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보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을 채우는 삶의 밀도에 대하여
배우 박정민이 무명배우를 소개하는 짧은 영상을 보았다.
그는 “연기를 정말 잘한다”거나 “앞으로 잘될 배우다” 같은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촬영 현장에서 그 배우와 있었던 즐거웠던 기억을 담담하게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 경험을 계기로, 다음 영화에서 추천받게 되어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배우는 조금 더 많은 사람 앞에 서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우연히 발견된 재능, 누군가의 추천으로 열린 기회. 그 이후의 성공적인 커리어와, 그에 따라오는 것들까지. 내가 본 짧은 영상 역시 그런 이야기처럼 보였다. 운이 좋았고, 타이밍이 맞았으며, 누군가의 눈에 들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영상을 끄고 나니, 정작 마음에 남은 건 추천을 한 배우가 아니라 추천을 받은 사람이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뻔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실상은 반대다.
현실에서 기회는 그렇게 공평하거나 질서 있게 오지 않는다. 기회는 종종 예고 없이, 불쑥 스친다. 문제는 그 순간이다. 그것이 기회인지, 그냥 지나가는 장면인지 알아보는 능력.
다시 말해, 기회를 알아보는 건 준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자세에 가깝다.
추천을 받았다는 건 단순히 운이 좋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눈에 띄었다는 건, 그 사람이 늘 비슷한 태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제 불릴지 몰라도, 불리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다는 뜻. 기회를 ‘잡았다’기보다는, 기회가 와도 어색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기회를 붙드는 힘은 준비보다, 어떤 상태로 시간을 보내왔는지에 더 가깝다고. 여기서 말하는 간절함은 조급함이 아니라, 매 순간의 태도로 드러나는 어떤 밀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원하는 기업에 떨어진 뒤, 나는 연구실에 박혀서 1년을 보냈다. 처음에는 명확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한 기업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무언가를 만들어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막막한 현실 앞에 스스로를 더 몰아붙였다. 연구실 생활은 성과가 나타나는 것이 느렸다. 취업을 했거나 준비를 하는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 자리를 잡아갔다. 조급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연구실에 몰입하면 할수록 나는 이전보다 나 자신을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무엇을 잘하는 지보다, 무엇을 오래 붙잡을 수 있는지. 어떤 환경에서 버틸 수 있고, 어떤 선택을 후회하게 될지.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그때 마음속으로 정했던 회사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내가 어떤 방향으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훨씬 명확해졌다. 나는 내가 버티고 오래 잡을 수 있는 환경을 골라낼 수 있는 감각이 생겼다. 그 감각 덕분에, 어떤 기회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의 회사로 이직했다. 결과만 보면 우회로였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시간은 내가 내 미래에 대한 간절함을 보여준 태도였다.
요즘 나는 글을 쓴다. 특별한 보장이 있어서도,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서도 아니다. 다만 내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다. 언젠가 기회라고 불릴 무언가가 스칠 때, 그 앞에서 얼어붙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지금의 글쓰기는 아직 오지 않은 기회를 위한 연습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설명하는 문장을 다듬고,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계속 확인하는 과정. 예전의 연구실 시간이 그랬던 것처럼.
기회는 여전히 예고 없이 올 것이다.
다만 그때의 나는,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고 싶다.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라기보다, 기회가 와도 낯설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