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00권이나 읽었어요

ㅣ 독서의 목적

by 느닷


쉬는 시간에 제 발로 도서관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아이들은 질문이 많다.

"해리포터 불의잔 2권 아직 반납 안 됐어요?"

"이 책처럼 한국사 중에 재미있는 책 없어요?"

"전천당은 몇 권까지 있어요?"

"이 작가 다른 책은 없어요?"

"고양이 키우는 방법에 대한 책이 있나요?"

보통 너무 바쁘고 가끔은 귀찮기도 하지만 주도적 독서를 하는 귀한 손님들이기에 나는 가능한 세심하게 응대하려 애쓰는 편이다.


반면에 담임선생님의 진두지휘 아래 수업시간에 몰려오는 학생들의 10%는 책 고르는 모양새부터 벌써 엉성하니 나를 애쓰게 만든다. 눈치상 뭔가 한 권 고르긴 골라야 하는데 꼼꼼히 살펴보기도 귀찮고 읽기도 싫은 녀석들이 하릴없이 서성이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 잘 사용하는 공용 멘트가 있다.

"만화책 없어요? 에~이 읽을만한 책이 없어요!"

'만오천 권 중에 단 한 권도 없다고?'

"다~ 우리 집에 있는 책들이에요!"

'아버지 서점 하시니?'

"어제도 숙제로 엄청 두꺼운 책 읽었어요. 학교에서 까지 읽기 싫어요. "

'지금은 숙제하는 게 아니라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찾아볼 기회야~'

"집에 책이 하도 많아서 힘들어요. 여기서까지 빌릴 필요는 없어요. "

'아이고…. 집에서는 너무 많아서 못 읽고, 학교에서는 집에 많으니 못 읽고, 넌 언제 읽을 수 있니?'

물론 이런 내 마음의 소리는 정화시스템을 거쳐서 전달하지만 정말 애가 쓰이는 아이들이다. 다른 친구들이 관심 가는 책을 골라 읽는 동안 자신은 할 게 없으니 책 읽는 아이들을 요리조리 방해하며 한 시간을 그냥 허비하다 가기 일쑤다. 이리저리 구슬리고 꼬셔가며 이것저것 손에 쥐여 보려 애쓸수록 되려 질색하며 튕겨나가는 게 또 이 아이들의 특징이다. 보통 이런 독서경멸의 태도는 강압적인 독서를 경험한 아이들에게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태도를 바꾸는 것은 차라리 독서교육을 전혀 접하지 못한 아이들을 돕는 것 보다 훨씬 어렵다. 초등독서는 내 취향의 책을 스스로 찾아보며 경험치를 넓혀가는 자기주도 학습의 첫 단추다.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진 것이다.


한 학기 내내 친구들 따라 도서관을 오가면서도 책은 한 권도 펼치지 않는 5학년 시연이에게 새로 들어온 웃긴 그림책을 권한적이 있다. 그러자 시연이는 격한 손사래와 함께 거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저 독서논술 하면서 1학기에 책을 100권이나 읽었어요! 으…. 이젠 만화책도 보기 싫어요! 책은 더 안 읽어도 괜찮아요~"

아…. 독서의 완성도를 권수로 계량하는 구시대적인 발상은 어째서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와~ 한 학기에 100권이나? 대단한데!? 그럼 그 100권의 책을 읽기 전의 너와 100권의 책을 읽고 난 지금의 너는 뭐가 달라졌어? 백권이나 읽었으면 뭔가 엄청난 변화가 있었겠는걸?!"

시연이는 순간 멍한 표정으로 버퍼링 상태가 되었다. 자신 있게 말했던 100권의 책들을 되짚어 보는 것이리라. 정말 100권을 읽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충분히 즐기며 읽었다면 100 권 아닌 1권만 읽었어도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제대로 깊이있게 읽었다면 최소한 한 장면이라도 떠올라야 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는 눈치였다.

"아이고…. 감흥없는 읽기를 100권이나 하느라 힘들었겠구나…."


나는 진심으로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넸고, 시연이는 말없이 ‘핫초코가 좋아요 / 마크 서머셋 / 북극곰’ 그림책을 빌려갔다. 그림책이 마음에 들었던지 금새 낄낄거리며 돌아와 같은 작가의 다른책을 마저 빌려갔다. 다음주에는 ‘오싸오싹 크레용’ 그림책을 반납하며 주인공 재스퍼가 크레용을 버리고 싶어하는 이유에 대해 나와 신나게 떠들다갔다.


시연이는 그렇게 5학년 2학기에 그림책부터 독서를 다시 시작했다. 도서관은 아이들이 독서 레벨과 진도를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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