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작별은 없었어, 계절만 다르게 흘렀을 뿐

-네가 제일 좋아한 친구, 하얀 숨결의 도도

by 제노도아

하얀 겨울이 온누리를 감싸던 날,

너는 작고 여린 생명을 조심스레 안고 들어왔어.

아직 이름도 없는 털뭉치,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된 도도였지.


네 방까지 몰래 들이는 데는 성공했는데,

요 녀석이 열린 문틈으로 살며시 빠져나와 거실로 폴폴폴 걸어온 거야.

식구들은 놀란 눈으로 어머, 어머나! 를 연발했지.

양 솜사탕이 살아 움직이듯,

작은 녀석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식구들 사이를 오갔어.

검정 구슬처럼 동그란 눈, 살짝 벌린 입꼬리엔 미소를 띤 듯했어.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예쁘던지 모두 감탄사를 터뜨렸지.

당황하며 황급히 방에서 나온 너의 설명은 필요 없었어.

첫눈에 다들 도도를 좋아했거든.


도도,

순우리말로 '돋우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

우리는 이틀 동안 머리 맞대며 정성을 담아지었지.

도도로 결정한 뒤 작은 축하식도 했어.

도도는 고맙다는 듯이,

하얗고 보드라운 공이 구르는 것처럼 신나게 돌아다녔지.

네 가슴에 처음 안기던 순간부터,

도도는 네가 끝까지 자기를 지켜줄 주인이란 걸 알았나 봐.

순둥순둥한 녀석이 네 뒤만 졸졸 따라다녔어.


넌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무척 좋아했어.

"엄마, 내가 응아 다 치우고 목욕도 시킬게."

"엄마, 백 점 열 번 으면 사 줄 거야, 아님 스무 번?"

"생일 선물이 강아지면 정말 정말 좋을 건데..."

틈만 나면 노래 부르듯 강아지를 키우자고 졸랐지.

길을 가다 동물병원이나 펫 숍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갔어.

산책 나온 강아지를 보면 반갑게 다가가서 아는 척했지.

하지만 나는 세 아이 뒤치다꺼리에, 도무지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어.

그러다 연히 기회를 만났어.

네가 중학교 때 본 하늘이 기억하지?

내 친구가 몇 년 키우 보낸 치와와.

너는 하늘이를 보자마자 소리지르며 팔짝팔짝 뛰었지.

하늘이는 너만 잘 따랐어.

네가 학교에 가면, 침대 밑에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고 녀석이 어찌나 앙칼지고 사나운지 너 아닌 누구도 가까이할 수 없었지.

이면 자주 애처롭게 울어서 아파트에서는 더 이상 키울 수 없었어.

결국 우리는 두 주만에 하늘이와 이별해야 했지.

하늘이를 다시 보내던 날,

너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고 하늘이도 마지막까지 바라보았어.

그 뒤로 한동안 너의 강아지 타령은 잠잠해졌어.

그리고 몇 해가 지나, 도도가 네 외투 속에 숨겨져 집안으로 들어온 거야.

너는 그동안 조용히 마음속에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던 거지.

그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어.

인연의 단단한 끈이 너희를 이어주고 있었던 거야.

도도는 가족들의 귀여움을 담뿍 받으며 잘 자랐어.

누구보다도 너를 깊이, 진심으로 따르며 좋아했지.

너의 얼굴엔 사람들과의 교감에서 느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사랑의 미소가 스며들었어.


큰딸이 결혼한 뒤, 너는 도도를 더 아끼고 온갖 정성을 쏟았어.

힘든 일이 있으면 도도를 안고 방에 들어가 위안을 받곤 했어.

퇴근길 네 가방 안엔 도도의 간식과 옷이 담겨 있었지.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도도는 벌써 현관 앞에 나와 있었어.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마구 꼬리를 흔들었지.

"어떻게 아는 거야? 저 발소리를."

"귀신같아, 정말..."

가족들은 놀라며 혀를 내둘렀어.

“도도야, 누나 왔어!”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도도는 어느새 너의 품에 안겨 있었어.

도도는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반가움과 사랑을 실어 온몸으로 너를 반겼어.

네 침대 위에서 같이 자며 늘 곁을 지키는 친구였고, 너의 하루를 가장 먼저 환하게 밝혀주었어.

도도는 네 기분이나 생각을 다 아는 것 같았어.

네가 기운어 보이면 조용히 곁에 앉아 등을 기댔고,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앞발로 톡톡 무릎을 건들었어.

너는 말했지.

“얘는 나보다도 더 나를 잘 아는 것 같아.”

도도는 정말 너를 가장 잘 아는 존재였는지도 몰라.

너는 도도와 함께 지내며 배려의 사랑을 배웠지.

기다리는 마음,

돌보는 기쁨,

무조건적인 믿음...

네게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순간은, 도도가 품에 안길 때였을 거야.


너희들은 오랜 친구처럼, 언제나 같이 있었어.

네가 누우면 도도도 따라 눕고, 네가 웃으면 마주보며 꼬리를 흔들었지.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께 창밖을 바라보곤 했어.

별 탈없이 지내던 도도가 15살 되던 해였어.

도도는 먹던 사료를 남기고, 산책도 예전처럼 반기지 않았지.

가슴 부분이 볼록해지면서 자꾸 음식을 토했어.

너는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 채 도도와 동물병원에 들렀어.

검사 결과, 도도가 암에 걸렸다고 했을 때 너는 마음도 함께 무너졌어.

그리고 망설임 없이 적금을 깨고, 5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댔어.

"얘는 내 동생이고, 친구야."

그 한마디에 모든 게 담겨 있었어.

도도가 잘 걷지 못하게 되자 보조기구를 사고, 죽을 끓이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다했지.

퇴근 후엔 숨 돌릴 새 없이 도도를 먼저 안았고, 그 품 안에서 도도는 편안히 잠들곤 했어.


지금도 나는 기억해.

“도도는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 준 좋은 친구야."

너는 그렇게 큰딸이 떠난 허전한 자리를 메우고 있었어.

그러다가 결혼 날짜가 정해지고, 청첩장을 돌린 뒤 네가 아픈 걸 알게 되었지.

등산을 좋아한 너는, 주말마다 산에 갔어.

운동을 좋아한 너는, 매일 회사 근처의 헬스장에 들렀어.

그런 네가 아프다니... 그것도 암이라니...

너의 울먹이는 전화를 받고, 나는 털썩 주저앉았어.

세상의 모든 시간이 멈춘 듯했어.

하늘이 뱅글뱅글, 현기증이 나서 눈을 감고 중얼거렸지.

'아냐, 오진일 거야. 그렇게 건강하던 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어.

한걸음에 달려온 큰딸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어.

우리는 눈이 부운 채 핼쑥한 모습으로 돌아온 네게,

"괜찮아, 괜찮아. 곧 나을 거야."

"괜찮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 말만 반복하며 부둥켜안았어.

눈물을 삼키고 또 삼켰지.

도도가 계속 끙끙거리며 네 주위를 돌았어.

도도의 눈에는 슬픔이 서려 있었지.

너는 소파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도도를 끌어안았어.

도도의 작고 따뜻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래오래 소리 내어 울었지.

도는 작고 낮게 한숨을 쉬며 네 손을 핥았어.

'괜찮아, 내가 곁에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

그날 밤, 너는 도도를 안고 잠이 들었어.

너와 도도는, 서로 삶을 지켜주는 단짝 생명 같았어.


결혼 후 너는 도도를 데리고 갔어.

내가 극구 말렸지만, 너는 끝까지 듣지 않았어.

“도도 없으면 안 돼.”

그건 너의 다정한 약속이자, 책임감이었어.

너와 함께 떠난 도도는, 한시도 네 곁을 떠나지 않았어.

네가 화장실에 가는 발소리에도 따라나섰고,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을 잃어갈 때도

가만히 네 무릎 위에 얼굴을 얹고 있었지.

'괜찮아. 그래도 예뻐.' 하며 너를 위로하듯이.

네가 병원에 다녀와서 지쳐 있던 날, 침대에 누워 쉬고 있을 때면

도도는 제 작은 인형을 입에 물고 와서 살그미 네 곁에 놓았어.

네가 어릴 때 사준, 도도의 낡은 애착 인형이었지.

너는 그걸 볼 때마다 울컥했어.

말로 하지 못하는 애틋함이 도도의 마음에서 흘러나온 거지.

너는 도도를 꼭 안았고, 그 안에 말보다 더 깊은 사랑이 흘러넘쳤어.

하지만 너와 2년 남짓 지낸 도도는 암이 재발한 끝에 다시 일어나지 못했어.

수의사의 안락사 권유너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지.

“아직 살고 싶어 해요. 저 눈을 보세요.”

너는 너의 고통 속에서도 도도의 눈빛을 믿었어.

얼마 후 도도는 네 품에서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지.

마지막까지 너의 손길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어.

“고마워, 도도야. 네가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

그건 작별의 인사이자, 네 삶의 한 줄기 희망을 떠나보내는 통곡이었어.

그 후, 너는 얼마 동안 잘 웃지도 않고 먼산바라기를 하곤 했지.

도도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지만 화장대 위, 도도와 함께 찍은 사진은 그대로였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

너의 그리움이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아픈지...

18살, 오랜 삶을 사랑 안에서 마친 도도는 너의 큰 상실이자, 소중한 추억이 되었어.

말하지 않는, 말하지 못하는, 네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어.


너는 도도 없이 그 집에서 살았어.

가슴 한편, 휑하니 얼마나 찬바람이 불었을까...

너 떠난 뒤 돌이켜보니

도도가 먼저 떠난 건, 하늘나라에서 너를 기다리기 위한 준비가 아니었을까 싶어.

도도와 너는 특별한 사랑으로 이어져 있었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향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던 거야.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그리움과 사랑을 가슴에 품은 채...

이제 아프지 않고, 다시 헤어지지 않는 곳.

하늘나라에서 먼저 기다려준 도도.

도도가 있었기에 너의 삶은 더 따뜻했고, 아름다웠어.


우리 곁을 떠난 너와 도도의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이어질 거야.

이 땅에서, 하늘의 시작으로...

서로의 향기를 기억하는 둘은 다시 마주하며 행복해할 거야.

너와 도도의 이야기는

슬픔이 아닌 사랑의 기억으로 내 마음에 오롯이 남아 있어.

나는 오늘도 하늘을 보며 속삭여.

“마리따, 도도랑 같이 기다려. 내가 거기로 갈게.”

이 말이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길 바라며, 나는 너를 그리워해.

그리고 깊이깊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