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두 사람의 하늘, 하나의 사랑으로

구름 위에 핀 웃음

by 제노도아

봄의 끝자락, 바람에 실린 꽃잎이 지는 계절.

창밖에는 마지막 봄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흐르고 있었어.

따스하면서도 왠지 쓸쓸한 오후.

창밖의 햇살마저 조용히 걸어가던 그 오후에 나는 요양원 침대에 누워 계신 엄마를 바라보았지.

2년 동안 말을 잃은 엄마는 이제 사람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셔.

어른거리는 눈빛 속에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어.

병세가 점점 악화되셔서, 조만간 만날 네 이야기를 하기는 해야 할 것 같았어.

너 떠나고 일 년 남짓 지난 즈음이었지.

"엄마... 우리 둘째... 떠났어요..."

왈칵 눈물이 솟구치며 목이 메었어.

그 말이 닿는 순간, 반응이 없을 줄 알았던 엄마가 미간을 찡그리며 눈을 크게 뜨셨어.

놀란 듯 흔들리는 눈동자.

엄마의 눈에 천천히 물기가 맺혔어.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지.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그 자리에서 흐느끼며 무너져 내렸지.

그동안 애써 삼켜왔던 눈물이 쉴 틈 없이 쏟아졌고, 가슴 깊이 맺혔던 슬픔이 터져

나왔어. 나는 엄마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울었어.

몇 해 전, 너 아프다는 말을 듣고 주저앉아 목놓아 우셨던 엄마.

성치 않은 다리로 날마다 성당에 나가서 간절히 낫길 기도하셨던 엄마.

네 얘기만 나오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던 엄마.

"나를 데려가시고, 울애기 빨리 낫게 해세요."

엄마는 늘 네 생각뿐이셨어.

묵주 한 알 한 알, 장미 송이송이마다 네 이름을 새겨 넣으셨지.

그런 엄마가 허물어진 시간 속에서도 너를 기억하고 계셨던 거야.

모든 걸 잊어도, 아팠던 너는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었던 거지.

엄마의 눈물은 말보다 더 깊은 슬픔과 사랑을 전해 주었어.

짧은 봄이 지나가듯 홀연히 떠난 손녀였지만, 엄마의 마음속엔 지지 않은 사랑으로 피어 있었어.

가족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애틋한 사랑을 견디고 또 견디는 일이었지.

엄마는 병상에 누워 있었지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셨을 거야.

널 보낸 뒤 내 눈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핼쑥해진 얼굴과 허깨비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 나를 본 그 순간에...

작별의 그날, 네가 엄마께 마음으로 전했을 마지막 떨림의 목소리 '할머니! 고마워요, 사랑해요.'를 분명히 들으셨을 거야.

눈물 고이도록 맑은 날들 속에서, 엄마는 조금씩 조금씩 네 곁으로 다가갔어.

마침내 한줄기 바람 스미듯 이별의 날이 왔지.

'엄마, 사랑해요. 우리 둘째 부탁해요.'

바람결이 명주실처럼 부드러운 날, 엄마는 잠잠히 눈을 감으셨어.

마치 그날을 기다렸다는 듯, 너와 약속한 것처럼.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다


하늘 어귀에서, 네가 먼저 엄마를 보았어.

"할머니!"

소리보다 더 먼저 달려오는 마음, 그 마음이 두 팔을 벌렸고 엄마는 네 품에 안겼어.

그 시간, 주위의 모든 꽃이 불꽃 밝히듯 기지개를 켰지.

말로 하지 못했던 수많은 사랑이, 눈물로 다 흘리지 못했던 아쉬움이, 그 포옹 안에 있었어.

엄마는 네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어.

"많이 기다렸지?"

너는 웃으며 대답했어.

"할머니가 오셔서 외롭지 않아요."

하늘나라에는 시간도, 아픔도, 이별도 없어.

그저 솜털처럼 포근한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은 다시 만난 두 사람을 감싸 안았어.

그곳은 매일 저녁,

노을처럼 그리운 사람들의 랑이 모여 행복이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지.

지상에서 채 못 나눈 사랑을 천상의 언어로 곤소곤 속삭이며 정담을 나누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그 장면들이 내 마음에 따뜻하게 펼쳐져.

오늘은 하늘이 유난히 맑아.

햇살은 구름 위에 내려앉고, 바람은 포근한 이불럼 두 사람을 감싸.

"할머니, 여기선 무릎이랑 허리 안 아프시지?"

"그럼 말짱하지. 내 강아지도 괜찮지?"

너는 팔을 휘저으며 활달하게 걸어

고 예전처럼 엄마의 팔짱을 껴. 둘은 마주 보며 다정하게 웃어.

그 웃음은 무지갯빛으로 주위를 환히 밝혀 줘.

너는 주머니에서 작은 향수병을 꺼내. 투명한 유리병 속 라벤더빛이 햇살 아래 반짝여.

"할머니 이거..."

네가 조심스레 뿌려주자, 라벤더 향이 폴폴폴 피어나.

엄마는 숙한 냄새를 맡아. 네가 예전에 성스레 뿌려주던 그 향기야.

엄마는 눈을 감고 흠흠 향기를 맡아.

그 향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수많은 기억들.

마당 끝에 핀 봉선화, 백반을 넣고 곱게 빻아 손톱에 물들이던 일.

목련나무 아래 앉아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던 일.

첫 영성체 때 오밀조밀 레이스가 달린 미사포를 쓰고 함께 찍었던 사진...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온한 그곳에서, 두 사람은 다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

그리움은 끝나지 않지만, 사랑은 변함없이 빛나지.


*천국은 이런 곳이야


천국은 온종일 아름다운 노래가 흐르는 곳이야.

모든 숨결이 낯익은 자장가처럼, 서로의 마음을 토닥여 주지.

들판에는 시들지 않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활짝 피고, 새소리가 은은하게 들리지.

감미로운 음악과 정겨운 목소리, 웃음소리가 졸졸졸 개울물 소리처럼 머무는 곳.

사람들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살 수 있고, 사랑받던 그 모습으로 서로 반기며 겹고 평안하게 지내. 늘 봄날인 그곳에는 시간 따라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 둘 찾아오지.

"어서 와, 기다렸어."

그 말 한마디면 쌓였던 그리움이 햇빛에 눈 녹듯이 스르르 녹아내리지.

천국에는 시계가 없고, 달력도 없어.

거긴, 기다림이 끝나는 곳이거든.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상처가 아무는 곳.

그곳이 때로는 너무 부럽고 그리워.

거기에서 너는 엄마와 함께 나를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