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상황은 기억 안 난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 친구들과 모인 어느 자리에서 누군가 남편에게 질문을 했다.
친구: "ㅇㅇ이 어디가 좋았어요?"
남편: 애교 있고 착해서요.
예상치 못한 말에 친구들 눈이 휘둥그레졌고 내 마음은 혼란과 분노로 차버렸다.무늬는 여자라지만 애교는 경상도 남자 저리 갈 정도로 없다는 걸 익히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중생활을 하는 거냐 물어왔다.
이 사람의 애교의 기준은 도대체 뭘까. 무토막 같은 사람을 애교 있다 생각하는 그 기준점은 어디서 왔을까. 의아함과 동시에 "착해서요"라는 말이 귀에 거슬리다 못해 심히 불쾌했다.
지금까지 참고 산 게 착해서라고 생각했던 건가.
착한 것 같으니 니 맘대로 상식도 배려도 없이 그래도 된다 생각해서 개차반으로 행동한 건가.
그동안 너에게 했던 배려들을 멍청하고 미련할 정도로 착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나.너랑 같은 인간으로 살기 싫었을 뿐이야. 나의 부족한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나서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다생각해서 지금까지 왔는데 그동안 했던 배려가 착하다는 말로 퉁쳐진 거 같아 용서가 안 됐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남편과 시어머니는 성격이나 기질이 너무 비슷한 사람이었다. 끔찍하게 싫은 남편의 모습이 시어머니에게 보였고 너무 싫은 시어머니의 모습이 남편에게 있었다.
나름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는 고마움보다는 당연한 줄 알고 더 끝없이 요구한다는 것이다. 힘들어도 묵묵히 입 닫고 살아가면 호구로 보이는 그런 배려는 더 이상 안 하기로 했다.
친정에 가면 종일 말없이 누워만 있는다. 한마디도하지 않고 잠만 잔다. 나와서 이야기 좀 하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누군 할 말 있어서 그렇게 살았을까.
결혼 생활 내내 너희 식구들 술상 봐주고 술 취해 난리를 쳐도 술 한 방울 못 먹는 나는 그 자리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을 웃었다.
1년에 10번있는 명절이 아니지 않던가. 1년에 두 번 있는 명절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끼리 화기애애하게 지내기를 바랐던 마음이었다. 하지만 몇 해가 가도 내가 했던 노력과 배려에 1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정에 가면 늘 같은 패턴이었다.
다가오는 명절이 코앞이었을 때 한 데로 갚아주고 싶었다. 할 일만 하고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힐끔힐끔 눈치를 본다.
그리고 시어머니께서 결국 한마디 하신다.
시어머니: 식구들 다 있는데 뭐 하는 거니?
며느리: 남편이 저희 집 가면 늘 이렇게 하던데요.
시어머니: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인 남편에게 뭐라 한마디 하지 않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도대체 자식 교육이라는 개념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해 버렸다. 그리고 그날 아무도 날 건드리지 않았다.
어느 날 싸우고 냉랭한지 며칠이 지나고 있는 주말 남편은 애를 데리고 시어머니와 시누 기타 등등의 시댁식구들과 놀다가 외식을 하고 아무런 말도 없이 저녁에 집에 모시고와 2차전을 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 아무런 말 없이 그것도 너네 집식구들을 데려오다니.싸움하고 안 풀어지면 시누나 시어머니를 대동하고 와서 어쩔 수 없이 말을 하게 하는 꼼수를 썼었다.
어른들이 계시면 어떤 상황에서도 예를 지켜분위기를깨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그날도 이용한 거다.
어린 딸아이를 두고 너 같은 인간이랑 어떻게 헤어져야 할지 그날도 복잡한 생각을 하고 집에 들어섰는데 눈앞에 펼쳐진 장관은 모든 시댁식구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매번 예의를 지킨 배려가 화살이 되어 또다시 돌아왔다. 어린 딸은 작은방에서 쌔근쌔근 잠들어있었다. 순간 아이 때문이라도 또 참을까 아니면 뱉어낼까 신발을 벗으며 수십 번 생각했다. 다들 내 얼굴을 보며 인사하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결정한 내방식 데로.
"다들 내 집에서 나가세요. 남의 집에서 뭐 하는 거예요?"순간 남편이 어머님께 죄송하다 말하고 나를 향해 미쳤냐고 소리쳤다. 그 뒤로 시어머니란 사람은 또 말도 안 된 소리를 내뱉는다.
그때 가만히나 있었으면 당신에게 안부전화정도는 할 수 있는 마음이 남아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옆 시누이는 열심히 시어머니를 말리고 있었다.
그 뒤로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조용해진 거실에 내 목소리만 울려 퍼졌던 슬픈 추억만 남아있다.
고이 잠들어있던 어린 딸은 자다놀래 눈에 실핏줄이 터지도록 울어댔다. 그 옆을 지킨 건감정의 회오리에 빠진 나도 남편도 아닌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이혼을 지켜봤던 20살 남짓의 시누딸이었다.
아이를 다독였던 시누딸은 눈물이 터져 화장실로 들어갔고 자기 딸의 갑작스러운 눈물로 시누가 놀래 버섯발로 따라 들어갔다.
"난 이런 상황이 너무 무서워. 엄마아빠 이혼 전에도 이랬잖아. 하며 흐느낀다" 이 말이 주는 무게감과 눈주위 핏줄이 팡팡 터져 이제 내 품에 안겨있는 딸을 보며 다시 살아야 하나 망설이며 잠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