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도 눈치 보는 할배 소년

나이는 숫자, 꿈은 영원하다

by 제노도아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중 하나가 마음의 나이다.

품은 사람 앞에서 숫자의 나이는 슬그미 꼬리를 내린다.


"케데헌, 봤니?"

친구의 청랑한 전화 목소리이다.

"케데헌? 그게 뭐야?"

"얘 좀 봐라, 글 쓰는 애가 문화적인 습득이 영~!"

친구의 잔소리가 늘어질 것 같다.

"그냥 빨리 말해, 나 바빠."

내가 에둘러 말을 자르자 급히 말한다.

"요즘 넷플리스에서 계속 1위를 차지한 글로벌 인기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그리고 설명이 죽 이어진다.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이 9년간 준비한,

전 세계가 열광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문화를 알린 영화란다.


이 친구 덕분에 넷플리스 1위를 달린다는 영화를 몇 편 보긴 했다.

만년 소녀 같은 친구, 거기에 이 친구의 남편은 더하다.

머리는 반백이고 눈가에 웃음 주름이 빼곡하지만, 그와 대화를 하면 도저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겉모습이 젊다는 게 아니고 마음이나 생각, 매일 꾼다는 꿈이 완전 소년이다.

두 사람은 함께 은퇴한 것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그만큼 경제적인 기반이 넉넉해서도 아니고, 물질적인 욕심도 없다.

그냥 두 사람이 공유하는 시간을 행복하게 즐기는 부부이다.

늘그막에도 이 부부는 아직 마음이 소년소녀 같다. 정말 찰떡궁합이다.


“우리 그이, 어젯밤에도 유명 인사랑 멋진 여행하는 꿈을 꿨대. 좋은 일이 생길 건가 봐."

자고 일어나면 머리 뒷부분이 흠뻑 젖을 정도로 꿈이 풍성하다는 할배 소년, 친구 남편이다.

평생 연구직에 있어서인지 다양한 지식에 분위기를 풀어가는 재치도 있다.

그 할배 소년의 아침 인사는 사과 한 알을 먹으며 이렇게 시작된단다.

우주선을 타고 지인들과 여행을 가거나, 학교 동창들과 사막을 누비는 꿈...

어느 땐 대통령이 되어 세계 평화를 논하는 꿈도 꾼단다.

내 친구는 거기에 한 술 더 뜬다.

"여보, 여보. 거기 난 없었어?"


이제 나는 신나게 말하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면, 나른한 편안함이 온다.

"그런 방대한 꿈을 꾸며 잠꼬대는 안 하니?"

"왜, 가끔 환호성도 질러."

친구가 까르르 웃는다.

할배 소년은 날마다 세계지도를 펴고 안 가본 곳을 짚으며 말한단다.

"다음엔 여기야!"

현실적으로 여러 곳을 여행할 수 없으니 꿈의 지도를 펼친단다.

"그게 그 사람의 낭만이야"

친구는 남편을 이해하고 사랑한다.


요즘은 무릎이 좀 아프고, 귀도 조금씩 안 들려서 운동화 끈은 꽉 매고 더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한다는 친구 부부.

그들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이상적인 부부임에 틀림없다.

서로의 꿈을 존중해 주고, 사소한 일에도 귀 기울여준다. 작은 일도 같이 고마워한다.

가끔은 할배 소년이 창업을 할까 하기도 한단다.

“이 아이디어 진짜 대박인 것 같아. 100세 시대잖아.”

친구에겐 그저 그런 생각인데, 할배 소년에겐 진지하단다.

그래서 며칠 서로 머리를 맞대면, 스르르 창업 꿈이 사라진단다.


가끔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늙어가고 있지만, 그 부부는 꿈을 꾸면서 나이를 건너뛰는 사람들 같다.

밤마다 꿈꾸며 아침에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낮이면 아이처럼 웃는다.

저녁이면 또 무슨 생각에 스며들지 몰라도 눈빛이 늘 빛난다.

사람은 마음이 늙지 않으면,

참 오래도록 반짝일 수 있다는 걸 그 부부를 통해 배운다.

소년을 닮은 할배,

오늘도 할배 소년은 내일의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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