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라 그런지... 지난달에만 세 번이나 부고를 접했다. 죽은 이를 애도하고 돌아서는 길에는 늘 살아있는 나의 남은 생을 가늠해봐야 할 것 같은 숙연함이 따라온다. 나의 이러한 부채감은 보통 다음날까지 이어지곤 한다.
그날 아침도 그랬다. 뒤숭숭한 마음으로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서관 앞 복도가 다급한 발소리로 소란스러웠다. 뛰쳐나가 보니 추운 아침에 교문에서 '아침맞이 인사'를 한참 하고 들어오던 중년의 수석 선생님이 도서관 앞 복도에 쓰러져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학생이 금방 발견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수석 선생님을 누군가가 소파에 눕히고 사지를 주물렀다. 나는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 얼른 덮어 드렸다. 누군가가 119에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보건선생님이 측정한 혈압수치는 무려 180!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숫자를 마주하는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금세 호흡이 가빠지며 흐느끼던 눈물은 들썩거림으로 번져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손이 덜덜덜 떨었다. 패딩 없이 서있던 한겨울의 복도가 나는 그렇게나 추웠을까? 수석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이시지만 이렇게 주체할 수 없이 오열할 만큼 나와 가까운 분은 아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거지? 함께 서있던 특수샘이 영문도 모른 채 펑펑 우는 나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셨다.
119는 금방 도착했고 수석 선생님은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셨다. 뇌혈관에 고인 소량의 피를 제거하는 시술을 받고 큰 문제없이 회복하셨다는 소식을 이후에 전해 들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 순식간에 나를 덮친 죽음의 공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한 시간가량 콧물범벅이 되어 운 끝에 겨우 떠올린 사실 하나. 어딘지 익숙하고 낯설지 않은 이 두려움은 작년 3월 빗길에 미끄러지며 홀로 고속도로 가드레일을 들이받던 사고의 순간 마주한 것과 같은 감정이었다.
사고당시 나는 어떤 소리도 낼 여력이 없었다. 고속도로 콘크리트 중앙분리대를 사정없이 들이받은 나의 SM5는 팽이처럼 팽팽 돌면서 모든 에어백을 터트리며 마구잡이로 찌그러졌다. 내 제어를 벗어난 핸들 앞에서 나는 죽음을 확신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찰나의 순간은 반대로 영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낸 나의 고단한 시간들을 신은 이런 식으로 거둬가시는구나... 그래. 아이들도 제법 다 컸고, 보험금도 나올 테고, 생에 남은 미련 따위도 없으니 뭐, 이런 마무리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아... 아니다. 이렇게 죽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내 죽음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지 아무에게도 말해두지 못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전화 딱 한통화만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과연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따위의 생각이 떠오를 즈음 만신창이로 부서진 나의 SM5는 정확히 운전석만 지켜내고 회전을 멈췄다. 사방에서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며 시야를 가렸다.
사... 살았나? 마침 지나가던 봉고차량 운전자가 아직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내 정신을 붙들고 나의 생존을 확인해 주었다. 그때 나는 울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