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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Mar 12. 2024

어쨌든 여기 도착해 있다 [10/365]

2023년 12월 10일, 22:30

엄마, 아버지를 보고 왔다. 두 분 계시는 일산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찾아가고 있는데, 결혼하고는 대체로 이 정도 주기를 유지한 것 같다. 찾아가는 날을 정해둔 것은 아닌데, ‘가야 하는데, 가야 하는데’하며 미루다 보면 대략 이 정도 주기가 되는 것 같다.


사실 마음은 이 주기가 탐탁지 않다. 내가 내 아이에게 전력을 다하듯, 내 부모에게도 전력을 다하고 싶다. 물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리 할 수는 없다. 단지 마음뿐이고, 두 분 역시 내가 그리 하길 원하지 않으실 것이다.


언젠가는 이런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점점 늘어가는 나이가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부모에게, 내 가진 마음만큼 충분히 가 닿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랬다. 지금은 ‘원래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받아들인다. 어떻게 해도 후회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다 자란 자식이 부모를 대하는 마음이고, 어리든 크든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이라는 걸 받아들인다.


어렸을 때, 집안에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다. 지금도 그 면면을 내가 다 본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고 기억하기에 엄마는 나와 누나를 둘러싼 울타리를 끝끝내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엄마가 했던 어떤 노력은, 지금까지도 내게 애달픈 기억이기도 하지만, 그 애달픔 위에 나와 누나는 곧고 바르게 자랐다.


다 자라 이제 마흔 줄에 있는 나와 누나를 볼 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대로 잘 자라주었구나, 내가 너희를 잘 지켜냈구나’하는 마음일까. 물어본 적 없어 알지 못하지만, 엄마의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위안이자 위로가 되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아들이 온갖 재롱으로, 자리에 모인 가족들을 쉼 없이 웃게 해 준다. 함박웃음 짓는 엄마와 아버지를 보면, 나는 안도한다. ‘어쨌든 우리는 이런 시간에 도착해 있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오늘의 아들은 무척 사랑스러웠고, 나는 엄마와 아버지를 만나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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