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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Sep 19. 2018

쓰기의 말들에서 밑줄 그은 문장 33

퇴사하고 읽는 책 - 쓰기의 말들

'차별 감정의 철학'을 읽고 차별을 소재로 한 내 이야기를 하나를 마무리했다. 타인이 권하는 책은 동기부여가 덜 되기 때문인지 생각외로 잘 읽히지 않는다. 감응의 글쓰기 12기 지정도서라서 꾸역꾸역 읽어서 해냈다.


글의 진도가 나가지 않으면 다른 책도 뒤적거렸는데, 간만에 은유의 '쓰기의 말들'을 블로거 생각노트가 읽고 포스팅해둔 걸 보고 마음이 동해서 찾아 읽기 시작했다.


104개의 책에서 발견한 문장과 관련해 은유의 에세이는 그녀가 글쓰기 때 학인들에게 이야기하는 다양한 썰이 인사이트처럼 적혀 있었다.


감응의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스무 명이 넘는 학인과 들었던 내용인데, 종종 딴짓하다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넘어가야 할 땐, 저자의 책을 읽는 게 도움을 받는 최선의 길이다.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 투성이었다. 은유의 문장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세다. 그녀의 필명이 니체 작가를 좋아해서 지었다고 했는데, 니체가 어쨌길래 하는 호기심이 설거지하는 데 반짝였다.


감응하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에세이 쓰기도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멋드러지게 카드뉴스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렇게 정리한 포스팅으로 만족할 생각이다.


밑줄 그은 문장

 

1. 내 식대로 수영을 글쓰기로 번역해 본다. 수영장 가기(책상에 앉기)가 우선이다. 그다음에 입수하기(첫문장쓰기), 락스 섞인 물을 1.5리터 먹을 각오하기(엉망인 글 토해내기), 물에 빠졌을 때 구해 줄 수영하는 친구 옆에 두기(글 같이 읽고 다듬기), 다음 날도 반복하기


2.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꽤나 물질적이고 구조적이다. 먹고살기 위해 아침저녁 지옥철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퇴근 후 매일 글을 쓰기가 어렵다는 걸, 나는 일 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알았다. 아주 체력이 좋다면 모를까. 난 힘에 겨워 결국 직장을 그만두었다. 수입의 불안정보다 글쓰기의 불안정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글쓰기에 투신할 최소 시간 확보하기, 글을 쓰고 싶다는 이들에게 일상의 구조 조정을 권한다. 회사 다니면서 돈도 벌고 친구 만나서 술도 마시고 드라마도 보고 잠도 푹 자고 글도 쓰기는 웬만해선 어렵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그 손으로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


3. 배산입수한 전원 주택에 사는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고, 한 평 고시원에 사는 사람에게 나오는 글이 있다. 같은 여자라도 아이둘 키우며 일하는 주부인 내가 감각하는 세상과 연구원에서 종일 보내는 교수가 접속하는 세상은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쓸 수 있는 글도 다르다.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가 발 디딘 삶에 근거해서 한 줄씩 쓰면 된다.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누구나 글감이 있다는 것, 톨스토이와 도스토엡스키뿐이랴. 글쓰기는 만인에게 공평하다.


4. '내용만 진실하다면 소재는 무엇이라도 좋다.' 어떤 것이 글감이 되고 어떤 것이 글감이 되지 않는가. 처음엔 선별의 문제로 접근했다. 영 아닌 소재는 없구나. 소재 찾기보다 의미 찾기로구나.


5. 현란한 수사로 채운 글이 왜 초라한 지, 충실한 근거를 갖춘 글이 왜 탄탄한지, 그 글을 고치면서 깨달았다. 난 유익한 정보, 새로운 관저을 전해주기보다 잔재주를 뽐내고 과시할 욕심만 앞서 알맹이 없는 글을 쓴 거다. 이 일을 계기로 난 달라졌다. 자의식을 버리고 직업의식을 챙겼다. 내 역할은 세상과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글을 한 접시 차려 내는 일이다. 일용할 양식을 쓰자.


6. 내 글을 쓸 때도 첫 문장에 공력을 쏟느라 초반전에 기운을 다빼는 어리석은 짓을 이제 하지 않는다. 이 글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주제를 환기시키는 담백한 첫 문장을 쓰려고 노력할 뿐이다.


7. 말하자면, 그러니까, 모두, 다 함께, -을 가지고, -에 관하여, 의, 도, 들 같이 별다른 역할이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단어, 부사, 조사를 삭제했다.


화려한 요소가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요소가 얼마나 적은가가 글의 성패를 가른다.


8. 우리가 진짜 알고 싶은 것은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느냐다(잭 하트)


9. 주성철은 기자나 작가가 쓰는 글이 성질은 다르지만 취재가 근본이라는 점은 같다며 이렇게 말한다

"후배 기자들에게 제발 '그냥' 쓰지 말라고 잔소리를 한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으면 관련 자료라도 왕창 찾아서 읽어라. 기자의 시각도 취재한 만큼 정교해지고 작가의 이야기는 취재한 만큼 풍부해진다. 그래서 이런 글이나 저런 글이나 결국 풍부한 팩트가 중요하다. 침대가 과학이듯이 팩트가 곧 감정이다."


10. 박완서의 단편 '그 남자네 집'의 문장을 낱낱이 뜯어 본다. 동사부터 동그라미 친다. 재촉했다, 찍었다.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 명료하다. 하나의 문장에 하나의 사실이 완강하다. 최소의 문장이 짧게, 길게, 깊게, 짧게 리듬을 탄다. 사건과 감정을 끝까지 응시하는 힘까지. 좋은 글의 요소를 모두 갖췄다.


11. '설명하지 말고 보여 줘라'는 내러티브 제1원칙으로 꼽힌다. 짧은 산문 형식의 글은 대개 내러티브 에세이로, 몇 가지 사건을 엮은 글이다. 독자를 어떤 상황에 데려가서 생생히 보여 주는 글을 쓰려고 나는 노력하고 학인들에게도 주문한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 주세요, 여기서 함정은 다 보여주려다가 글이 안 끝난다는 것, 또 복잡해지는 것이다.


글에서 보여 주어야 할 것은 '주제와 관련된 상황'의 구체성이다.

어제 카페에서 하루 종일 만화책을 읽었다 > 창이 넓은 2층 카페에서 만화 '레드 로자'를 읽었다


별거 아닌데 싶은 자잘한 요소 하나하나가 인물의 욕망을 밝히고 주제의 전달을 돕는다.


아이와 남편을 두고 외국 여행을 떠났다는 설명이고 열다섯 살 아들과 남편을 두고 배낭을 꾸려 한 달간 인도로 갔다는 보여주기다.


비슷한 유사어 중 어떤 단어를 고를까도 중요하다.


다 말하지 말고 잘 말하기가 관건이다.


12. 이미 알고 있고 책에도 쓰고 말로도 떠들고 시시때때로 우려 먹는 말을, 난 처음 듣는 양 가슴에 새긴다.


"남들이 쓰지 않는 글,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쓴다"라고 문학평론가 김현도 말했다며 상기한다. '나'라는 불완전성을 드러내야 그 불완전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에.


13. 소설가, 시인, 기자는 매일 글을 쓴다. 그 직업을 얻기까지도 매일 썼을 것이고 얻고 나서도 계속 쓸 것이다. 직업인이 되면 원고 청탁이든 기사 할당이든 쓰기의 장이 마련된다. 그럼 글쓰기의 실력이 는다. 신경가소성의 원리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 뇌의 구조가 그에 맞춰 바뀌기 때문에 계속 연습할수록 더 잘하게 된다. 어느 정도까지는.


매일 써서 빈곤해지는 흐름이 있고 매일 써서 풍요해지는 호흡이 있다. 쓰기 전엔 알 수 없다.


14. 쏟아지는 인터넷 서평이나 기사에서 한 존재가 드러난 글, 목소리가 생생한 글은 드물다. 책이 서문을 요약하거나 좋은 구절을 정리한 고만고만한 글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안 쓰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글쓰기는 감각의 문제다. 남의 정신에 익숙해질수록 자기 정신은 낯설어 보인다. 이미 검증된 남의 생각을 적당히 흉내 내는 글쓰기라면 나는 말리고 싶은 것이다.


15. 중요한 글일 때는 공정을 한 번 더 거친다. 믿을 만한 글쟁이 친구에게 원고를 보낸다. 의견을 묻고 듣고 고친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노력을 짜낸다. 제법 말쑥해진 최종 원고를 보면 가슴이 철렁하다. 대개의 원고는 '웬만하면' 한 번 더 다듬는 게 낫다.


16. 글쓰기를 배우는 학인에게 당부한다. 과제하기는 기본이고 후기 쓰기와 댓글 달기가 '의외로' 중요하다. 형식을 갖춘 과제 글이든 자유롭게 쓴 후기 글이든 짧은 댓글이든 마찬가지 원리다. 어떤 대상과 교감하고 그 감정을 활자로 표현한다는 점은 같다. 한 문장이라도 갖고 놀다 보면 글쓰기가 즐거워질 수 있다.


17. 글쓰기 초보자에게는 부사가 독이다. 부사가 번성하면 주어와 동사로 이뤄진 주제 문장의 메시지가 묻힌다. 난 아직도 부사를 습관적으로 쓴다. 초고에서는 쓰고 싶은 대로 쓰고 퇴고할 땐 부사부터 솎아 낸다. 우선, 대개, 다소, 어김없이, 틀림없이, 가까스로, 완벽하게, 그러니까, 넌지시, 무심코, 시종일관, 부디, 거의, 때로...이런 것들이 매번 끝도 없이 나온다.


18. 마음의 진도가 맞지 않는 경우는 독자와 필자 사이 흔히 발생한다. 일전에 어느 학인이 '못생긴 여자 생존기'라는 글을 썼다. 인기 있는 여자로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나를 위해 죽었다는 예수님'을 만나고 자존감을 회복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자존감 상승의 타당한 근거가 누락됐다고 말했다. 다른 기독교인 학인들은 그 문장으로 충분히 이해된다고 입을 모았다. 비기독교인 학인들은 나처럼 '논리의 비약'이라고 느꼈다.


19.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고 있지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상대방의 '말귀'를 알아듣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 남도 알겠지 하는 생각은 금물이고 착각이다. 전 국민이 독자가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배경지식을 넣으면 더 많은 독자를 아우를 수 있다. "나만 아는 업계 용어 쓰지 말자." 언론계에 통하는 원칙도 있다. '독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20. 하루키는 소설 쓰기를 '튀김 올리기'에 빗댔다. 나도 글쓰기를 요리에 비유한다. 결정적 차이는 대상이다. 내게 글쓰기는 자기를 위한 튀김 올리기가 아니라 남을 위한 만들기다.


21. 글 잘 쓰는 법이 뭐냐고 밑도 끝도 없이 물어보는 사람을 어딜 가나 꼭 만난다. 실용 팁이랄 게 딱히 없어 난감한 와중에 구세주 같은 실행 지침을 챙겼다.

"글을 쓰고 소리 내서 읽어 보세요."


내가 '낭독의 진가'를 발견한 건 글쓰기 수업에서였다. 발표자는 자기가 쓴 글을 직접 읽는데 낭독을 마치면 스스로 글의 문제점을 알아챈다. 읽으면 보이는 것이다. 묵독이 아닌 낭독은 억양, 어조, 공명, 논점에 주의를 집중시킨다. 내가 나를 벗 삼는 것, 글이 느는 지름길이다.


22. 쓰기 전에 잘 쓸 수도 없지만 자기가 얼마나 못 쓰는 줄도 모른다는 것. 써야 알고 알아야 나아지고 나아지면 좋아지고 좋아지면 안심한다. 안 쓰면 불안하고 쓰면 안심하는 사람, 그렇게 글 쓰는 사람이 된다.


23. 감각의 간극을 좁히고 논리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 퇴고다. 퇴고를 하려면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가'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잘 전달되었는가', 그 단어가 정확한지, 문장이 엉키지는 않는지, 단락 연결이 매끄러운지, 근거는 탄탄한지, 글의 서두와 결말의 톤이 일관된지, 주제를 잘 담아내는지, 살피고 고친다. 10매 내외 칼럼 원고 한 편이라도 퇴고는 버겁다.


글을 책으로 엮으며 알았다. 좋은 글을 쓰려면 먼저 그 자신이 영리한 독자, 냉정한 판관이 되어야 한다. 글이 삐걱거리는 순간을 알아채는 감각이 우선, 더 낫게 고치는 기술은 다음, 갈수록 나아지는 글을 보는 기쁨은 오래 기다려야 주어지는 선물이다.


24. 접속사가 많은 글은 설명적이고 무겁다. 그걸 알고부터 퇴고할 때 작정하고 접속사를 잡아 냈다. 글쓰기 수업에 온 학인들도 운명처럼 접속사를 사랑한다. '하지만'은 국민 접속사라 할 만하다.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난 접속사를 빼고 문장을 다시 읽어 보라고 한다. 읽으면 바로 안다. 접속사 없이도 의미가 통한다는 사실을.


25. 개인의 경험을 끌어올 때는 그 자시 노출에 보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내 글에도 아이가 등장한다. 지인과의 술자리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 사례가 꼭 필요한가 점검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과시인가, 소통인가' 내 경험이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가. 뻔뻔한 자랑이나 지지한 험담에 머물지는 않는가. 타인의 삶으로 연결되거나 확장시키는 메시지가 있는가. 자기 만족이나 과시를 넘어 타인의 생각에 좋은 영향을 준다면 자기 노출은 더 이상 사적이지 않다. 돈 내고 들으려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26. '더 고치고 싶었는데 잠이 들어서요.' '수업 시간에 늦을까 봐 대충 마무리하고 왔어요.' 글쓰기 수업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과제 글을 '더' 잘 쓰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급' 마무리 했다는 것이다. 원래 글쓰기 생리가 그렇다고 말해 주었다. 글을 시작하는 건 자기 의지이지만 글을 끝내는 건 외부 조건이다.


27. 어떤 작가를 좋아하고 어떤 책을 읽는가. 글 쓰는 사람에겐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지표가 된다. 읽기가 쓰기를 낳으니까.


28. 힘이 들어간 첫 단락은 사족인 경우가 많다. 애매한 단락은 버려야 글이 선명해진다. 단락별로 소제목을 달아 본다. 소제목끼리 이어서 읽어 봤을 때 글 전체 내용이 요약되면 성공한 글이다. 행은 시의 단위이고, 단락은 산문의 단위라고 한다. 나는 글을 쓴다는 말을 이렇게 바꾸어 본다. 단락에 생각 붓기.


29. 나는 스승에게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질문하라고 했다. 자기 작업으로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 이야기를 들어 보라고.


한 사람이 그냥 일을 한다는 것과 창작자로 산다는 것은 다르다. 작가로서의 자의식은 어설픈 제스처 차원이 아니다. 외면의 연기를 넘어선 내면의 요청이다.


왜 글을 쓰는가? 내가 본 진실을 말하고 싶다.


내면의 동기는 한 사람과 그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창작은 혼자 하는 일, 자문자답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글쓰기 수업 마지막 시간에 학인들에게 말한다. "작가로서 자의식을 가지세요. 나는 왜 무엇을 쓰고 싶은가.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무엇을 나누고 싶은가.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 물음을 어루만지는 동안 아마 계속 쓰게 될 거예요."


30. 사실 눈물의 낭독은 드문 일이 아니다. '울먹체'로 쓰인 글은 대체로 완성도가 높다. 거짓 없고 성숙하다. '그 사건'을 복기하고 뒤집어 보고 바로 보고 따져 보고 헤아리느라 오래 뒤척인 몸이 빚어낸 글의 ㅟ력일 것이다. 좋은 글은 자기 몸을 뚫고 나오고 남의 몸에 스민다.


31.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논문, 기사, 편지 등 대개의 글쓰기는 공개가 기본값이다. 세상에 내 생각과 의견을 제출하는 일이다. 자기의 최대치, 생각의 근사치를 표현하려 노력한다. 남이 보니까. 그것은 자기 생각을 검증하는 기회가 된다. 다른 의견을 접하고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님을 안다. 환대든 적대든 다양한 반응을 겪어야 맷집이 키워지고 글이 성숙해진다. 자기 글에 대한 책임을 배우는 것이다.


글쓰기는 자기중심성을 벗어나 타인의 처지를 고려하는 작업이다. 나뿐이던 세상에 남이 들어오는 일이다.


32. 필력은 체력이다. 머리가 맑지 않으면 단어 하나 떠오르지 않고 사실 관계 확인도 귀찮아지니까 단단한 글이 나올 수 없다. 감정의 건강도 챙겨야 한다. 작가는 쓰는 사람이기 전에 듣는 사람이다. 위대한 작품 뒤엔 위대한 건강이 있다.


33. 엄청난 작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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