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아버지가 다가온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
빗방울로 아롱진 창문에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이연히 웃는다.
오래전,
이렇게 비 오는 날 오후였다.
아버지는 우산을 들고 성큼성큼 앞장섰다.
엉절엉절 뒤따르던 나는 강당 앞에서 머뭇거렸다.
오소소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예전의 시골 초등학교는 대부분 공동묘지터였고,
그 학교 뒤편 강당은 애장터여서 비가 오면 아기 울음소리가 난다고 했다.
강당에는 매트리스와 뜀틀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시범 경기날이 머지않았는데,
기계체조부 아이들 중 4단 뜀틀을 넘지 못하는 건 나뿐이었다.
운동 신경이 좋으신 아버지는 강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가뿐하게 4단 뜀틀을 넘었다.
내가 원한 기계체조부였는데도 뜀틀 앞에서는 늘 허든허든 주춤거렸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폭우 소리와 환청인 듯 아닌 듯한 아기 울음소리,
창문에 아롱진 아버지의 모습에 떠밀려 정신없이 뜀틀로 달려갔다.
땀과 눈물이 뒤범벅되었다.
강당이 울릴 정도로 큰 박수를 보낸 아버지는, 나를 업고 옛 가요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봐라, 우리 딸! 맘먹으면 뭐든 할 수 있어."
아버지는 댕돌같았다.
학교 텃밭을 구메구메 가꾸어 교사들의 점심에 상추, 오이, 풋고추, 토마토 등으로 상차림을 하셨다.
허름한 옷차림에 연장 도구를 들고 자주 학교 주변을 돌아다녔다.
낯선 방문객이 아버지에게 교장실이 어디냐고 물으면,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너털웃음으로 맞으셨다.
그날, 아버지의 따스했던 등이 그립다.
아버지의 말 여운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