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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Mar 12. 2024

위로하지 못한 밤 [8/365]

2023년 12월 8일, 24:00

오늘 만난 선배는 마음이 아픈 지 오래되었다고 말했다. 스스로 심각하다고 느낀 게 벌써 3년 전의 일이란다. 나도 당사자에게, 그리고 가까운 주변으로부터 그가 종종 우울과 불안을 느낀단 이야길 들었지만, 이렇게 오래 힘든 상황에 놓여있었는지는 몰랐다.


선배는 본인의 마음을 설명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말하는 와중에 한쪽 볼에 눈물이 옅은 줄기를 그리며 흘러내렸다. ‘이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막막함이 내게 전해졌다.


선배의 말은 비슷비슷한 단어들로 채워져 있었다. 어느 단어 하나 뾰족한 것이 없었다. 모두 적당한 말들이었다. 그 우울과 불안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이겠다고 생각했다. 경험상 명확하게 설명 가능한 문제는, 대부분 해결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분위기가 무거워져 다들 말 수가 줄었다. 선배가 말을 계속 잇는 건 힘든 일이겠다 생각했지만, 나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턱을 괸 왼손으로 계속 볼과 턱만 쓸고 있었다.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땐, 이런 상황에 가능한 많은 말을 건넸다. 나이를 먹은 지금은, 차라리 아무 말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나는 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헤아릴 수 없고, 그래서 실제 도움이 될 말을 해줄 수 없을 것이며, 그래서 나의 말은 단 몇 글자도 상대방이 담아가지 않을 거란걸 알기 때문이다.


선배를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선배의 집 앞까지 가는 동안 겉도는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나는 속으로 선배가 집에 올라가기 전에 꼭 한 번 안아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마도 선배의 마음이 어지러웠던 몇 년간, 누구라도 선배를 꼭 안아준 날이 많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말로는 위로를 전하는 게 불가능해 보여서, 안아주는 것으로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집에 오는 택시에서 선배를 안아주지 못한 것을 무척 후회했다. 내가 경직된 사람이라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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