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3일, 17:02
학생이던 나는 수포자이자 과포자였다. 단 한순간이라도 흥미를 느껴본 적이 있었는지를 천천히 곱씹어봤는데,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왜 그랬을까.
이제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고, 당시에 그 두 과목의 문제집을 펼쳐 들었을 때의 느낌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막막했다. 어디든 시험에 필요한 부분만 뚝 잘라 달달 외우면 문제없던 교과들과 달리, 이 둘은 그럴 수 없었다. 출발선에서부터 성실하지 않으면, 트랙 중간 어디쯤에선 단순히 외워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거의 없었다. 나는 기초를 놓쳤고, 그래서 늘 책이 아니라 벽을 펴는 기분이었다. 대학 입학 전까지 내리 6년간 이 두 과목을 피해 다녔다.
마흔을 목전에 둔 지금, 내게는 김갑진, 김범준 교수 같은 분들이 쉽게 풀어주는 물리학 강의를 찾아보는 취미가 있다. 스페이스 X의 펠컨 로켓 회수 영상을 돌려보며 스트레스를 풀고, 터널 건설 공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한다. 옛 과포자는 이 모든 것의 근간에 물리학이 있고, 물리학은 수로써 이뤄진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다.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제외한 세상 모든 것은 숫자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퍽 멋지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나는 애초부터 이런 흥미를 가진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살아오며 천천히 생겨난 관심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만약 전자라면, 이제 막 중학생이 된 25년 전의 나는 왜 그저 피해 다니기 급급했을까. 그때의 내가 펼쳐든게 풀어야 하는 문제집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인생의 궤도까지 달라지진 않았겠지만, 좋은 나이에 세상을 더 재미있게 바라보며 자라지 않았을까.
이제 세 살이 된 아들이 학교에 다닐 즈음, 내가 근래에 느끼는 재미를 알게 해주고 싶다.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고 싶다. 그 방법을 아직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