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5일, 23:38
판교에서 이른 점심 약속이 있었다. 사무실에서 넘어가기에는 시간이 빠듯해, 계열 법인이 입주해 있는 판교 오피스에서 오전 근무를 했다. 이곳으로 운동 시설을 이용하러 들르는 직원들이 있단 얘기는 들어봤으나, 직접 와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나는 사옥에서 일한다. 주차장, 식당, 화장실을 포함한 전체 건물이 모두 동일 집단, 동일 목적을 두고 지어진 공간이다. 그래서 단조롭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도, 낯설지언정 복잡한 인상을 주진 않는다.
오전에 들른 판교 오피스는 번잡했다. 저층부에는 온갖 상업 시설이 영업 중이었고, 다른 회사 사무실도 많이 입주해 있었다. 주차장에서 업무 공간까지 올라오는 동선이 복잡해서, 시골쥐마냥 한참을 헤맨 끝에 예약해 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길 잃은 발이 피로했지만, 나는 이 수고가 좋았다. 자리를 찾아오는 동안 구경한 처음 보는 얼굴들이 좋았고, 엘리베이터 버튼과 화장실 문 손잡이, 벽타일, 창문 모양도 늘 보던 것과 달라 좋았다.
자리에 간단히 짐을 풀고 업무를 시작하니, 새 회사에 이직한 기분이었다. 대단한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하루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이 단전에서 올라왔다. 두서없는 생각들도 이어졌다.
이런 규모의 오피스를 여럿 굴리고 있는 회사가 새삼 대단하단 생각을 했고, 문득 내 나이가 얼마인지 헤아려도 봤다. 지금은 그 어떤 낯선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고, 그 어떤 일이든 잘 해낼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앞으로 10년은 더 그럴 것이고, 그 이후는 또 다르겠단 생각을 했다.
눈길 닿는 풍경이 낯설어지니, 짧은 오전 한때, 두어 시간 동안 제법 많은 환기가 됐다. 평소라면 찰나에 흩어질 가벼운 생각들이 손에 잡혔다. 가끔은 이런 시간이, 영영 보이지 않을것 같던 출구를 일러주거나, 난데없는 용기를 줄 수 있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