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과 구찌라면 백퍼지.

신점과 부대찌개

by 그림토끼

선녀를 못 믿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믿고 싶은 쪽이었다. 반신반의 하면서도 선녀가 약속한 시간을 몰래 기다렸고 4월에는 기대를 했다가 6월이 지나가는 지금 다시 조급해졌다. 조용히 반복되는 일상에 감사하면서도 이렇게 조용한데 도대체 누구를 언제 어떻게 만나서 결혼을 한다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친한직원들이 어디 유명한 신점을 예약 했고 한자리가 마침 비었다는데 바로 혹했지만 너무 냉큼 가겠다고는 못하고 예의상 하루 정도 생각하다가 바로 합류했다. 무속신앙을 믿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심지어 선녀를 만난지 일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또 신점을 보러 가겠다는 내가 낯설었다. 사는게 불안하지도 않은 주제에 자꾸 무속에 의지하려는 거니 라고 스스로 비웃었다


그동안 선녀에게 점사를 받았던 친구들 사이에서 그녀의 신뢰도를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적중률이 그리 높지는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에게는 더 강한 확신이 필요했다.


오전만 근무하고 회사를 벗어난 것부터 너무 신이 났다. 신점 보는 곳이 차가 없으면 가기 불편한 곳이라 기동력이 있고 재밌는 친구들하고 같이 껴가는게 여러모로 편하고 즐거웠다. 간 김에 부대찌개가 유명한 맛집에도 갈 수 있는데 어떻게 신나지 않을 수 있지.


가는 길에 무당, 굿, 신당 등 단어들이 많이 보였다.

뭔가 신을 모시는 분들도 모여서 살면 좋은 건가.


부대찌개 집은 주차안내 아저씨가 일단 너무 유쾌하셔서 재밌었는데 유명 맛집인데 비해 아주 친절하셔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조금만 올라가면 식당이 나오고 이따가 주차권이 없으면 춤을 춰야 한다는 시답잖은 농담에도 우리는 꺄르르 꺄르르 웃었다. 사무실 근처에도 종종 가는 부대찌개 집이 있어서 비교가 되었는데 유명해서 그런지 훨씬 깔끔하고 담백하고 소세지도 맛있었다.


스타벅스에서 시원한 커피도 한잔 했다. 회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배가 부르고 커피도 먹어서 아주 신이 난 상태, 이제 점집으로 갈 차례이다.


외관은 선녀집과 비슷한 인상이었다. 일상적인 동네에 위치한 평범한 건물을 찾아 올라갔더니 더 평범한 오히려 허름하기까지 한 가정집. 선녀집은 내부가 더 넓고 화려했다면 여기는 소박했다. 그렇다고 불쾌하거나 지저분하지 않았고 아담하고 깔끔했다. 대기하는 곳에 의자도 없어서 바닥에서 앉았다. 배가 부른 상태여서 바닥에 앉기 약간 불편했지만 괜찮았다.


매니저가 자리를 비워서 잠깐 봐주신다는 아주머니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셨다. 오늘은 젊은 아가씨들이 많이 왔다는데 아까 부대찌개 집에서도 똑같은 말을 들었더랬다. 코스가 다 비슷한 건가.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내내 일정한 톤과 여러명의 등장인물, 점프하는 시점으로 인해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는데 핵심은 앞으로 만날 신을 모시는 분이 욕심은 없고 아주 영험하며 잘 알려줄 것이니 잘 보고 가라는 것이다.


장군님을 모시는 이분은 생각보다 젊으시고 친절하셨다. 부채를 펴고 방울을 흔든 후 부채를 접자마자 친가 쪽 제사는 누가 지내냐고 물었던 것 같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친가 쪽에 배고픈 조상이 장난을 쳤을 뿐, 앞으로는 별다른 굴곡없이 잘 산다고 했다. 나의 가족도 아픈 곳 없이 잘 살 거라고 했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나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는 만나는 시기만 다를 뿐 선녀가 말한 것과 대체로 비슷했다. 또 너무 다 좋다는 얘기에 홀려서 누구를 어떻게 어디서 만나는지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 질문을 했어야 할 시간에 별로 고민도 아닌 직장 인간관계 따위나 물어보고 있었으니.............나 왜그랬지.


전혀 교류가 없는 친가 쪽 질문을 갑자기 받아서 잠깐 당황했지만 누군지도 모를 나의 조상 중에 나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뭔가 따뜻해서 울컥했다. 점사를 봐주시는 분이 따뜻하게 말씀해 주셔서 그동안 고생 많았어. 라는 말을 들은거도 같아서 실제로 조금 울었다.


근데 그동안은 왜 안 돌봐줬지? 배가 고파서? 이분이 말하는 조상이란 과연 누굴까. 후손이라면 이유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해주고 싶지 않은가. 그동안은 장난치다가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돌봐주시기로 한건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역시 귀신의 세계는 내가 알기 어렵다. 그분들의 말을 전달하는 분이 잘된다 하시니 잘 된다고 믿을 수 밖에.


귀신의 ‘장난’이란 인간이 사는 세계의 ‘장난’ 이라는 단어와 조금 다른 의미인 것 같다. 산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마저도 그들은 장난이라고 부르는 것같은데 나에게는 일본에 가지말라고 했고 친구에게는 물가에 가지말라고 했고 다른 친구에게는 운전을 하지 말라고 했다. 다 믿는다기보다 조심하겠다는 말이다.


귀신의 말을 전달하는 ‘무당’이 나는 볼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듣고 보고 전달해주는데 여전히 반신반의하지만 신기하긴 하다.


나와 나의 가족의 평안과 앞으로 꾸릴 가족에 대한 확신을 또 한번 얻었으니 10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근데 앞으로는 신점을 또 보러 가지는 못할 것 같다.

뭔가 나도 갑자기 영눈이 틔어서 귀신을 보게 될까봐 무섭기도 했던 게 점사를 봐주셨던 분이 나에게 본인과 비슷한 무당 사주라고 했다. 내가 잘 알아들었는지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평생 초현실적이거나 기이한 경험같은 건 한 적이 없고 심지어 귀신은 믿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되었다.

잠깐 내가 특별한 사람인가? 라는 착각을 하긴했다.

특별하고 싶은 거겠지.


점사를 주신 분이 연애운에 강한 확신이 있으셨고 나는 무탈한 사람이라는 확인을 받아버려서 유쾌하게 그 방을 나왔다. 내가 일번으로 들어가서 2,3번 친구를 차례로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이 공간에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의외로 널브러져 있는 샤넬과 구찌 슬리퍼 때문이었다.


사주를 봐도 신점을 봐도 나에게는 남편과 자녀가 있다는데서 일단 안심이 된다. 남편이 꼭 필요하다기보다는내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백년을 사는데 내편 한명이 없는 건 너무 가혹하니까. 내년에 만난다니까 올해는 친구들하고 재밌게 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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