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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도댕 Oct 14. 2023

만날 죽음에 대하여

행복의 안위를 묻는 습관

종교가 없는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들의 신을 부정한다기보단 내 머릿속에 신이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이따금 죽음에 대해 곱씹게 될 때면 마음속에 있지도 않은 신을 만들어 내게 묻고 싶은 순간이 온다.


"탄생과 죽음이 정해져 있는 거라면, 신께서 세운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요?"


살기 싫어 어떻게든 발악하는 사람보다 살고 싶어 아등바등 사는 사람에게 되려 죽음이 일찍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삶이라는 게 참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귀히 여긴들 그 끝은 속절없는 죽음이구나, 삶의 체계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 말이다. 간절히 바라면 바랄수록 더 멀리 달아나 버린다니 야속하기도 하다.


죽는 순간을 내가 정할 수 있다면 그나마 미련이 좀 덜할까.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이승을 떠날 수 있을까. 글쎄, 영생을 꿈꾸다 제 욕심에 못 이겨 문드러지진 않으려나. 죽음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 내걸 영정사진이랄 것도 없는데, 핸드폰에 있는 사진이라든지 통장 비밀번호, 수많은 메신저 기록들은? 유서라도 미리 한 장 써둬야 하는 건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인데 이대로 영영 사라져 버리면 어쩌지. 죽고 나면 아무것도 손 쓰지 못할 텐데 말이야.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삶에 치이다 보면 죽음에 대한 생각도 흐릿해지고 만다. 사는 게 꼭 지옥 같다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사후세계 따위의 고민은 배부른 소리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죽음을 대비해야 하는 걸까. 남겨진 이들을 위하여 보험을 들어놓는다든지, 처분하기 쉽게 필요 이상의 물건은 사들이지 않는다든지, 자산현황이 한눈에 보이게끔 정리를 해 둔다든지 수시로 죽음을 대비해야 하냐는 말이다. 그러한 물음에 나는 글쎄요, 아니요.라고 답할 것이다. 죽음 앞에 속수무책 없이 당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에 필요 이상으로 마음 쓰는 일은 내게 낭비에 가깝다. 왜인지 모를 불안이 나를 잠식할 때면 좋아하는 유튜브를 틀어놓거나 단숨에 기분 좋아지는 음식을 입에 욱여넣고 생각을 흘려보내는 게 맞다. 둥둥 떠다니는 구름에 생각을 실어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


사는 내내 나는, 아니 우리 모두는 죽음을 고민할 것이다. 삶에 미련이 없다며 가능한 젊을 때 자연사 하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고, 자기는 몇 살에 죽으면 좋겠다고 생의 마지노선을 정해놓은 사람들도 있다. 반면 행운을 있는 대로 끌어다 아주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다. 삶을 오래 지속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의 행복에 있다. 행복이 삶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된 이후로는 내 모든 선택의 순간에는 '행복'이 앞장섰다.


언젠가부터 생긴 습관이 있다. 바로 행복의 안위를 묻는 습관이다. 지금 행복한 지 아닌 지 스스로에게 여러 번 되물으면 된다. 빠른 판단이 어렵다면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지 아닌지만 봐도 행복은 쉽게 들통난다. 덕분에 나는 삽시간에 행복한 사람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뭐 대단한 행복을 누린다기보단 맛있는 걸 먹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에 가고 즐거운 일들을 찾아 하는 정도지만 그만한 기쁨이 켜켜이 쌓이면 마침내 성공이다. 행복에 대한 역치가 낮아지면 여러 개의 행복을 소유하기도 쉬우니까, 여러 행복은 곧 더미가 될 테고. 때때로 찾아오는 불행은 또 다른 행복으로 튕겨내면 그만이니, 더 이상은 불행할 게 두려워 벌벌 떨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 더 살고 싶어 졌고 불행하지 않으려 깊게 생각하는 행동도 그만두었다. 가능한 우리 모두가 오래, 꽤 자주 행복했으면 좋겠다. 한 때 너는 더없이 아름다웠다고, 이제는 메마른 너마저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해줄 순간이 있겠지. 언젠가 그 순간이 오면 찬란한 빛 사이로 흐드러지자. 바람에 흩날려 또 다른 꽃씨가 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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