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Not to Me
4월 밤이 고요하고 향긋합니다
나무마다 맺힌 꽃송이들에요.
평화가 그 꽃들에 조용조용 다가갑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닙니다.
나의 평화는 그의 가슴속에 숨어 있습니다
내가 있지 않을 그곳에요.
사랑은 오늘 밤 다른 모두에게 다가갈 겁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닙니다.
-사라 티즈데일의 '그러나 나에게는 아닙니다'-
-But Not to Me -But Not to Me
그해, 4월!
사라 티즈데일의 시처럼, 세상은 여전히 평화롭고 아름다웠어.
그러나 나에게는, ‘그러나 나에게는 아닙니다’라는 시간이었지.
벚꽃은 세상을 밝히며 흐드러졌지만, 나는 어둠이 깃든 침묵 속에서 하얀 병실 침대 위 너만 바라보았어.
의식이 흐려지기 직전, 너는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어.
"엄마... 사랑해..."
그 한마디는 내 심장 깊은 곳으로 내려앉았지.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
혹시 네 입술이 다시 열릴까, 기적이 찾아와 줄까...
나는 알고 있었어.
미처 하지 못한 말들, 다하지 못한 일들을 끝내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걸.
너는 이 세상에 더 머물고 싶어 했고, 결코 떠나고 싶지 않았다는 걸.
살고 싶다는 그 마음을 너의 숨결이 잔잔하고 절실하게 내게 들려주었지.
창문 틈 햇살이 희미하게 병실을 감쌌던 그날, 네가 얼마 전에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어.
내가 여러 번 너의 집에 가겠다고 하자 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어.
“아냐, 엄마 오지 마. 내가 곧 엄마 밥 먹으러 갈게.”
결혼 후, 서서히 드러난 K의 민낯.
작은 틈은 갈라짐이 되고, 잦은 불화 속에 너는 점점 말을 잃었지.
밖에서나, 따뜻한 공기 속에서만 겨우 너답게 웃을 수 있었어.
결혼을 반대한 부모의 직감은 때때로 너무나 아프게 맞아떨어져.
하지만 네 선택이기에, 일부러 감추려 하기에, 나는 말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
반대한 결혼을 감행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지.
불만이나 고통이 있어도 안 그런 척 혼자 삭인다는 것, 속이 뭉개져도 참고 또 참는다는 것. 그리고 외부에는 오히려 아주 행복한 척한다는 것...
사람들은 흔히 말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참고 견디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지만 나중에 큰딸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서 내 마음은 와르르 주저앉았어.
내가 걱정한다고 비밀로 해달라고 했던 너의 말들이 때늦은 후회와 함께 가슴을 치게 했지.
결혼을 앞두고 우연히 알게 된 너의 병, 너는 청첩장을 손에 쥐고 목메어 울었어.
나는 너 몰래 K를 만나 적극적으로 파혼을 권했지만, 그는 "나을 거니까 괜찮다"라며 가볍게 대답했어.
그 당시 나는 그 말이 참 고마웠어. 진심으로 너를 사랑하는 줄 알았으니까...
그러나 네가 응급실에 실려간 날, 그때도 K는 괜찮다고만 했지.
우리가 의사에게 위중하다는 말을 직접 듣기 전까지는...
너의 몸이 그리 무너지는데도 K는 스스로 알아서 잘한다며 늘 대수롭지 않게 말했어.
이 지경이 되도록 왜 말을 안 했냐니까 네가 말하지 말랬다며 네 핑계를 댔지.
누구 말도 잘 안 듣는 K가 그 말은 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어.
"나, 이 애 엄마야!"
절규하듯 외쳤어.
가슴이 찢어질 듯했지.
그 상황에도 K는 태연했어.
뒤늦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 둘만...
하나,
K는 너의 마지막 말과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겼어.
사랑이 아닌 증명의 도구처럼, 기억이 아닌 목적의 기록처럼...
그 영상은 그의 가슴에 새겨지는 대신, 어느 날을 위해 은밀히 감춰졌지.
둘,
코로나의 벽은 너와 나의 마지막 이별마저 가로막았어.
면회는 불가능했고, 아들만 겨우 하루 교대할 수 있었어.
"네가 여기 있음 안돼? 하루라도 더 있으면 안 돼?"
K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네가 간절한 눈빛으로 아들에게 말했지만,
전화상으로 K는 단호히 안 된다고 했어.
"또... 신경질이야? 알았어..."
너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지.
K는 병실에 머무는 동안, 너의 지문으로 네 핸드폰을 열고 그것만 들여다보았어.
네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핸드폰을 그 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지.
그땐 몰랐어.
그 순간이 이별의 시작이었음을.
그리고
긴 침묵,
기도 끝자락,
너의 숨결은 멎었어.
“어떡해, 어떡해!”
통곡이 뼈를 울리고 정신이 까마득히 멀어졌지.
의사가 사망 시간을 말하는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어.
“엄마, 엄마!”
울먹이는 큰딸의 떨리는 손길에 나는 병실 밖에서 깨어났지.
그때 나는 보았어.
하얀 옷을 입은 네가 손을 흔들었지.
나는 눈을 감고 어깨를 들먹이며 울었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어. 통곡이 터져 나왔지.
“어떻게... 네가... 어떻게...”
결혼하겠다고, 허락해 달라고 내내 눈물로 말했던 너.
그토록 원하고 원해서 선택한 길이기에 더는 막지 못했어.
그러나 결혼한 지 4년도 못 되어 너는 나보다 먼저 먼 길을 떠났지.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었어야 해...’
나는 자꾸만 너의 모습을 가슴에 되새겨.
“엄마, 나 후회 안 할게. 내가 잘 버니까 걱정 마.”
마지못해 결혼을 승낙한 뒤, 너는 다시 예전의 살가운 딸로 돌아왔어.
결혼 전 그 몇 달과 결혼 후 잠깐씩 우리 둘만의 만남은 행복하고 따뜻한 봄날이었지.
네가 제일 좋아했던 꽃, 라일락 향기가 온통 사방에 퍼지는 시간이었어.
종알종알 일상 이야기를 쏟아내고, 머무는 곳마다 너의 웃음소리로 채워졌어.
나는 날마다 너의 조각들을 떠올려.
내 치맛자락을 잡고 졸졸 따라오던 어린 너.
입학식 날 신발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뛰어가던 너의 작은 등.
햇살 아래 아이스크림을 코끝에 묻히고 헤헤 웃던 너.
기분이 좋으면 참지 못하고 터뜨리던 크고 명랑한 웃음.
“쉿, 쉿! 작게 웃어.”하면서 나도 함께 웃었던 순간들.
그 웃음소리가 지금도 쟁쟁해.
“엄마, 다 나으면 우리 여기저기 여행 다니자.”
그 말을 얼마나 되뇌었는지...
어디로 갈까,
무슨 옷을 입을까,
무얼 먹을까...
너는 정말 갈 수 있을 거라 믿었고, 나도 굳게 믿었어.
네가 남긴 웃음소리와 그 약속이 아직 내 안에 살아 숨쉬고 있어.
“엄마... 사랑해...”
내 마음엔 오직 너의 한마디만 남았어.
너 없는 4월이 오고 또 와도,
너의 그 한마디가 계속 나를 살게 해.
그 말 하나로도 나는 남은 생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