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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애희 Aug 11. 2024

휴 골드윈 리비에르_ 에덴의 정원, 1901

사랑이 머무르는 곳_ 두 번째 퇴고

영국 신사

보슬보슬 비가 내리던 날, 길에서 첫째 아이의 친구를 만났다. 우산 없이 가는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며 “우산같이 쓰고 갈까?”라고 물었다. “괜찮아요. 영국에서는 이 정도 비에는 우산을 안 쓰고 다녀요.”라고 대답한 아이는 미소를 날리며 자기 갈 길을 갔다. 조금 당황했지만 아이의 재치 있는 답변에 덩달아 웃었다. 며칠 뒤 당당히 비를 맞으며 갔던 아이의 엄마와 마주쳤다. 아이와의 대화 내용을 들려주었더니, 아이 엄마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영국 여행을 다녀온 후 멋이 들었는지, 비 오는 날에도 우산을 잘 안 써.”라며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우리나라처럼 영국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영국 신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건이 우산일 정도로 영국은 비가 자주 오는 나라다. 겨울에도 눈 대신에 소나기가 자주 온다고 한다. 휴 골드윈 리비에르의 그림 <에덴의 정원 The Garden of Eden>에서 마주한 남성의 뒷모습에 눈길이 갔다. 검정 코트를 입은 그의 손에는 우산을 들려 있다. ‘이 정도 비쯤이야!’라며 의기양양하게 비를 맞고 지나가던 아이의 표정이 떠오르며, 이 남성은 분명 영국 신사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휴 골드윈 리비에르 <에덴의 정원 The Garden of Eden, 1901)

눈빛 교환

영국 신사는 어딜 다녀오는 길일까? 아니면 떠나기 전일까? 마중 나온 부인과 두 손을 꼭 맞잡고 서로의 눈을 마주 본다. 잿빛으로 물든 세상 속에서 햇살 같은 빛을 내뿜는 건 부인과 영국 신사의 따스한 눈빛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사랑과 관심이 있을 때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나 또한 사랑하는 아이들과 눈빛 교환하며 대화하길 바란다. 하지만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학교 2학년 아들과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아이와 관련된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아이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더 고민이 된다. 우선 내 질문에 나올 여러 가지 반응들을 예상해 본다. 그리고 그 반응에 따른 대화 내용을 생각해 본다. 아이와의 대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여는 일인 듯하다. 평상시에 사람을 대할 때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는 편이다. 하지만 아들과 대화할 때는 내 마음이 좁아지고, 조급해지는 것 같다. 이렇게 마음의 준비까지 다 되면 최대한 유쾌한 대화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한마디를 건네 본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돌아오는 것은 “싫어!”, “아니!”, “몰라.”같은 등의 짧은 대답이나 묵묵부답일 경우가 많다. 머리를 굴려가며 아이가 좋아하는 먹거리나 관심사를 살짝 곁들여 대화를 이어 본다. 드디어 아이가 관심을 보이면 다음 주제로 은근슬쩍 넘어간다. 세상만사 귀찮고, 모든 것에 툴툴대기 바쁜 아이가 무척 귀여워지는 순간이다. 대화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나의 열정적인 눈빛은 어느새 그림 속 부인처럼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바뀐다. 

 

결국, 사랑

5개월 전, 우리 가족의 겨울 스포츠 스키를 타러 홍천에 가 던 중 아이들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차 안 스피커에서 러브 송이 흘러나왔다. 노래를 듣던 첫째가 “아, 우리나라 노래 70프로 이상이 사랑 노래야.”라고 이야기했다. 문득 궁금해진 내가 “왜 사랑 노래가 70프로 이상일까?”라고 묻자 아이는 한숨을 쉬며 “아이디어가 없어서 그래.”라고 답했다. 때마침 남녀 혼성그룹 거북이의 노래 <비행기>가 흘러나왔다. 아들과 나의 대화를 듣던 둘째가 “오빠, 이건 사랑 노래가 아닌데!”라고 말했다. 첫째는 답은 이랬다. “응. 옛날에는 다른 노래들이 많았는데 아이디어가 고갈돼서 그런 거야.” 나는 피식 웃으며 “그럼 네가 사랑 노래 아닌 가사를 써봐.”라고 제안했다. 내 말에 아이는 이렇게 응수했다. “우리나라에서 창작을 제일 잘하는 사람들도 사랑 노래를 만드는 데, 내가 어떻게 다른 노래를 만들 수 있겠어?” 아이 말처럼 우리나라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가 많다. 그만큼 우리에게 사랑은 나를 시작으로 가족, 친구, 동료, 반려동물들, 자연, 생명체, 사물까지 서로를 연결 지어주며 삶의 의미를 갖게 해주는 특별한 감정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의무를 부여한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상대방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The First duty of love is to listen).”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귀 기울이며 이야기를 들어보자.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자. 그 사랑은 믿음이라는 단단한 마음과 함께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이다. 휴 골드윈 리비에르는 <에덴의 정원 The Garden of Eden>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의 방법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잠시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이곳이 바로 에덴의 정원이구나! 지상 낙원이구나!’ 내 마음이 넓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자리 잡고, 소풍을 즐기는 것 같다.

 

휴 골드윈 리비에르의 <에덴의 정원 The Garden of Eden> 

퇴고 2차 2024.08.10/ 1차 2024.7.23


현정샘의 합평

#휴골드윈리비에르 #영국작가 #에덴의정원 #그림으로글쓰기 #그림에세이 #살롱드까뮤 #공저모임 #퇴고 

#사춘기 #가족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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