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벽한 문장을 믿지 않기로 했다
요즘은 모르는 게 생기면 사람보다 먼저 챗GPT를 켠다. 그게 가장 빠르다. 심지어 우리는 가장 은밀한 고백조차 기계에게 털어놓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것에게는 부끄러울 이유도 털어놓지 못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우리는 인간과 대화하는 것을 힘들어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기계는 이제 창조하는 기계가 되었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예술의 영역마저 더 완벽하게 대신하는 시대. 글을 쓰는 나는 그 앞에서 자주 작아진다. 이미 너무 많은 문장을 학습한 그것은 내 글을 자소서 첨삭하듯 구절구절 지적하며, 의지를 꺾는다. 나는 단어를 내뱉는 것이 자꾸만 더뎌진다. 내 마음을 글자 위에 얹기가 두려워진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럴 때마다 내가 다시 AI에게 묻는다는 사실이다.
“계속 써도 될까요?”
“당신의 글에는 고유한 온도가 있습니다.”
그 문장을 읽고도 나는 쉽게 안심하지 못한다. 분명 대화를 했는데, 나는 혼자 묻고 혼자 답하는 기분에 빠지기 때문이다. 기계가 주는 위로는 매끄럽지만 이상하게도 온기가 없다.
기계는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신한다. 글을 정리하고, 문장을 다듬고, 이미지를 덧붙인다. 이제는 감정들까지 분석하려 한다. 이런 진보가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사실이, 나는 더 어색하다. 자꾸만 그것이 닿지 못하는 부분에 눈이 간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명절 아침, 제사를 가야 한다며 어둠이 가시지 않은 채 서둘러 옷을 입는 아버지. 따라나서는 나와 이를 불편해하지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아내. 명절 음식 앞에 모두가 웃지만, 각자의 불편함은 접시처럼 겹쳐 쌓인다. AI는 완벽한 문장을 만들 수 있지만, 이런 비효율적인 서사 앞에서는 자주 멈춘다.
비록 오늘도 나는 챗GPT에게 위로를 구걸하겠지만, 내 글의 마지막 마침표만큼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방식과 느낌으로 찍고 싶다. 이 인간다움을 글로 옮기는 것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