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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Mar 14. 2024

굿바이 약통 [17/365]

2024년 3월 14일 22:56

아내가 5년간 먹던 약을 끊었다. 정확하게는, 병원에서 더는 약 먹을 필요가 없다고 진단한 것이다. 병원에 정기 검진 결과를 들으러 간 아내에게 이 연락을 받고 나는, 듣는 이 없는 빈 집에서 고맙습니다, 여러 번 소리 내 말했다.


아내는 나와 결혼한 그 해 12월에 크게 아팠다. 큰 병원에 20일이 넘도록 입원해 있었다. 나는 당시에, 낙관이 비관으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했다. 우리는 살엄음판 같은 시간을 끝내 무사히 건너왔지만, 그 시간들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5년 전 아내를 병원에서 집으로 데려온 날 저녁을 기억한다. 나는 약통을 사러 시내로 나갔다. 다이소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고민하다, 각각 뚜껑이 달린 여섯 칸짜리 작은 플라스틱 케이스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슬픈 마음은 아니었다. 이때는 아내를 집으로 무사히 데려왔다는 사실에 다만 안도했고, 되려 기쁜 마음이었다.


아내는 그날 저녁 내가 사가지고 온 약통을 어제까지 성실히도 사용했다. 1번에서 5번 칸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먹을 약 한 알씩, 6번 칸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먹을 두 알을 넣었다. 일요일 저녁에는 약통이 텅 비어있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대로 나도 약을 채워두곤 했고, 그때마다 나는 아내가 안쓰럽기도, 병원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불안하기도 했다.


어제 저녁엔 아내랑 아들을 데리고 추어탕을 먹으러 갔다. 아내에게 여러 번 축하한다 말했고, 아들에게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라고 설명해 줬다. 초승달이 예쁘게 뜬 밤이었고, 오랜만에 맑고 선선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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