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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Nov 18. 2021

[5문장쓰기]굶어 죽어도 부당한 일은

5문장쓰기 시즌 3. 실버 취준생 분투기


어린이집은 오전 10시에 출근해 바로 아기들 간식 차려주고 간식 접시 설거지 후 점심준비에 들어간다. 11시 반, 밥 안칠 시간 전에 반찬 네 가지를 찌고 볶고 끓이고 정신이 없다. 손이 기계처럼 움직여도 시간이 부족했다. 사흘은 좀 힘들었지만, 평소 하던 부엌일이라 그런지 금방 적응됐다.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 식단은 매주 주말 계획표와 나간다. 인쇄물을 보고 웃음이 났다. 골고루 영양밥에 반찬도 다채로웠다. 실상은 원장이 퇴근하며 들른 마트에서 그날, 그날 떨이로 재료를 산다.

냉장고에 씻어놓은 지 오래되어 누런 쌀을 꺼내 밥을 하라는 원장과 의견이 부딪혔다. 손가락으로 쌀을 비니 식혜 밥처럼 끈적거리면서 뭉개진다. 이 쌀은 내가 오기 전부터 있던 쌀이다. 몇 번을 씻어도 이상한 냄새가 나서 밥을 할 수 없다고 하자, 원장은 괜찮다고 자꾸 그 쌀로 밥을 하라고 요구했다.

원장은 그 밥을 14개월 된 자기 아이에게 보란 듯이 먹였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먹이라는 무언의 시위다. 선생님들이 불안하게 원장을 쳐다보다 식판을 들고 각자 담임 방으로 들어갔다. 8개월 영아부터 4살까지 아기들이다. 고등어는 신선도가 떨어져 산산이 부서지고 채소는 물렀다. 여기까지 인가보다. 굶어 죽어도 이렇게 아기들에게 부당한 일은 할 수 없다. 


트위터에서 지나가다가 우연히 읽은 <실버 취준생 분투기>. 장류정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장르와 결은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이 있었다. 그녀의 경험은 1990년대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2021년을 살아가는 지금,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 시니어의 현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처럼 다가왔다. 좋은 어린이집이 세상에 존재하는 게 맞을까?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 혹은 양육에는 철저한 대가가 따른다. 좋은 집이란 비싼 가격이 한몫하듯이, 좋은 어린이집은 어쩌면 비용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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