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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ul 23. 2021

기다릴게, 세상에서 제일 큰 동물원

@더니든과 오타고 반도, 뉴질랜드



 하늘에서 하얗게 내린다. 뺨에 닿으면 사르륵 녹아 흐르는 진눈깨비는 아니다. 봄철 바람을 타고 흩날려 책상 위에, 펼쳐놓은 책 사이에, 잘 닦아놓은 거울 표면에 진하게 묻어나는 꽃가루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진득한 질감에 공중에서 뚝 떨어진다. 낙하 중 모양이 시시각각 변하다가 착륙할 즈음에는 누울 자리에 ‘착’하고 발을 뻗는 하이얀 그것, 새똥이다. 봉고 문을 힘껏 옆으로 밀자 코를 찌르는 냄새가 먼저 반긴다. 발을 딛는 순간 얼룩말 무늬가, 몇 걸음 걸어 나가자 흰점박이 차들이, 고개를 돌리자 과연 원목 색깔이 무엇일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산책로가 있다. 누가 지난밤 하얀 페인트를 잔뜩 가져와 뿌린 걸까? 아니, 그건 불가능하다. 이 지경이 되려면 페인트 창고가 동이 났을 테니. 으악! 짧은 비명소리가 난다. 가방에서 황급히 물티슈를 꺼내 전한다. 그래, 네 놈이 범인이구나. 갈매기!


갈매기가 지배하는 오타고 반도에는 어딜가나 하얀 국물이 흐른다.


 도시 끝자락에 위치한 오타고 반도는 더니든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빠짐없이 들리는 곳이다. 투어 차량을 기다리며 다시금 이메일을 확인한다.

펭귄(Penguins), 물개(Fur seals), 바다사자(Sea lions), 하늘을 나는 앨버트로스(flying Albatross), 그리고 25종 이상의 바닷새를 볼 수 있습니다. 출발 시간은 오후 3시 30분입니다. 여름에는 6시간에서 6시간 반 정도 소요됩니다.

3시 30분 시작? 왜 이렇게 애매한 시간에 출발하지? '하늘을 나는' 앨버트로스는 또 무슨 말이람. 보통 투어는 아침 일찍, 혹은 점심시간을 갓 지나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6시간이 넘게 걸리니 시내로 돌아오면 밤 10시, 너무 늦은 시간이다. 분명 일반적인 일정은 아니다.


 왼편에 파도를 끼고 굽이굽이 달린다. 반도(peninsula)는 대양으로 향한다. 지리적으로 반도는 바다의 특징을 구분하는 좋은 기준이 되는데 한국인이라면 그 차이를 몸소 체감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소싯적 아빠가 ‘어느’ 바다로 간다고 하면 ‘어떤’ 놀이를 할 수 있겠다 짐작하곤 했다. 가령 동해에서는 모래성을 쌓아야지, 황해에서는 진흙놀이를 해야지, 남해에서는 수영하기 딱 좋은 깊이겠다, 하는 예측 말이다. 반도인으로 살아온, 더욱이 바다 내음이 짙은 고향을 가진 나에게 그것은 지식이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직관이었다. 반도의 단짝은 반도의 골에 깊숙이 자리한 만(bay)이다. 대륙의 품에 안긴 만은 같은 바다임에도 대양(ocean)과 구분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오타고 만'이다. 건너편 더니든 육지와 오타고 반도 사이에 위치한 오타고 만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그곳에서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수면에 마술 가루를 뿌렸나 보다. 바다의 색깔은 어디까지일까. 가슴이 탁 트이는 대양의 푸름과 산호가 부서지는 열대의 초록과 가슴에 불을 놓는 석양의 붉음과 공포를 집어삼키는 밤하늘의 어둠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색은 빛의 산란으로 만들어 지기에 순간순간 변한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색깔이 겹쳐 보이는 건 믿기 어려운 광경이다. 푸른색 위에 에메랄드빛을 얹는다. 빛이 바다의 살갗과 부딪히며 쉴 새 없이 하얀 유리를 깨부순다. 한 번 깜빡임, 쪽빛. 두 번 깜빡임, 코발트빛. 세 번 깜빡임, 투명한 태양 빛줄기. 바다는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으며 빛을 조각낸다. 렌즈는 감히 반사된 알갱이를 그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다채롭게 반짝이는 오타고 만은 탄성을 자아낸다.


 “운이 좋으면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미스터리한 가이드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물음표를 띄운다. 야행성 동물이라 잠을 자려나. 한데 야행성 동물이던가. 사육사가 만들어 놓은 우리 안에 몸을 숨겨 낮잠을 자는 동물의 모습이 문득 스친다. 정면의 커다란 간판이 시선을 끈다. 로열 앨버트로스 센터. 이름 옆에는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사뭇 깜찍한 앨버트로스 캐릭터가 살갑게 반겨준다. 그런데 이 방향이 아니다.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는 수십 마리의 갈매기 떼에 기겁하며 떨어지는 똥을 요리조리 피하며 다다른 곳은 남태평양이다. 오타고 만을 벗어나 반도 끝에서 나를 기다리는 장엄한 움직임을 만난다. 절벽에 몸을 세차게 부딪치는 파도 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깎아내릴 듯한 검은 절벽과 거품을 토하는 흰 파도, 시리도록 파아란 바다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바다가 하늘을 끊임없이 덮치다가 물러선다. 바다는 순식간에 하늘이 된다. 수평선은 없다. 그 모호한 경계를 넘나드는 바람이 있다. 흥분한 목소리와 함께 울리는 다급한 손짓이 있다. 다가온다. 대양의 기류를 타고 푸르름을 가르는 커다란 하얀 몸짓, 앨버트로스! 날갯짓은 없다. 3m가 넘는 날개를 길게 펴 흐름에 몸을 맡길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바닷새는 일생의 대부분을 비행하며 산다. 너른 하늘을 터전으로 삼는 앨버트로스에게 센터는 새장조차 될 수 없다. 하늘을 나는 앨버트로스(Flying Albatross), 지금 눈앞의 바람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낱말이다. 그 공간 속 우리 모두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앨버트로스는 남태평양을 안방처럼 드나든다.


 비바람이 몰아친다. 빗방울이 창문을 세차게 두들긴다. 트렁크에서 바다보다 짙은 감청색 우비를 꺼낸다. 쌍안경을 목에 걸고 노란 풀숲을 스치며 앞으로 내딛는다. 우수수 떨어지던 빗방울이 순식간에 멎는다. 저 멀리 나무로 만든 작은 초소가 보인다. 절벽 끝 초소 아래에는 지붕 없는 집이 있다. 검고 유연한 몸짓에 흠뻑 젖은 털, 입가에 좌우로 뻗은 흰 수염, 암초와 꼭 닮은 피부색의 물개가 내려다 보인다. 낮 동안 사냥을 하고 물살에 맞서 헤엄친 게 피곤한 걸까? 바위 모양에 꼭 맞게 말아 눕는가 하면 흐린 날에도 지느러미를 넓게 펴 말리기도 한다. 아기 물개는 파도가 범한 웅덩이에서 몸을 뒤집으며 친구와 물장구를 친다. 아빠 물개쯤 되어 보이는 덩치가 제법 큰 물개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다른 물개를 살펴본다. 물개네가 다 왔나 걱정되나 보다. 쌍안경을 들어 표정을 들여다본다. 멀리 서는 까만 돌과 섞여 매끈한 덩어리처럼 보이던 몸체가 또렷해진다. 뽀얀 얼굴, 느릿한 눈의 깜빡임, 윤기 있는 털과 물속에서 꼬리를 물 듯 구르는 개구진 움직임까지. 그제야 왜 노을에 젖을 무렵 물개 마을에 방문하는지를 깨닫는다. 물개가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얼핏 보면 바위인지 물개인지 헷갈리지만 생동감 넘치는 물개 마을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언덕 아래로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다. 풀숲 사이에 난 좁고 경사진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간다. 파도소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말소리도 빨라진다.

 “펭귄이 해변으로 나올 거예요. 물론 장담할 수는 없어요. 자연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으니까요. 만일 펭귄을 만나면 가까이 다가가거나 만져서는 안 돼요. 놀라지 않게 물러서서 조용히 지켜보세요.”

펭귄도 물개처럼 하루를 마무리할 때 찾아가 멀리서 포착해야 하나 보다. 우리가 기다리는 펭귄은 오타고 반도에만 서식하는 노란 눈 펭귄이다.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다. 하압, 입을 꼭 다물고 숨을 들이마신다. 저기, 우리가 걷고 있는 풀길을 따라 노란 눈 펭귄이 올라오고 있다. 다섯 발자국쯤 떨어졌을까.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느릿하게 돌린다. 숨죽인 채 눈만 끔뻑인다. 하얀 배, 검은 날개, 분홍빛 부리, 보랏빛 얼굴과 눈 주위에 선명하게 둘러진 노란 띠. 마치 가면무도회에서 콧등 위 기다란 노란 가면을 쓰고 묘한 오라를 뿜어내는 신사 같달까. 동상처럼 우뚝 서있다가 충분히 쉬었는지 숨을 고르고 다시 오른다. 우리는 옆을 내주고 뒤뚱거리는 뒷모습을 그저 바라본다.

 “¡Qué hermoso(어쩜 이리 아름다울 수가)!”

다들 빨갛게 상기된 볼과 함께 들뜬 언어를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펭귄 앞에서 가두어둘 수밖에 없었던 흥분을 뒤늦게 터뜨린다. 풀숲 들머리에서 오른쪽을 가리킨다. 정갈하게 칸이 나누어진 나무상자가 있다. 한 뼘 남짓한 길이의 네모난 방에서 고른 숨소리가 들려온다. 복슬복슬한 털과 함께 애교 있는 눈망울이 떠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펭귄이다. 블루펭귄은 보통 키가 30cm 정도로 작아 요정펭귄이라 불리는데 둥지 속에는 그보다도 훨씬 자그마한 새끼 펭귄이 있다. 꼬마요정펭귄이랄까.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앙증맞은 모양새가 이름과 꼭 맞다. 스스로 굴을 파기도 하지만 사람이 만들어놓은 둥지에 알을 부화시켰나 보다.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쳤을 블루펭귄 아파트 너머 바다가 코앞이다.


둥지로 향하는 노란 눈 펭귄과 수풀에 숨어 있는 블루펭귄 아파트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콩. 콩. 콩. 어디 가니? 파도 속에서 하얀 동그라미가 튀어나온다. 젖은 모래 위를 뛰어다닌다. 부리로 날개 죽지를 긁는다. 하나가 모래사장 끝을 향해 달린다. 달리기보다 두 발을 스프링 삼아 용수철처럼 튕기는 것에 가깝다. 모래를 발바닥으로 밀어 앞으로 점프, 또 점프한다. 누가 펭귄이 느리다 했는가. 하나가 멀리뛰기를 하자 나머지도 뒤따른다. 순식간에 숲길로 접어든다. 이번엔 물개다. 그런데 아까 초소에서 내려다본 물개와는 다르다. 크다. 나랑 키가 비슷하겠다. 멀리서 사진 한 컷 찍으려는데 물개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 찔끔찔끔 카메라 쪽으로 도망치는데 계속 쫓아온다. 웃음소리 속으로 몸을 숨긴다. 물개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물개라도 무섭지 않겠다. 일대일로 붙으면 나는 한방 감이다.


 빨갛게 물든다. 펭귄이 언덕을 오르는 박자에 우리도 함께 발을 맞춘다. 무언가를 가리키는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리면 경사진 둔덕을 타는 녀석이 있다. 숨이 가빠질 무렵 펭귄네 초소에 다다른다. 한눈에 들어온다. 파도에서 갓 나온 펭귄, 아직 해변을 지키는 펭귄, 중턱에서 멍하니 멈춘 펭귄, 나뭇가지 속을 헤집고 나오는 펭귄. 느릿하게 움직임을 더듬는다. 그동안 막연히 사실이라 믿었던 생각은 섣부른 오해였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펭귄은 얼음 위에 사는 줄 알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죠. 남극이 심어준 환상이랄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펭귄은 육지에 살아요.”

 “땅속에 알을 낳으려는 건가요? 그렇다면 왜 굳이 높은 곳에 둥지를 만들죠? 바닷가에 마련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건 알 수 없어요. 미스터리한 부분이죠.”

자신의 알을 노리는 천적을 피하기 위함은 아닐지 추측해 보지만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그럴만한 게 펭귄에게는 지나치게 높은 곳에 위치한 집이기 때문이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20층 아파트 계단으로 오르는 것 마냥 힘겨워 보인다. 납득하기 어렵지만 어떡하겠는가. 그건 자연이 인간에게 알려주지 않은 비밀인 것을.


해변을 누비는 물개와 펭귄은 제법 날렵하게 움직인다.


 세상에서 제일 큰 동물원에 갔다. 동물원인데 동물원이 아니고 동물이 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동물을 기다리는 기묘한 곳.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 속에 갇혀있지 않은 앨버트로스, 물개, 펭귄과 수많은 물새들. 비록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하지만 그들이 머무르는 자리를 멀리서 지켜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신의 힘으로 살고 보금자리를 지키고 다음 세대를 키울 수 있는 힘이 아직 여기에 남아있다. 우리는 다만 그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욕심을 덜어내고 그들의 때에 조용히 찾아가 멀리서 바라본다. 있는 모습 그대로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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