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말하는 대로 변하는 아이들
매주 월요일 1교시는 4학년 3반의 학급 방문이 있는 시간이다. 담임선생님은 오늘도 아이들이 얼마나 더 예뻐졌는지 내게 큰 소리로 브리핑하며 도서관을 들어선다.
"사서 샘~ 우리 반 애들 진짜 참하지 않아요? 요즘 도서관에서 책 고르는 안목이 쑥 올라간 것 같아요~ 그죠?"나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담임선생님이 그렇다고 하니 정말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갈 때 까지도 칭찬은 멈추지 않는다.
"나영이는 알아서 의자정리까지 했네~ 아유 잘했어~"
다른 아이들이 일순간 자기 의자와 앉았던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서 샘~ 나는 정말 운이 좋아요~ 내가 맡은 반은 항상 이렇게 예쁜 애들만 모여 있다니까요."
이 선생님 정말 베테랑이다. 가만 보니 아이들만 쥐락펴락 하는 게 아니다. 학부모 도서 도우미와 나조차 4학년 3반 아이들에게는 왠지 모르게 좀 더 친절해진다. 뭔가 특별히 더 소중한 아이들이 온 것 같아 말도 더 세심하게 건네게 된다. 이 반에는 그 흔한 말썽쟁이도 하나 없는지 아이들이 독서한다고 앉아있노라면 잔잔히 틀어놓은 피아노 선율이 유난히 더 고급지게 울려 퍼진다. 아이들이 어쩜 이렇게 차분하고 반듯한지 볼 때마다 하나같이 예뻐 보인다.
아이들에게 독서습관을 길러 주고자 매주 수요일 2교시면 어김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3 학년 2반 선생님도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벌써 2학기가 되었는데도 도통 독서하는 모양새가 어수선하다. 3학년 2반 담임선생님은 도서관을 들어서기도 전에 문 앞에서 벌써 훈계와 걱정이 쩌렁쩌렁하다.
"어허~ 두 줄로 서라고 했지요! 조용히! 입 다물고!"
아이들은 도서관에 들어와서 책 고르느라 돌아다니는 시간이 앉아서 읽는 시간보다 길다. 내가 애써 추천도 해보고, 칭찬도 해 보지만 도통 관심이 없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도서관 구석에서 장난치고, 소란스레 떠들 뿐 진지하게 책을 찾아 읽는 아이가 드물다.
"만화책은 안된다 했지! 숨은그림찾기도 안돼요! 거기 둘은 자꾸 떠들어서 안 되겠다! 한 명은 이리 선생님 옆에 와서 앉아요!"
선생님은 끊임없이 아이들을 지적했지만 말하는 그때 뿐이다. 담임 선생님은 늘 피곤해 보였다. 나 역시 3학년 2반이 왔다 가고 나면 진이 다 빠진다. 말썽꾸러기들은 이 반에 다 모아놓은 것 같아 안쓰럽지만 아이들의 잘못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2학기가 다 되도록 어쩜 이렇게 도서관 이용규칙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는 건지 하나같이 답답했다.
"반납한 책은 책수레에 올려두라고 했지요!"
나도 모르게 담임 선생님과 같이 날 선 목소리로 아이들을 지적하고 있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과연 4학년 3반 선생님은 매년 그렇게 반 배정 운이 좋을 걸까? 3학년 2반에는 왜 유독 말 안 듣는 아이들이 가득 모여있는 걸까? 처음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해가 갈수록 '말'이 아이들에게 가 닿아서 만들어 내는 신기한 비밀이 조금씩 눈에 보였다. 학부모 도서 도우미의 자녀들이 쉬는 시간에 엄마를 만나러 일부러 도서관에 들릴 때가 있다.
"어머~ 오랜만이야! 훌쩍 컸구나! 멋있어져서 못 알아볼 뻔했어~"라며 내가 인사를 건넸는데 곁에서 지켜보던 학부모님이
"아유~ 아니에요 선생님~. 도서관에 좀 자주 오라니까 말도 안듣고… 밥은 또 어찌나 잘 안 먹는지 친구들보다 너무 작아서 걱정이에요~."라며 손사래를 친다. 아… 뭐 그런 불필요한 겸손을…. 나는 움찔했다.
"제 눈에는 작년보다 훨씬 커 보이는 데요 뭘…."
애써 수습해 보지만 엄마의 말이 먼저 아이의 귀에 가 닿았고 아이의 고개는 푹 수그러 들었다.
올해 처음 도서부에 들어온 학생 중에 쉬는 시간마다 혼자 와서 말도 없이 봉사만 야무지게 하고 가는 5학년 아이가 있었다. 잘 모르긴 해도 봉사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글도 잘 쓸 것 같다고 치켜세우며 도서관에서 하는 '나만의 책 만들기'공모전에 작품을 꼭 내어 보라고 권했다. 퉁명스레 그런 거 절대 못한다더니 요 녀석 제법 정성들여 작품을 제출했다. 5학년들의 참여율이 낮은 편이라 작품을 제출한 것만으로도 기특하고 예뻐서 다른 선생님에게 우연히 이 아이의 작품을 자랑했다.
"말썽쟁이 명하가 도서부였어요? 아이고~ 사서선생님 고생 많으시겠어요~ 그런데 어머! 명하가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구요!? 이런 반듯한 글씨를 쓸 줄 아는 아이였네요?! 명하가 봉사도 잘한다고요? 명하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네요!"
그 선생님은 내가 한 몇 마디 말에 이제 명하가 완전히 달라 보인다고 놀라워하셨다. 나는 일부러 명하의 작품이 더욱 눈에 잘 띄도록 제일 앞에 전시했다. 명하는 그 뒤로 말이 많은 5학년 도서부가 되었다.
내가 먼저 밉다고 말하면 남들도 밉게 보고 아이도 미워졌다. 내가 먼저 귀하다 말하면 남들도 귀하게 보고 아이도 귀해졌다. 아이들은 마치 카멜레온 같았다. 너는 노랑이야! 그러면 노랑으로 변하고 너는 파랑이야! 하면 파랑으로 순식간에 변하는 신기한 존재들이다. 그러니 더욱 신중하고 세심하게 대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아이들은 항상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 각자의 방식대로 온 에너지를 성장에 쏟아내며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낯설거나 별나게 보이기 쉽지만 사랑의 프레임으로 보면 반짝이지 않는 녀석이 없었다. 너도, 나도 소중하지 않은 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