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이 물건이 내게 말을 건다면

내 곁의 물건은 나를 잘 안다.

by 도도예

나는 평소에도 물건에 의인화를 자주 한다.

자동차 레이는 탈 때마다 인사를 하고, 언덕길에서 힘든 소리를 내면 "힘내! 조금만 더!" 하며 꼭 응원을 보낸다.

그래서 이 글감도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집에서 누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우리 집 물건 중 누가 나에게 말을 걸까? 그렇다면 어떤 말을 하려나...

에어컨이 켜진 거실, 편안한 청록색 소파에 기대어 계속 생각했다. 또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잠결에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입을 열었다.

“TV 소리 좀 줄여줘... 너무 시끄러워.”

그런데도 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간신히 눈을 떴다.

‘아직 졸린데... 왜 이렇게 시끄럽지?’

희미한 거실, 나는 소파에서 잠들었던 모양이다.

‘설마 이렇게 오래 잔 건가? 지금 몇 시지?’

시계를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벽에 걸린 시계는 숫자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엉뚱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라... 고장 났나?’

다른 시계를 확인하려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으윽...”

몸이 다시 눕혀졌다. 그리고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악, 뭐야!!”

당황한 나는 몸을 비틀며 움직이려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만, 가만히 있어봐.]

[그래. 진정해 봐.]

[우와~ 내가 잡을 수 있어! 이거 봐라~]

“응? 뭐야? 어디서 나는 소리지...?”

숨을 죽이고 소리를 들었다.

[진정해.]

[왜 그렇게 갑자기 일어났어? 아직 더 자도 돼.]

[그래, 쉴 땐 쉬어야지.]

[갑자기 일어나면 안 좋아.]

[천천히... 천천히...]

‘무슨 상황이지? 이 목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는 거야...?’

나는 혼란스러웠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귀 기울이는 것뿐이었다.

“누구세요?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이제는 무서움이 밀려왔다.

[겁먹지 마. 나도 네가 우리 목소리를 들어서 너무 놀랐어.]

[갑자기 움직이면 떨어질까 봐 잡았어. 이제 놔줄게.]

[그래... 가만히... 진정해.]

[난 소파야.]

[난 쿠션이야.]

[난 담요야.]

“... 뭐라고? 정말... 소파랑 쿠션이랑 담요가 말을 한 거야?”

[그래!!]

“일어날게... 움직이게 해 줄래?”

[응! 알았어! 내가 널 잡을 수 있었어. 너무 신나!]

나는 천천히 담요를 치우고 몸을 일으켰다.

거실 전등을 켜니, 익숙한 모습 그대로 물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이리 와 봐. 우리끼리 이야기하다가 네가 들으니까 정말 좋아.]

[그래그래.]

... 아니다. 지금도 분명히, 소파 쪽에서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모양은 그대로인데, 목소리는 또렷했다. 무서움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다. 여긴 나의 집이니까.

나는 천천히 소파 앞으로 다가갔다.

“진짜 소파야? 네가 말을 하는 거니?”

[그래. 우리가 말하는 걸 네가 듣다니 정말 꿈만 같아!]

[맞아, 맞아!]

[진짜 신기해. 우리말이 들리다니... 이거 혹시 꿈 아니야?]

“그러게... 나도 신기해. 내가 잠들기 전에 상상하던 게 그대로 벌어지다니 너무 이상해.”

[우리말이 듣고 싶었어?]

[그랬다면 진짜 기뻐.]

[우와~!!]

“정말 그래. 그런데 도연이는 어디 갔지? 내 핸드폰은?”

[아까 아빠랑 도연이랑 나갔어. 네가 자는 거 보고 그냥 나갔지.]

[핸드폰은 여기~ 충전기에 꽂혀 있어!!]

“너희들 정말 유용하구나?”

[헤헤, 네가 헤매는 거 다 봤어. 말해주고 싶어서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

[왜 이렇게 잘 잊어버리고 다녀~]

[나도 어디 있는지 다 봤는데... 말 못 해서 너무 슬펐어.]

“그랬구나... 내가 놓친 걸 너희는 다 알고 있었네. 이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좋다!”

“혹시... 나한테 더 하고 싶은 말 있어?”

[응!! 있어!]

[나도 나도~~]

“뭔데?”

[소파에 너무 쾅 앉지 마. 깜짝 놀랄 때 많았어!]

[쿠션도 바닥에 버리지 마. 아프단 말이야!]

[돌돌이도 좀 자주 돌려줘. 간지러워 죽겠어!]

[난 겨울 담요야. 여름인데 왜 아직도 여기 있어? 좀 쉬고 싶어!]

“... 아, 정말 미안해. 내가 너무 무심했네.”

“이제는 너희 말도 들었으니까, 더 잘 돌볼게. 계절 바뀌면 꼭 담요도 바꿔주고, 돌돌이도 자주 해줄게. 너희가 쉴 시간도 필요하단 걸 몰랐어.”

[와~ 말하니까 정말 시원하다!]

[그러게. 대화가 이렇게 중요하네!]

[난 이제 푹 쉬고 싶어~]

“정말 그래. 너희와 대화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불만과 마음을 들을 수 있었고, 그걸 해결할 수 있게 됐으니까.”

나는 그렇게 소파, 쿠션, 담요와 이야기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몸이 살짝 흔들렸다.

“엄마! 엄마 이제 일어나야지! 치킨 사 왔어!”

멀리서 들려오는 딸아이의 목소리.

나는 깨달았다. 꿈에서 깰 시간이라는 걸.

눈을 떠보니, 내 앞엔 딸아이의 얼굴이 활짝 피어 있었다.

“어디 갔었어? 엄마가 많이 자버렸네?”

“응! 엄마 자서 그냥 아빠랑 다녀왔어~”

“그래, 엄마 이제 일어났어. 세수 좀 하고 올게. 먼저 먹고 있어.”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했다.

차가운 물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정말 꿈이었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생생하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꿈이 그냥 꿈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물건들의 마음, 말없이 참아왔던 속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대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줬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마음.

듣지 않으면 닿지 않는 진심.

나는 세수를 마치고 거실로 돌아왔다.

딸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치킨 상자를 열고 있었다.

소파는 평소처럼 조용했고, 쿠션도, 담요도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이 작은 공간에도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들려야 할 소리가 있다는 것을.

말을 건네고,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더 따뜻해질 수 있다.

꿈속에서든, 현실에서든 말이다.

나는 소파를 한번 쓰다듬고 딸아이 옆에 앉았다.

“우와~ 벌써 다 차려놨네. 고마워! 우리 맛있게 먹자.”

딸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 응 엄마, 엄마도 맛있게 먹어.”

남편을 보며 말을 했다.

“잘 먹을게, 여보! 그리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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