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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Oct 26. 2023

자장면 한 그릇으로 아이가 되었다

칠십넘는 어른이 말이다.

자차로 움직이면 5시간.  대중교통은 7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에서 잠깐의 병원진료를 보기 위해 부모님이 몇 달에 한번 내가 살고 있는 곳까지 오신다. 어려운 진료들은 끝났고 이제 관리만 받으면 되니 사는 곳 가까운 데로 병원을 옮기자 했다. 하지만 이제 6개월에 한 번씩만 오면 된다며 굳이 바꾸지 않겠다고 하신다. 이김에 바람도 쐬고 그런다며. 연세가 있다 보니 이동만도 만만치 않을 텐데 바람 쐬다 죽는거 아닌지 걱정되는 딸은 매번 같은 답을 듣지만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말한다.


순간의 병원진료가 끝나고 자꾸만 집으로 바로 가시겠다고 한다. 젊은 사람도 그런 스케줄은 힘들다며 극구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70이 훨씬 넘은 연세라 걱정이 앞서고, 점심이라도 든든히 드셔야 될 것 같아 여쭤보니 난데없이 옛날자장면이 드시고 싶다 한다.


배달 중국집은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걷다가 편히 들어갈 수 있는 중국집은 찾아보기 힘들게 된 마당이다. 옛날 중국집 느낌 물씬 나는 북경반점, 금성반점, 황룡각 이런 정겨운 가게 이름이 그리울 때가 있다.  집 근처 중국집은 2곳정도인데 둘 다 아빠가 말한 그런 옛스러운 곳이 아니다. 살짝 고급 중국음식을 지향하는 곳들에 가깝다. 물론 가격도 그 분위기에 맞춤되어 있다. 그래도 둘중 어디로 갈지 선택해야 했기에 그나마 예전과 비슷한 정감 있는 인테리어가 되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훑어보시더니 영어. 중국어. 한글로 쓰인 반짝이는 고급재질에 메뉴판이 부담스러우신 눈치다. "여기 아빠가 좋아하시는 간짜장 있어요."  라고 하자 그렇게 좋아하시던 간짜장이나 삼선짜장을 시키는 게 아니라 뜬금포 잡채밥을 드시겠단다. 평소 잡채밥을 드시지 않는 분이다. 그건 엄마가 좋아하는 메뉴였다. 분명 싫은 표정인데 입으로는 자꾸 잡채밥을 외치고 있는 아빠. 그때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설득에 설득을 해서 자장면을 시키고 엄마가 좋아하는 잡채밥과 탕수육을 주문했다.






그렇게 드시고 싶은걸. 도대체 왜 잡채밥을 외치셨을까. 머릿속에는 계속 물음표가 떠다닌다.

주문을 마치자  아빠얼굴이 어린아이처럼 설레어 보인다.  혹시 간짜장이나 삼선짜장보다 잡채밥이 좀 더 쌌던 걸까. 따끈하게 나온 자장면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에서 물음표는 확신이 되었다.


나이 사십 넘어 그동안 쌓아 놓은 울분을 참지 못해 결국 아빠에 전화를 해 "왜 그 새끼는(남동생) 그렇게 해주고 나한테는 안 해줬냐고! 솰라 솰라 우르르 쾅~ "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칠십넘은 아빠의 울음소리도 기어이 들어버렸다. 꼭 내가 일이 있으면 그때는 돈이 그렇게 없었단다. 분풀이하기 바빠 당시에 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 뒤로도 한참을 참으로 불편한 딸 노릇을 했었다. 그러니 딸과의 식사가 좋아하는 자장면도 맘껏 외치지 못할 만큼 편치못하셨나보다.


자식에게 당당하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는 경우도 많은데 못해준 부모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참 많이 떼를 썼던 것 같다. 그것도 다 크다 못해 늙어가면서 말이다. 어릴 때라면 귀엽기라도 하지.


자장면 한 그릇으로 설레어하는 아빠가 처음으로 5살 아이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동안 지랄발광했던 모든 것이 코끝 시리게 아팠다. 그날 다짐 했다. 누구든 내 부모 서럽게 하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고 살기로 말이다. 아들이든 사위든 며느리든 그리고 제일 문제인 나를 말이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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