"뭐 타고 싶어? 그네, 시소, 미끄럼틀, 정글짐?"

너는 들썩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씩씩하게 다가갔어.

"내 동생이 아직 아긴데, 이거 한 번만 먼저 타게 해 면 안 돼?"

너는 협상의 명수였어.

누구도 네 말에 반박하지 않았지. 넌 아이들과 약속한 대로 딱 한 번만 먼저 놀이기구를 사용했어.

놀이터에 나가면 처음 보는 아이와도 금방 친구가 됐고, 아이들은 널 좋아했어. 네 주위에는 언제나 끌벅적 아이들이 모였지.

미끄럼틀에서는 동생을 안고 조심조심, 시소는 발을 땅에서 떼지 않고 가만가만, 균형을 잡으며 움직였어.

웃음소리가 밝고 맑게 퍼졌어.

놀이터의 아이들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종소리 같았지.


*하늘 높이 비눗방울

파아란 하늘 아래, 비눗방울이 날개를 달아.

빛을 머금은 둥근 방울들은 무지개를 품 폴폴 날아오르지.

너는 비눗방울 놀이를 좋아했어.

투명한 비눗방울을 후후 불어 하늘로 떠오르면 나비처럼 쫓아다녔어.

반짝이는 무지갯빛 방울 속엔 네 꿈이 담겨 있었지.

"엄마, 가 커서 무지개옷 사줄게."

"그럼 돈 많이 벌어야겠네."

내가 웃으며 말했어.

"이따 만큼 벌면 돼."

너는 두 팔을 높이 들고 활짝 폈어.

비눗방울엔 무지갯빛 영롱한 네 소망도 함께 있었지.

"엄마, 비눗방울은 하늘로 가서 잘 살겠지? 내가 만든 방울이 거기 잘 있나 꼬부랑 할머니가 되면 가서 볼게."

끊임없이 꿈꾸는 아이의 모습은 순수해. 지팡이를 짚고 다니다가 돌아가신 친할머니를 생각한 듯했어.


*머리카락 보인다, 바꼭질

"다 숨었어?"

눈을 가리고 숫자를 세는 너의 목소리는 기대와 긴장으로 떨렸어.

나무 뒤, 미끄럼틀 밑, 건물 모퉁이 등으로 작은 그림자들이 숨을 죽였지.

너는 가위바위보를 잘 못해서 술래가 되기 일쑤였어.

아직 걸음이 늦은 동생이 제일 먼저 보이면 어리다고 '깍두기'라며 잡지 않았어.

가끔은 집안에서도 그 놀이를 했지. 장롱 안, 옷장 옆, 커튼 뒤, 너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손나팔을 하고 외쳤어.

"어딨니? 못 찾겠다 꾀꼬리."


*흙 범벅, 조물조물

비가 온 뒤 작은 웅덩이에 발을 헛디딘 날, 너는 말끄러미 나를 바라았어. 어차피 젖은 발인데 그냥 놀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눈빛. 나는 짐짓 뒤돌아섰어.

철퍽, 철퍽! 우아, 진흙이야.

너는 질퍽거리는 진흙을 손으로 주물러서 둑을 만들고 강을 어. 나뭇가지로 다리를 놓고 나뭇잎배를 물에 띄웠지.

"이제 그만!"

내가 재촉했어.

"엄마, 10분만 더."

고개를 었어.

"5분만 더."

나는 허락하지 않았지.

지저분한 모습을 보며, '감기 걸릴까 봐'로 얼버무렸어.

그 5분이, 그 10분이 뭐라고...

그날 밤, 너는 꿈속에서도 손가락을 조물거리며 웃어.


*나는 멋진 화가야

셋이 배를 깔고 거실에 엎드려 그림을 그렸지.

막내는 색색으로 구부정한 선을 긋고, 두 딸은 속살거리며 공주와 왕자를 꾸몄어.

굴뚝 있는 집의 마당에는 꽃과 나무가 있었어. 강아지도 있었지. 너는 말했어.

"우린 다 같이 한집에서 오래오래 살 거야."

"시집 안 가고?"

큰딸이 물었어.

"응, 언니도 가지 마. 난 우리 식구끼리 살 거야."

내가 웃으며 참견했지.

"정말일지 어디 두고 봐야지."

"두고 봐, 두고 봐."

너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어.


*떴다 떴다 비행기

날이 흐리면, 너는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어.

"아휴, 오늘은 못 나가겠네."

허리를 탁탁, 무릎을 톡톡 두드리며 할머니 흉내를 냈지.

그러곤 너의 물상자 안에서 색종이를 꺼냈어.

네 손끝에서 새 비슷한 모양, 배 비슷한 모양이 나왔지. 그나마 제모습을 갖춘 건 비행기였어.

종이비행기는 머리 위로 조금 날다가 떨어졌어.

"엄마, 진짜 비행기는 안 떨어지지?"

그때부터 너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

"난 온 세상 나라를 다 돌아다닐 거야."

야무진 너의 말이 꼭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랐어, 나는...


*호롱불 그림자, 별 헤아리기

시골집에 해가 기울면, 너는 손가락으로 여러 동물 모양을 만들었어.

두 손을 모아 벽에 비추며 유니콘이라고 했지.

너는 유니콘을 친구라고 불렀어.

"엄마도 나랑 내 친구랑 같이 가. 멀리 날아갈 거야."

여름밤, 모깃불을 피우고 마당 멍석에 누워 별을 헤아리며 우린 직녀별과 견우별 이야기를 했어.

유니콘을 타고 높이높이 하늘을 날아다녔지.


이 시간, 나는 오롯이 너와 함께 있어.

너와 같이 맘껏 웃으며 놀아.

직도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날갯짓을 해.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해 준 너!

정말 정말 고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