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도서부 반장의 차이나는 클라쓰 !

ㅣ팔꿈치의 힘으로 읽는 책

by 느닷

겨울방학 틈틈이 내 곁을 지키며 도서부 반장의 꿈을 키우는 예비 6학년 학생이 있다. 청구기호 보는 방법이나 도서 검색하는 법도 배우고, 자신이 담당할 서가도 이미 정해 두었다. 새 학기 동아리 시간에 어차피 다 배울 건데도 자꾸 배움을 재촉하는 녀석이 밉지 않아 미주알 고주알 알려주게 된다. 새 학기에 친구들에게 추천할 신간도서를 미리 골라야 한다며 방학 내내 열심히 읽는 모습이 말도 못 하게 기특하고 예쁘다.


자기주도력이 높고, 주변을 긍정으로 대하는 태도가 남다른 이런 거짓말 같은 캐릭터가 매년 두어 명씩 도서관에 존재한다. 정말이다. 이런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 끌고 갈 새 도서부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요녀석이 도서관을 뻔질나게 드나든지 족히 2년도 넘었으니 독서내공도 상당하다. 언제부터 이렇게 도서관에 빠져들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여하튼 오늘은 1학년들에게 그림책 읽어주기 봉사 하는 방법을 배우고 갔다.


“그림책은 표지부터 벌써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야. 그러니 1학년들과 표지를 함께 감상하고 질문을 하며 내용을 미리 상상해 보면 더욱 재미있게 책을 즐길 수 있어. 그래. 제목, 그림 그린이, 글쓴이, 옮긴이, 출판사뿐만 아니라 말풍선 속의 작은 글자들도 다 읽어주는 것이 좋아. 커버에 붙은 면지도 소홀히 볼 수 없지. 그림책 작가들은 면지마저도 어떤 의미를 담아두거든.


그림책은 짧지만 책을 끝까지 신속하게 읽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돼. 그림책은 그림의 구석구석을 함께 들여다보며 발견한 내용을 말해보고, 질문을 만들어 보면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기 위한 좋은 도구인 셈이지. 그래~ 읽다가 의문이 생기면 물어보면 돼. 대답을 들어보면서 각자의 생각을 구경하는 거야. 그건 독서의 흐름이 끊기는 게 아니야. 우리는 그 질문을 발견하기 위해 함께 읽고 있는 거야. 물론 정답이 없는 질문이기에 더욱 매력적인 시간이지. 봉사하면서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줄수록 처음에 놓쳤던 질문을 더 많이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할 거야~


책은 스캔해서 큰 화면으로 자세히 보여주면 좋기야 하지만 읽어주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때문에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데 방해가 되기도 하고, 공감하는 재미가 떨어질 수도 있어. 그래서 가능하면 잠시 앞으로 나와 바닥에 둘러앉으라고 한 다음에 읽어주는 게 좋아. 오른손 잡이지? 그럼 조금 무거울 수도 있겠지만 책은 내가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어깨 높이 오른쪽에 오른손으로 펼쳐 들고 읽어줘야 해. 고개를 숙여서 읽게 되면 발성이 막혀서 소리가 잘 나오지 않거든. 책장을 넘길 때는 왼손으로 그림을 가리지 않게 넘기면 돼.


책은 1, 2학년이 함께 공감할만한 내용이 담겨 있고, 그 수준의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만한 걸로 고르되 읽어주는 사람이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책으로 골라야 해. 꼭 교훈이 담겨 있을 필요는 없어. 감동이든 교훈이든 재미있게 읽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니까. 유명한 책 말고 재미가 있는지를 생각해서 선택하면 충분히 좋은 책을 고를 수 있을 거야. 여기 선생님이 새로 들어온 그림책들을 따로 모아뒀으니까 한번 골라봐~“


예비반장은 그 자리에서 서너 권을 쓱쓱 읽더니 제법 평가를 해 댄다.

“저 책은 1학년들이 친구에 대해서 궁금해 할 만한 내용이 담겨 있어서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2학년쯤 되면 이미 다 생각해 봤을 법한 내용이라 시시하다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와~ 이 문장 정말 멋있어요. 이 책을 동생들에게 읽어주면 좋겠어요!“


슬쩍 보니 내용이 너무 길고 1학년에게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녀석의 첫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다만 한 번만 읽어 달라고 졸랐다. 나는 마침 도서관을 어슬렁 거리던 1학년 3명을 끌어다 품에 안고 예비반장 앞에 졸졸 이 앉았다. 예비반장은 절대 안 읽어 줄 것처럼 빼더니 멍석을 깔아주자 또랑또랑 읽기 시작했다.


긴장을 했는지 표지도 보여 주는 둥 마는 둥…. 질문 두개 겨우 하고는 아주 빠른 속도로 읽어 버렸지만 지켜보는 1학년들의 호기심 어린 표정과 선망의 시선은 예비반장을 빛나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나는 큰 박수를 쳤고, 1학년들은 그 그림책이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냥 서로 자기가 먼저 다시 읽어 보겠다며 앞다투어 가져가 읽었다. 음하하하 성공이다! 한 녀석 업그레이드 완료! 1학년 신규독자 세명 추가영입 완료! 일타쌍피!


자신감이 풀충전된 예비반장이 거만한 표정으로 선생님의 독서가 궁금하다며 나를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휴…. 이래서 내가 읽기를 멈출 수가 없다. 마지막 질문은 정말 거짓으로 절대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선생님은 어디서 책을 읽으세요? 책을 어디서 읽으면 가장 좋을지 궁금해요!”

참 내. 예비반장 아니랄까 봐 질문 난이도 보소!

“소설책은 상상하며 느긋이 감상할 수 있게 침대나 빈백 같은 곳에 편안하게 퍼질러 누워서 읽어. 정보를 주는 책은 책상이나 식탁 같은 곳에 올려두고 연필을 들고 읽지. 그림책은 그림을 꼼꼼히 잘 들여다보며 생각할 수 있게 조용하고 밝은 조명이 있는 공간에서 읽어. 특히 누군가 소리 내서 읽어주는 걸 들으며 함께 감상하기를 제일 좋아해.”

“저는요~ 동화책은 침대에 기대앉아 느긋하게 읽지만, 어려운 책은 비스듬히 엎드린 다음 팔꿈치의 힘을 이용해서 읽어요. 아 대신 정말 좋아하고 재미있는 책은 곁에 간식을 두고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읽어요. 그래야 읽는 맛이 좋거든요~ 그림책은 그렇게 읽어야 좋을 것 같아요!”

팔꿈치의 힘으로 읽는 책이라니. 읽는 맛이 좋은 책이라니. 내가 졌다!


다음날은 더 많은 친구들 앞에서 읽어내는 예비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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