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학부모님들은 독서교육의 조력자
아침 활동시간에 1, 2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15분간 그림책을 읽어주는 '책 읽어주는 부모' 봉사단 조직이 올해도 무사히 완성되었다. 1학년이 8개반, 2학년이 7개반이니까 최소 15명이 필요한데 13명밖에 모집이 안 되어서 며칠 발을 동동 굴렀다. 다행히 내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마감 직후에 2명이 더 신청해 주셨다!
처음 이 동아리를 시작할 때에 비해 요즘은 맞벌이가 많아져서 그런지 직장을 다니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하시는 중에 짬을 내어 봉사해 주시는 분이 적지 않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리고 해마다 아버님도 꼭 한 명씩 신청해 주셔서 어머니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신다. 책 읽는 남자도 귀한데, 책 읽어주는 남자라니! 정말 귀한 인재가 아닐 수 없다.
잠시 여담을 하나 하자면, 대학교 1학년 때 문헌정보학과에 입학하고서야 알아챈 사실이 하나 있다. 20여명 남짓했던 동기 중에 남자는 단 2명. 위로 선배들을 봐도 한 학년에 남자는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했다. 대한민국에는 책과 친한 남자가 귀하다. 이 사실은 나이 불문이다. 초등학교도서관에 드나드는 단골명단에도 남학생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 도서부도 여학생들이 늘 압도적으로 많다.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누군가 꼭 연구해 줬으면 좋겠다. 왜 대한민국 남자는 책과 사이가 안 좋은 것인지? 혹시 전 세계적인 현상인지? 정말 궁금하다!
오늘은 다음 주 첫 봉사를 앞두고 신청자들을 모아서 봉사자 교육을 했다. 어떤 책을 읽어주면 좋을지, 책 읽어주는 요령, 봉사 시 주의사항 등을 설명했다. 모두 꼼꼼히 메모까지 하며 열심히 들어주셨다. 여러 질문 중에는 특히 통제가 잘 안 되거나 잘 안 듣는 학생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많았다. 그리고 '그 책 다 읽었어요~'식의 딴지를 걸며 방해하는 학생들의 반응도 걱정하셨다. 안다. 읽어줄 때 겪게 되는 여러 난제. 지난 경험들을 떠올리며 유연히 대처할 수 있는 요령들을 하나하나 알려 드렸다. 참 오랜 세월 동화구연 봉사를 하며 그림책 애독자로 살아왔는데 이렇게 또 생업전선에서 유용할 줄이야!
책을 왜 읽어주는지에 대한 본질을 잘 이해하고 나면 읽어주는 동안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가 간단해진다. 아이들이 책을 즐기는 경험을 통해 평생 독자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기 위한 한 방법으로 '아침 책 읽어주기 '활동을 한다. 어떤 정보나 교훈을 전달하고, 지식을 교육하기 위함이 아니다. 가능하면 청자와 눈을 많이 맞추며 교감하고, 질문으로 대화하며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철학을 넌지시 전달했다. 이미 책을 다 읽은 친구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대화에 더 잘 대답할 수 있을테니 되려 잘 된 것이다. 15분이 짧은 것 같지만 나비의 날갯짓처럼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큰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강조했다.
예를 들기 위해 '코끼리 놀이터 / 서석영 글 / 주리 그림 / 바우솔' 그림책을 함께 읽었다. 병아리들이 실컷 놀 수 있게 해 주려고 힘든 순간을 꾹 참는 코끼리. 책 속의 코끼리처럼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씩만, 잠깐씩만이라도 놀이터가 되어주시면 좋겠다는 내 메시지가 전해졌는지 한 학부모가 정말 감동을 주는 책이라며 눈물을 흘리셨다.
“코끼리를 보니 엄마가 떠오르고 엄마를 대신해 준 수많은 어른이 떠올라서 마음이 차올랐어요….”
교육을 끝내는 학부모님들의 박수 소리에 잘 읽어주고 싶다는 결연한 의지가 가득 담겨있었다.
교육을 마치고 자리를 정리한 다음 도서관으로 돌아와 보니 쉬는 시간이었다. 어느새 한 학부모님이 배운 걸 바로 실습하고 계셨다! 그동안 도서관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모습을 유심히 보며 사진을 찍어 주던 학부모 도서 도우미였다. 오늘은 내가 사진을 찍어 드렸다. PPT와 마이크를 이용해 멋있게 읽어줄 수도 있지만, 옹기종기 가까이 모여 앉아서 육성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이들의 정서에 훨씬 좋다는 내 말을 기억하셨는지 아이들을 품에 가득 끼고 앉아 읽어 주신다. 이번에는 내가 울컥해서 감동의 눈물을 찍었다.
결코, 사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이렇게 마을의 어른들이 하나둘 마음을 보태면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더 다양하고, 정교해진다. 함께 해 주시는 모든 학부모님에게 학생들을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나는 이곳이 사람다워서 정말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