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8일, 22:32
오륙 년 전부터 옆머리 라인에 새치가 하나 둘 올라오더니, 작년 무렵부턴 그야말로 서리가 내린 것처럼 하얗게 변해버렸다. 윗머리는 또 여전한 흑발이라, 두 달에 한 번 꼴로 염색을 하고 있다. 처음 몇 번은 집에서 셀프 염색을 했는데, 염색제가 안쪽까지 꼼꼼하게 묻지도 않을뿐더러, 그 자체로 여간 귀찮은 일이었다. 아내 권유로, 지금은 커트하러 다닐 때 가끔 염색도 맡기고 있다.
차일피일 미루던 염색을 오늘 하고 왔다. 최근부터 집 근처 젊은 청년 선생님께 맡기고 있는데, 커트 실력도, 인상도, 말솜씨도 담백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인상이 꼭 주관적이지만은 않은 게, 그는 이 업장에서 손님이 가장 많은 미용사였다.
그와 몇 번인가 잡담을 나누게 되면서, 그에게 올해 결혼 계획이 있고, 신혼집 마련에 고민이 많으며,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머리에 염색제를 도포하고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그가 다가와 ‘무슨 무슨 두피 케어’를 ‘해드리겠다’는 말을 건넸다. 내가 살면서 받아본 케어라곤 애플케어뿐이라, 나는 그가 말한 케어가 정확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소의 인상과, 해드리겠다는 말 끝의 뉘앙스로, 나는 머리를 감을 때 서비스로 뭘 더 해준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염색이 거의 끝나갈 즈음, 그가 시술 내역서를 들고 와 오늘 결제할 금액을 설명해 줬다. 내역엔 문제의 케어가 포함됐고, 총액이 15만 원을 훌쩍 넘어가있었다. 나는 이걸 다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묻고, 오늘은 다 할 수 없겠다는 말로 에둘러 거절했다. 잠시 불쾌한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드러내지 않았고, 그는 언제나처럼 끝까지 친절하고 능숙하게 머리를 잘라주었다.
돌아오며 잠시의 불쾌함을 생각했다. 그는 미리 내게 내역서를 확인시켜 줬다. 언제나처럼 머리를 마음에 들게 잘라줬다. 친절했다. 말 끝이 모호했지만, 미용실에서 늘상 통용되는 표현인지, 다른 의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의도가 있었다한들, 그의 관점에선 꼭 필요한 노력이, 일의 관점에선 기술이 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내겐 판단할 기회가 있었고, 판단해서 거절했다. 그뿐이었다.
늘 아쉬운 것은, 좋지 않은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이 타당한 것인지 평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말고, 기분이 스멀스멀 행동에 스며 나오는 그 찰나에, 생각을 한 바퀴 돌려볼 순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