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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Jun 05. 2018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퇴사하고 그립니다 - 왜 지금 그림이니?   

21살 때, 10년 동안 꾸준히 글을 쓰면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뭐든 10년 하면 된다고 믿었다. 약간은 미련했다.


글 외엔 생각하지 않았기에 나는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의 끝에는 타인의 칭찬이라는 원동력이 있었다   


그리고보니 중학교 3학년 때인가(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작문 선생님이 내가 쓴 논술문을 읽고 이렇게 이야기하셨다(이어지는 자기자랑).


이거 네가 쓴 글이니?

내가 썼던 글인 것 같다. 주변 친구 역시 글쓰기를 좋아해서 당시 좋은생각 월간지에도 실리고, 삼국지와 혼불을 막 읽어제끼는 친구도 있었다.


음악 그러니까 노래가 하고 싶었는데, 집에 돈이 없었다. 나는 맏이였고 노래를 하지 못하면 공부해서 다른 대안을 찾아야 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생각했던 다음 순위가 기자,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제너럴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방송에 나온 앵커가 되는 기자도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글쓰기를 위해 내가 노력했던 건 오직 독서뿐이었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 여수 밤바다인 그곳이 고향인 나에게 글쓰기 실력을 늘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도서관을 자주 방문하는 것이었다.


좋은생각에 기고해서 나름 글쓰기에 두각을 보였던 친구가 갔던 대학교에 따라갔다. 나름 들어가려고 그 학교 선배에게 과외도 받았다. 기자가 되고 싶어서 방송영상과를 지원했다가 잘 안돼서 일단 들어가자고 선택했던 학과가 연극학과 그러니까 비평을 쓰는 과였다.


행복했다. 글쓰는 게 좋았다. 하나의 작품을 보고 연출이나 다른 정보를 잘 읽고 나만의 관점으로 풀어내는 일은 매력을 넘어 마력적이었다. 내 머릿속의 실타래를 마구잡이로 풀어내는 과정이 즐거웠다. 그래서 글은 나와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다.


글쓰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는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기자가 되고 싶었고 그런 역할을 주는 일을 맡았다. 꿈을 이뤘다. 다 이루었다고만 여겼다.


한동안 기자라고 불러주는 자리에서, 타인을 인터뷰하는 일도 무척 즐거웠다. 유명한 이들이 내가 그런 역할을 맡았다는 이유로 만나주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들의 (잘난) 이야기들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좋은 모습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포장하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나쁘고 별로인 밋밋한 스토리는 빼고 기승전결이 확실한 스토리를 원했다. 그래야 글이 잘 써졌다.


모순적인 예인데, 서로 대화의 케미가 잘 맞는 이들의 이야기는 글로 옮기기 쉽지 않았다. 쓸 말은 많고 빼야할 말을 고르게 버거웠다.


모두 다 사람이었다. 미디어는 편집된 이야기를 멋지게 재포장해서 내보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알고나니 환멸이라는 단어가 어려워서 어울리나 싶은데, 재미가 없어졌다.


발 같은 이야기를 해도 나는 손처럼 포장하는 기술을 가지게 됐다. 하기 싫은 이의 인터뷰도 꾹 참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만나기 싫어도 일해야 하니까 할 수 있었다. 잘하진 못해도 해낼 순 있었다.


모바일시대에 기존 미디어가 아닌 뉴미디어들이 두각을 보였다. 치열하게 우후죽순 나타났다. 그래서였을까. 회사에서도 내가 하는 업무 조정이 있었다.


1년 동안 폭풍 같은 나날을 보냈다. 리더와 팀이 바뀌었다. 바뀐 리더는 자신의 세계가 강한 사람이었다. 대화가 되지 않았다. 싸우는 일도 점점 지쳐갔다.

전에는 나는 텍스트만 편집하면 디자이너가 사진 보정과 편집을 담당했다. 시대가 바뀌니 나 혼자 다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나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프리미어를 할 필요성까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1인 미디어가 되어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컴퓨터학원에서 포토샵과 일러스트 프로그램 기초를 배웠다. 글만 쓰다가 이미지로 표현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글은 구구절절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해야, 읽는 독자를 생각하며 쓰는 이의 자세라고 (암묵적으로) 배웠다. 내가 느끼기에 이미지는 그렇지 않았다(지금까지 경험한 짧은 시간으로는).


중학교 3학년 때 작문 선생님의 칭찬으로 글쓰기의 재미를 붙인 것처럼, 꿈꾸기엔 늦은 나이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또 한번의 칭찬이 (우연히) 찾아왔다.


사진을 보고 그렸는데, 나만의 무언가를 발견했다며 인스타그램에 댓글이 달렸다. 1985년부터 그림을 그렸던 그녀의 칭찬이 나를 춤추게 했다.  


글을 쓰면서 20년 넘게 나름 편집외길을 살았던 중년의 꼰대에게 하도 쿠사리, 다구리를 당해서 누군가 "글 잘 쓰네"라고 말을 해도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마음까지 오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글이 인격이 있었다면 그 앞에서 늘 모자라고 부족하고 애매하고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편집 담당자가 글을 손봐주지 않으면 불안했다.


9년 동안 사회생활을 정리하고 퇴사했다. 회사 다니느라 하지 못했던, 하고 싶었던 일 중의 하나였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된다거나 이렇게 그려서 책 한권을 쓰는 작가가 되야겠다는 (나에겐 맹랑한) 거대한 '되어야겠다'는 목표는 없다(독립출판에 관심 조금 있다).


일단 그리고 싶어서 시작해본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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