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수 Jun 18. 2019

요가로 잃어버린 팔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진짜 재활치료가 시작되었다



2018년 5월 5일, 어린이는 아니지만 그날의 주인공보다 더 간절히 기다리던 연휴였다. 들뜬 마음을 인라인 스케이트에 실어 날랐다. 오랜만에 바퀴 달린 신발을 신자 동네를 종횡무진 내달리던 어릴 적의 나로 돌아갔다. 왼쪽 바퀴가 조금 뻑뻑했지만 조금씩 스피드를 올렸다. 공원 모퉁이에는 완만한 내리막길이 있었다. 실력은 나이를 거꾸로 먹어 아장아장 걸음마 수준인데 객기는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유연하게 질주하는 모습에 나를 대입하며 꼭대기올라섰다.

호기롭게 출발한 건 잠시, 금세 겁을 먹고 오른쪽 바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악력과 때늦은 버티는 마음은 중력과 매끈한 바닥을 구르고픈 바퀴의 마음을 이기지 못했다. 다리를 다친 게마냥 옆걸음을 치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손을 놓았다. 어설픈 스텝은 균형을 흩트렸고 잔뜩 힘이 들어간 몸은 체중을 앞으로 실게 했다.  비탈에서 무게 중심을 아래로 옮긴다는 뜻은 가속을 하겠다는 의지 표명과 다를 바 없다. 공포는 현실이 되었고 다른 매질의 아스팔트 바닥과 조우한 바퀴는 신이나 하늘을 날았다. 그렇다, 붕 떠올랐다. 본능적으로 낙법을 하려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불행하게도 다리는 내 편이 아니었다. 평소보다 열 배는 무거운 신발은 어서 빨리 땅을 딛고 싶은지 불완전한 추락을 도왔다. 한바 구르는 과정에서 왼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충격을 흡수했다. 흡수를 하다못해 제 한 몸 희생하셨다. 왼손목은 금이 가 꼼짝없이 6주간 깁스를 하게 되었다. 천 뭉치를 풀고 나서도 기나긴 재활치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확신이 들었다. 다치기 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하겠구나.




신체는 참으로 신기하다. 이십여 년을 매일같이 사용했는데 고작 며칠 움직이지 않았다고 근육이 뻣뻣하게 굳는다. 탄력을 잃는 속도는 빨랐지만 경직된 움직임을 풀어내는 과정은 더뎠다. 의사는 뼈가 온전히 붙기까지 일 년 정도 걸리니 그동안 무리가 되는 운동을 하지 말라고 했다. 원래 땀을 흘리고 몸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 올해 1월, 인도에서 원데이 요가 클래스를 듣고 결심이 섰다. 다시 요가를 시작해도 되겠구나. 여행을 시작한 지 이주가 넘으니 이곳저곳 피로가 쌓였다. 뭉친 어깨와 당기는 종아리는 한 시간의  요가 수업으로 가벼워졌다. 한국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요가를 신청하기로 다짐했다. 반년이 지났음에도 나의 왼팔은 여전히 고장 나 있었다. 손바닥을 마주대었다 반대 방향으로 벌리면 왼쪽과 오른쪽의 기울기확연히 달랐다. 건강한 오른손은 팔과 거의 수직이 될 정도로 젖혀졌지만 쇠약한 왼손은 그것의  지나지 않았다. 팔과 손등이 이루는 각은 수학 교과서에 예시로 나올법한 완벽한 둔각이었다.


첫 요가 수업은 쉽지 않았다. 양손으로 을 짚는 동작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오른손은 바닥을 꾹 눌러 힘 있게 지탱할 수 있었지만 왼손은 발바닥 같은 안정감이 없었다. 팔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위태로웠다. 플랭크 자세를 취했을 때에는 체중이 왼팔에 실리면 팔이 꺾일까, 다시 뼈에 무리가 갈까 불안했다. 무엇보다 아팠다. 너무 빨리 운동을 시작한 건 아닌지 걱정하며 요가원을 나섰는데 이상하게 팔이 가뿐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다 손바닥을 눈높이로 들어 올렸다. 팔의 안면을 맞붙이고 꽃봉오리가 벌어지듯 손목을 펼쳤다. 소리 없는 탄성이 흘렀다. 오른손바닥과 왼손바닥 사이의 각도는 180도, 수평에 가까웠다. 한 달이 넘게 재활치료를 받아도, 반년이 넘게 생활해도 낫지 않던 손목이 유연하게 넘어갔다. 그렇게 진짜 재활치료가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나다움을 이야기하자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