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불평불만의 방향틀기
학기 중의 도서관은 흡사 전쟁터 같다. 수업시간에는 담임선생님과 수업하러 온 학생들의 방문을 돕고, 쉬는 시간에는 도서관을 즐기러 오는 아이들을 맞이한다. 틈틈이 봉사자, 담임선생님, 행정실과의 소통도 해야 하고, 새로 들어올 책, 들어오는 책, 어질러진 책, 망가진 책들을 매만지다 보면 카톡 한번 열어볼 새 없이 바싹 마른입으로 퇴근시간을 마주하기 일쑤다. 그 와중에 도서관 이벤트를 열고 작가와의 만남을 기획하고 동아리를 꾸리다 보면 주말도, 퇴근시간도 내편이 아니다.
사실 바쁘고 정신없는 근무시간의 풍경이 꼭 도서관 사서만의 모습은 아니다. 학교의 모든 구성원이 수업시간표에 맞춰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 속에는 잡음도 많다. 오늘 계획한 일도 아닌데 급작스레 치고 들어오는 업무가 발생하면 짜증이 솟구치기도 한다. 동료끼리 신경전을 벌일 일도 생기고, 학생들의 돌발행동은 늘 상상을 초월한다. 2월 말에 벌써 일 년 치 학사일정을 계획하고 시작하지만 막상 학기가 시작되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다. 예상을 벗어나는 변수들은 스트레스를 부르기 마련이다.
잠시 짬을 봐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누군가 내 자리에 편지를 두고 갔다. 빼뚤빼뚤한 글씨로 도서관이 좋고, 사서 선생님이 좋고, 추천해 주신 책이 좋아서 고맙다고 수줍게 고백하는 편지였다. 하.... 이런 편지는 아껴뒀다가 일부러 조용한 시간에 펼쳐서 천천히 음미한다. 스트레스가 버터처럼 녹아내리는 느낌을 즐기면서. 가끔 이렇게 그냥 툭 선물을 주는 이들이 있다. 사서선생님 얼굴이라며 굳~이 캐리커쳐를 쓱쓱 그려주고 가는 아이들, 지금 자신의 기분이라며 갑자기 춤을 추고 가는 녀석, 괜스레 눈 맞추며 잠시 배시시 웃다 가는 아이들. 사서샘 생각나서 챙겨 왔다며 귤 두어 개를 굳이 이 구석진 도서관까지 가져오는 선생님. 꽃 한 송이 예쁘게 접어서 슬며시 쥐여주는 도서 도우미 부모님.
그런 날들은 다 아무 날도 아니었지만 특별한 날들로 기억된다. 속사포처럼 지나가는 시간들 속에 잠깐씩 이런 특별한 순간들 덕분에 웃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덕분에 제법 자주 웃으며 사랑받고 있음을 가슴 구석구석에 채워 넣는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날에는 내 마음도 전해주고 싶어 진다. 괜히 사탕 하나 쥐여주고, 괜히 그림책 한 권 읽어주고, 괜히 예쁘다고 쓰다듬어주고 싶어 진다. 이름을 기억해 주고 싶어서 깨알같이 메모하고 일부러 한번 더 불러본다. 마음이 담긴 말, 눈빛, 미소, 메모, 편지, 그림... 이것을 건네준 사람의 온기가 내 안에 남는다. 그 사람이 내게 머문다.
졸업 시즌이 되면 학교는 대형 현수막을 걸고 포토존을 꾸미는 등 졸업식 준비로 분주하다. 사실 사서는 딱히 관여할 부분이 없다. 담임도 아닌 데다 지난 2년간은 코로나로 도서관 이용 학생도 거의 없던 터라 졸업생들과의 헤어짐이 대면대면 했다.헌데 올해는 달랐다. 도서부로 눈부신 활약을 했던 6학년들이 대거 졸업을 했기 때문. 이 녀석들을 떠나보낼 생각에 한 달 전부터 조바심이 났다. 너희가 도서관에서 얼마나 사랑받는 아이들이었는지, 도서관이 너희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알려줘야 했다. 뭐가 좋을까? 고놈들 얼굴을 볼 때마다 고민했다.
떠나는 손에 무엇을 안겨줘야 소중한 추억이 오롯이 담길까? 틈틈이 녀석들이 좋아하던 간식을 사다가 선물꾸러미를 만들었다. 취향을 아는 사이는 소중한 사이라는 뜻이니까. 그리고 시를 골랐다. 나태주 시인의 ‘다시 중학생에게’.
어설픈 캘리 솜씨로 밤마다 한 장씩 아이들 이름을 넣어서 베껴 썼다. 힘들 때 꺼내보며 잠시 기운 얻을 아이들을 상상하며 정성껏 캘리 카드를 만들었다. 졸업식날 진한 포옹과 함께 선물을 받아 든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이 적힌 캘리카드를 읽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 마음이 잘 전달된 것 같다.
수시로 마음을 전하고 사랑의 흔적을 알아채는 것은 일상을 행복으로 채우는 가장 쉬운 방법이며 대체로 가성비가 좋다. 나는 도서관에서 행복을 저금하며 사람을 남긴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그게 Having의 첫걸음이에요.
태양은 우리가 등 돌리고 있는 그 순간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죠.
방향을 바꾸기만 한다면 언제든 따사로운 햇볕을 누릴 수 있어요.
- 더 해빙 / 이서윤, 홍주연 저 / 수오서재 / 2020년 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